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수다파티의 묘미

여자와 남자가 티격태격 말싸움, 말놀이를 벌이는 로맨틱 코미디들. 그 중에서도 1995년 ‘비포 선라이즈’는 매력적인 대사와 황홀한 산책으로 여행로맨스의 전설적 존재가 되었다.

파리여자 셀린느(줄리 델피)와 미국남자 제시(에단 호크), 유럽횡단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청춘이 나누는 해뜨기 전 비엔나 데이트는 환상적 낭만을 예찬하게 만든다. 사는 곳도 다르고 불확실한 미래도 다른 두 사람의 6개월 후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다.
9년이 그럭저럭 지나가고, 2004년 ‘비포 선셋’이 둘을 품고 돌아온다. 둘은 우연히, 어쩌면 필연처럼 파리에서 다시 만난다.

둘의 사랑이야기를 쓴 제시는 베스트셀러 작가, 셀린느는 의식있는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20대 스쳐 지나갔던 사랑은 30대 로맨스에 불을 붙인다. 미국 남자는 결혼도 했지만 이혼을 결단하고 본격적인 로맨스에 인생을 걸고 파리로 날아온다. 해지기 전, 잠들기 전, 일상을 나누는 동거커플의 탄생이다.
다시 9년이 지나고, 2013 년 ‘비포 미드나잇’으로 ‘비포시리즈 3부작’이 완결된다. 푸근한 중년으로 돌아온 이들은 그리스로 여름휴가를 간다. 서양문명의 원조 국가 그리스의 아늑한 해변마을, 제시는 미국에서 날아온 아들과 휴가를 보낸 후 공항에서 배웅한다.

그에겐 고뇌가 쌓인다. 눈먼 사랑에 빠져 그 여자와 쌍둥이 딸을 거느리고 파리에 살고 있는 그는 아들과 따로 사는 것이 떨떠름하다. 시카고로 돌아가고픈 욕망도 일어난다.
셀린느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힘겨운 NGO 생활을 접고 공무원이 되려는 삶의 변화,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딸들 돌보기, 일을 포기해선 안되지만 남편처럼 거들먹거리는 제시의 아들 걱정도 성가시다.

사랑도 좋지만 가정주부는 되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다. 버거운 일상과 애 돌보기에 지친 삶에서 떠나 둘만의 로맨스를 즐기러 간 호텔에서 둘은 대판 싸움을 벌인다. “이젠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셀린느의 고백이 나올 정도로.

진부해져 버린 일상의 고통이 배어나는 두 사람의 말싸움은 때론 시끄럽지만 여전히 즐길 구석이 많다. 대사의 묘미로 끌어가는 ‘워키토키 로맨틱 코미디’의 수다파티는 삶의 고단한 진실이 담겨있다.
여전히 사랑판타지에 몰입하는 한계도 부인하긴 힘들지만. 혹시 당신이 콩깍지 낀 사랑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포시리즈’를 음미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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