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 천(金闡) 의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 <38> 인간답게 살아가기

인간이 동물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우리도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며, 강한 자 앞에서 숨을 죽인다. 그럼에도 인간은 헌신과 고결함, 자신의 한계, 그리고 정신과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감지하는 기초 학문은 바로 문학ㆍ예술ㆍ철학ㆍ종교ㆍ도덕ㆍ윤리 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과 철학과 윤리와 종교과 관련된 학과들은 취업률과 효율이라는 잣대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간 스스로 정신을 역행하고 퇴보하며 고결함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이 타락한다는 것이 결국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현 상황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 원숭이 무리들이 들개사냥을 하듯 치타를 사냥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의 들판에서 걸어 나왔다.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는 담을 쌓고, 지성을 이루며, 세상의 굴레를 뛰어넘는 영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고, 먹이 앞에서도 고상함을 버리지 않을 정도로 진화를 이루어왔다. 두려움 앞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들어 온 몸을 지탱할 줄 안다. 인간은 분명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그 어떤 짐승보다 나약하다. 근육은 퇴화되었고 불어난 체중은 숨쉬기조차 곤란할 정도가 됐다. 몸 구석구석 숨겨진 비곗덩이는 온갖 질병과 신경증을 불러들인다. 해가 지고, 별이 떠도 잠 못 이루는 불면(不眠). 스스로 만든 계급은 불행의 화근이 됐다.
그럼에도 그 어떤 짐승보다 나약한 인간이, 동물의 본성으로부터 벽을 쌓고 대지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에겐 지식과 정신과 영혼을 감지하는 마음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신과 고결함,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성이 깃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정신을 빼앗아버리면 짐승 이하가 된다.
동물들에게도 그 비슷한 것들이 있긴 하다. 동료를 지키려하고, 다른 존재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하며, 아주 작은 것조차 나누려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언어와 그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본성과 상상력으로 현실 이상의 허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없다.
인간과 아주 흡사한 동물로 영장류가 있다. 지능도 있고 학습능력도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줄도 알고 생존과 필요없이 자신을 꾸미고 표현할 줄도 안다. 생김새도 비슷하다. 원숭이들은 가끔, 그러나 드물지 않게 인간을 공격하고 속이고 훔친다.
남인도 카르나타카주의 겨울. 먹을 것이 귀해지는 계절이 오면 원숭이들은 들개사냥에 나선다. 늙고 노련한 장로 원숭이는 멀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늙은 들개를 발견하면 나무에서 내려간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듯 곧 쓰러질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며 걸어간다. 굶주린 들개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들개가 지척에까지 다가오면 거의 쓰러질 것 같던 원숭이는 표변하여 들개의 등에 올라타 목을 졸라댄다. 나무 위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수십 마리의 패거리들은 찰나에 달려들어 한 생명을 끝장내버린다.
아주 어린 새끼를 업고 다니며 도둑질에 나서는 어미 원숭이도 있다. 호텔 방안을 살피고 인기척이 없으면 창문 틈으로 새끼를 들여보내 먹이를 훔친다. 간혹 계획대로 되지 않는 때도 있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오거나 욕실에서 튀어나오면 새끼원숭이는 구석에 숨고 어미는 문을 두드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난동을 부린다. 눈길을 자신에게 돌려 새끼를 빼돌리려는 것이다. 외지인인 경우 원숭이의 핏발서린 비명에 오히려 공포를 느낄 지경이다. 문을 열어주거나 차라리 도망가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도 자연에서 먹이를 찾는 것 보다 인간의 것을 터는 일이 더 달콤하다.
더러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방심한 여행객의 가방을 들치기하고 먹을 것을 빼앗는다. 어떤 때는 전리품을 휘두르며 피해자를 조롱한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이가 외국인 그것도 여인인 경우, 못된 패거리들은 밤새도록 창틀을 흔들거나 괴성을 지르며 위협하곤 한다. 가끔 인간 집단의 악행을 살펴보면 원숭이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젊고 포악하며 주책없는 원숭이 패는 길 위에 앉아 기다리다가 인간을 겁줄 때도 있다. 노숙(老熟)한 것들은 결코 하지 않는 짓이다. 그들이 표적을 삼는 것은 주로 이방인, 그것도 여인일 경우가 많다. 원숭이의 패악에 가던 길을 되돌아가는 푸른 눈의 여인은 한탄했다. “저들은 누가 약한지를 알고 있어요.” 그렇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길을 현지인이 걷거나 특히 짓궂은 사내아이들이 지나칠 때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쳤다. 행여 사나운 아이를 만나면 멀리 튀어도 안심할 수 없었다. 매서운 팔매질이 못된 놈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우리는 그들과 비슷하다. 욕망을 갖고 있고, 쾌락을 쫓으며, 남의 것을 훔치려하고, 누군가를 속이려하며, 패를 지어 배척하고, 강한 자 앞에서 숨을 죽인다. 이성 앞에서 자기를 과시하고 때로는 행복감에 취해 나른한 몸짓을 짓는다. 만약 문학과 예술과 철학과 종교와 도덕과 윤리와 상상력과 자존심이 없다면 인간은 고스란히 영장류의 일족이다.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견고한 터전,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과 철학과 윤리와 종교가 밀려나고 있다. 취업률이 낮으니 문학을 없애고 돈을 끌어오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예술을 지워버린다고 한다. 한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학에서 정신과 인간성의 학살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효율을 명분으로 학과를 나누고 붙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일 당장이라도 공고문 한 장만 나붙으면 학생의 소속과 전공은 사라져버린다. 명백한 기만이다.
아무래도 이 사회, 이 대학, 이 인간들은 자신의 진화가 지겨워진 모양이다. 그리하여 정신을 역행하고 전진을 퇴보하여 스스로의 고결함을 모독하려 한다. 우리는 다시 동물의 들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오직 힘과 먹이와 욕망만이 우열을 가리는 곳. 문학 따위는 없어도 육욕을 부추기는 교성과 헐떡이는 숨결만이 필요한 땅. 자신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모욕하며 돈으로 치환되는 명예와 힘만이 숭상되는 세상을 이루려 한다. 정신의 타락이여 만세! 대학의 명분을 취업률과 투자 지원금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들개를 노리는 노숙한 원숭이의 재주만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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