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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국인 <43> 펜클럽 한국 이사장 이상문 동문34편 소설 집필한 한국문학의 거목
  • 배종성 객원기자
  • 승인 2013.06.03
  • 호수 1541
  • 댓글 0

   
 
동국 문학의 역사는 한국 문학의 역사다. 이 서술은 결코 과장된 미사여구가 아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과 미당 서정주 선생은 동국 문학의 굳건한 토양이며 신경림 시인과 소설가 조정래 등 수 많은 문인들은 오늘날 등단하는 무수한 동국 문인들의 든든한 뿌리이다. 이상문(국어국문74졸) 동문은 동국 문학뿐만 아니라 명실상부, 한국 문학계의 거목이다.

34편의 소설을 집필한 걸출한 소설가인 이 동문은 올해 3월 27일 국제 펜(PEN)클럽 한국 본부 34대 이사장을 맡아 4년간 문인들에 대한 지원을 책임진다. 국제 펜클럽은 1921년, 영국의 여류작가 도슨 스콧이 전세계 문학자의 상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런던에 설치한 국제적인 문학가 단체이다. PEN은 시인(Poet), 수필가와 편집자(Essayist, Editor), 그리고 소설가(Novelist)의 앞 글자를 딴 모든 문인들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전세계 114개국, 143개의 본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가 3,200여 명에 달하는 국제적인 조직이다. 1955년에 한국 본부가 설립된 이래 한국 펜클럽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재학생 시절부터 소설가 기질 엿보여
이상문 동문은 대학 시절부터 재기와 열정이 남달랐다. 당시 선후배들을 모아 동인지 ‘실험’을 발간했다. 유명 문인들이 모여 만드는 문학 동인지를 대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인쇄시설이 변변치 않던 시절, 직접 잉크를 묻히고 롤러를 밀며 ‘실험’을 발간한 젊은 날의 열정은 이 동문에게 애틋한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대학생활이 항상 문학을 고민하는 진지한 문학도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도 있었다. 총학생회장 후보의 찬조 연설자로 나선 일화는 아직도 그를 아는 선후배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때 후보가 제 동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찬조 연설자로 나서서 우리 후보는 학교 언덕길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겠다는 둥, 교내 곳곳에 카페를 만들겠다는 둥, 허무맹랑한 공약들을 말했습니다. 좌중은 모두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헛된 공약을 풍자해서이목을 끈 것이죠. 결국 우리 후보를 당선시킨 결정적 한마디였던 것이죠. 한편의 잘 짜여진 연극 같았어요. 하하하.”
지금은 모두 현실이 돼 버린 그때의 허무맹랑한 찬조 연설은 그가 가진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탄흔’으로 시작된 작가 인생
1969년 그는 군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이듬해 베트남전에 지원한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문학도의 치열한 지적 욕구였다.
“후방에서 병참임무를 수행했어요. 오히려 전쟁터 뒤편에 있으니깐 전쟁의 야만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더 세세히 관찰할 수 있었죠. 이 경험이 제 소설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됐어요.”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그는 1974년, 한국제지공합연합회의 홍보담당 사원으로 입사했다. 기획업무와 소설은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소설가의 기질을 발휘해 업무를 탁월히 처리했고 거듭된 고속 승진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때,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저에게는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소설을 공부하고 소설가를 꿈꾸던 사람으로서 그 거대한 사건을 지켜보고 있으니 뭐랄까요, 어떤 부채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접어둔 소설에 대한 꿈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83년 ‘월간문학’에소설 ‘탄흔’으로 등단했다. 그의 등단은 결코 쉬운 성취가 아니었다.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잠을 줄이고 주말을 반납하며 써내려간 역작이었다.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탄흔’은 베트남전과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함께 다루며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더군다나 ‘탄흔’은 그가 파병 중에 전장에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구상한 소설이기에 그 사실성과 표현력이 살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단한 그는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연재하면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창작집 ‘살아있는 팔’을 발표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근 10년 만에 시작한 소설이었지만 그의 집필 활동은 활발했다. 이 동문은 지금까지 36여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특히 ‘방랑시인 김삿갓’은 10권 분량의 장편 대하소설이다. 또한 1988년에는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소설가로서 어디서 영감을 받고 작품을 집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소설가는 번뜩이는 영감만으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소설은 지루하고도 꾸준한 작업입니다. 마치 아침에 출근을 하듯 글을 써야하는 것이죠.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쓰는 당시의 절박함과 치열함이 없었다면 아마 좋은 작품이 나오긴 힘들었을 겁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인정받아 한국 펜클럽에 가입했다. 한국 펜클럽은 등단 후 10년이 지난, 2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가 이사진의 승인을 받아 가입하게 된다. 이 동문은 11년 간 한국 펜클럽에 소속돼 부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한국 펜클럽 이사장에 선출됐다. 이사장으로서 이 동문은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한국 문학은 세계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로 인해 세계에 그 명성을 알리는 시기가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아픈 과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15년에는 세계 한인 펜 대회를 개최하여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입니다.”

수이불실(秀而不實), 오래보고 기다려라
그는 우리대학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부터 10년 간 우리대학 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또한 2012년에는 우리대학 출신 문인들과 뜻을 모아 동국 문학 100년사를 정리한 ‘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는 문학’을 펴냈다. 출판 자금을 수급할 곳이 마땅치 않자 그는 기꺼이 자신의 사재를 들여 이 기념비적 출판 사업을 완성했다.
“여러 문인들이 모교에 애정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대학이 제공한 문학적 토양과 인적 네트워크는 활용하면서 정작 후배들과 학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제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일찍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타고난 능력이 있으면 분명 이른 시기에 눈에 보이는 성취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순 없죠. 수이불실(秀而不實)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서 일찍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 못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찍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진중히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정을 누비던 재기발랄한 문학청년은 이제 한국 문학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고 동국 문학의 산증인으로 남았다. 그는 결코 순간의 영감과 타고난 재능으로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다. 그가 맺은 열매는 문학과 인간에 대한 뜨겁고 꾸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상문 동문 프로필

△동국대 국문과 입학(1967) △베트남전 참전(1971) △‘탄흔’으로 등단(1983) △대한민국문학상 수상(1988)
△윤동주문학상 수상(1989) △한국소설문학상 수상(2011) △국제 PEN클럽 한국 본부 이사장(2013)

배종성 객원기자  baessi03@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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