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귀성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孝親敬老(효친경로)의 사상이 더욱 뚜렷한 것 같아 자못 흐뭇하기만 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古來(고래)로 小作(소작)형태를 못 벗어난 農耕民族(농경민족)이다 보니까 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논∙밭 갈고, 씨 뿌리고, 갈걷이 하는 등 그 생활의 수단이나 방편이 外廷的(외정적)이라기 보다는 內抱的(내포적)이요, 共同(공동)운명적인 형태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한 마을 자체가 똘똘 뭉쳐 사는 인정의 광장이요, 핏줄과 같은 끈으로 칭칭 동여 맨 結束(결속)의 울안이었다.
  이렇게 자라나고 보니 아무리 객지에 나와 살더라도 같은 고장 같은 마을 사람끼리는 만나기만 해도 반갑고 대뜸 친근미가 생겨 웬만한 일쯤은 서로 격식이나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상부상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 사람은 情(정)에 약한 것 같다. 한 마을에서 뒤엉켜 살아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한 가정에서의 성장패턴 또한 몹시 情的(정적)이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상당기간동안 어머니의 젖을 먹고 매만지며 어머니 품에 안겨 잠을 자고 그 어머니 등에 업혀 자라난다.
  이렇게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며 논리적이기 보다는 직정적인 母性愛(모성애)를 가진 어머니의 품과 체온을 운명적으로 체득하면서 자라다 보니 情(정)을 부정하거나 단념하지 못한다. 우리가 조국을 모국이라 하고 졸업한 학교를 모교라 하고, 국어를 모국어라고 표현하는 것도 다 情的(정적)이다.
  따라서 한국인처럼 血緣(혈연)∙地緣(지연)∙學緣(학연)을 어쩌지 못하고 重視(중시)하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情實(정실)에 흐를 때도 있고 不合理(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많은 不作用(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많지만, 도무지 이러한 情(정)의 올가미는 한국인 누구도 쉽게 끊어버리거나 外面(외면)하지 못하는 생리를 지니고 있다.
  勿論(물론) 그것이 반드시 좋고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秋夕(추석)이나 설에 고속도로가 초만원을 이루고 묘지마다 省墓人波(성묘인파)로 가득한 것이 이러한 情(정)의 여울에 바탕을 둔 귀향의지요 귀소본능이라면 이를 굳이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긴 歸省(귀성)의 의미가 어찌 歸鄕(귀향)에만 국한하겠는가. 가령 졸업한 모교를 찾아가서 옛 스승을 뵙고 온다든가, 옛날의 직장을 방문해서 歡談(환담)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歸省(귀성)일 것이다.
  산업화시대를 맞아 자꾸 살벌해지고 각박해지는 이 社會(사회)에서 一年(일년)에 한 두번 쯤 옛것을 되찾아 살피는 의미는 現代人(현대인)의 메마르기 쉬운 人性(인성)에 좋은 情緖的充電(정서적충전)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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