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는 문턱에 들어서니 지금부터 가슴이 설레고 또한 무한이 기뻐진다. 아마 어느 계절보다 이 겨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까닭에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으면서 그저 기다려지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누가 나더러 겨울을 예찬하게 된 동기라도 꼭 좀 들어보자고 강요한다면 서슴지 않고 다음의 말들을 들려주리라.
  대개의 백설파(?)들과 공통되지 않은, 실로 나에겐 가슴 아픈 동기가 있으니 말이다.
  겨울하면 누구나가 다 연상하듯 또 어련히 불리는 백설의 서정시가 빠질 순 없다.
  괴벗은 전야나 공허한 정원이 새롭게 정결 되고 정숙해지는 가운데 서서히 내리는 그 질서의 멋. 우리의 회의와 번뇌를 말끔히 씻어주고 착하고 곱게 승화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의 가슴을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게 하는 雪花(설화)가 있는 계절. 그 설화의 윤무와 함께 편편히 공평하게 지상의 어디든 내려앉아 주는 모습을 볼라치면 겨울에 특별히 애착을 갖지 않는 이라 할지라고 마음이 조용하게 맑아짐은 자연의 위력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이렇듯 온갖 신비와 자비로 뭉쳐진 것 같은 백설이 흩어지는 계절의 한 조용한 포도위를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있어 멀리 원시 그대로의 설산을 바라보며 같이 걸어보는 참신한 멋도 겨울이 아니고는 도저히 가져보지 못할 낭만의 풍경이 아니랴.
  이같은 서정시를 읊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진 겨울이었기에 영원히 겨울에 살면서 겨울과 함께 인생을 수놓아보고 싶어 사랑하기 시작한 겨울이었지만 지금은 그 핀트가 빗나간 시점에서 이날들을 찾고 또 기다리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하다면 한심한 일이리라.
  일찍이 아니 나의 어머님 뱃속에서 이 땅에 생산된 이후 20년을 살아오면서 아직 뚱보소리는커녕 제법 신체가 좋다는 찬송 한 마디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를 가진 나는 실로 무수한 ‘갈비 스타일’의 별명으로 상승일로 에서 육체미 아닌 골격미(?)로 명성은 다가온다는 것은 곧 과년한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과 상통하였으니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해수욕 한번을 가보지 못한 그 인내력을 가히 칭찬할 만은 하려나 적어도 나만은 눈물 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거대한 육체(?)를 대중 앞에 공개할 용기조차 갖지 못한 나였기에 가끔 때 아닌 조상까지 원망하면서 겨울을 기다려야만 했다. 찬바람이 대지를 스칠 때가 온듯하면 벌써 내외에다 스웨터나 윗도리 오버…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어 걸어놓고 주워 입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aucroff 겹쳐 입고서 드디어 백설이 나를 방문할 때는 거기에다 오바깃이나 세우고 양 포-켓에 손을 깊이박고 고개까지 숙이고 나서면 등치역시도 제법 날씬(?)해진 것 같고 어깨까지 어색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키만은 진짜 유엔표준의 관록을 자랑하는 나이니만큼 아마 날이 보아도 갈비씨 같지는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온갖 공상으로 센치한 멋까지 혼자 다 맛보면서 겨울을 보내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설화가 나리는 나의 계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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