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창작문학상 장려상 수상작


하고 내가 말했다. “그곳과 이곳은 뭔가 서로 델리케이트한 면이 있잖니? 힘차게 돌아가는 풍차와, 옷을 죄다 풀어헤친 넉을 푼 부당과” “이 자식아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지껄이니? 지식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할 말이 많다. 그래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문자를 쓰냔 말야.”
  그가 나의 뇌까림을 단숨에 일축했다. 자식은 자기가 알기 곤란한 얘기라면 항시 비꼬기 부터 했다.
  그와 나는 열시가 될 때까지 평화시장의 책가게를 돌아다녔다. 어정어정 드나든다는 것이 열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우리는 청계극장 쪽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의 담력도 제법 탄력성이 있어서 지난 밤 때처럼 조마조마하거나 다리가 후들거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밀어닥치는 여자들의 홍수를 헤치면서 적당한 여자 둘을 잡았다. 그때 춘덕이가 나를 조용히 보자고 했다.
  그와 나는 한곳으로 가서 마주 섰다. “고래 힘줄 같은 돈을 주고 병을 얻으면 어떡하니?”하고 춘덕이가 말했다. “나는 손해 보고 싶지 않거든” “굼벵이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니? 그 돈 도박했다 셈치자.” 그러나 그는 그 돈이면 고기를 사먹겠다느니, 쌀이 여덟되라느니 딴전을 피면서 별 궁리를 다했다. 나는 그의 볼따귀를 한번 물어뜯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이겨낼 수가 없으나 모든 자제력을 동원하여 꾹 참았다. 여자는 여자들의 독촉에 못이겨 여자에게 팔을 내맡긴 채 어느 판잣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여자에게서 내려온 것은 금방이었다.
  “토선생!”하고 여자가 옷을 주섬주섬 끼어 입으면서 지껄였다. “이봐, 토선생-”
  나는 내심 겁이 났다. 무슨 앙탈을 부릴 작정으로 생경한 말을 꺼내는지 무섭기조차 한 것이다. 내가 그녀위에서 일을 볼 때도 얼굴 한번 움직이는 법 없이 마냥 껌을 씹으면서 태연하게 누워있던 일을 생각하면 더 겁이 나는 것이다. “토선생이라뇨?”하고 내가 반문했다. “토끼말 야.” “내가 토끼란 말요?” “그렇지 뭐야. 토끼처럼 후딱 끝나버리는걸 킬킬-” (이런 망할) 나는 얼굴이 욱신욱신 달아올랐다. “토선생 참아요. 곧 나갔다 올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춘덕이도 나처럼 변방을 지키고 있을까. 자식도 토선생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는 어떤 방에 박혀있을까.
  그때 별안간 밖에서 불이 났어, 불이, 하는 수런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한꺼번에 십여 채의 판잣집을 소각한 불길은 그것도 시원찮다는 듯 자꾸만 옆으로 빠져나갔다. 모여든 사람들은 구경에만 열중해 있었지 불을 끄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불을 끄는 사람은 세금을 얻어먹는 소방대원이지 자기네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들이었다.
  어쩌면 어떤 회심의 미소를 발견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불이 활활 타오를 때마다  냇물 속에서는 불기둥이 꼬리를 물고 흔들렸다. 판장떼기가 냇물에 떨어지면 불기둥은 이내 박살이 나고 말았지만 좀 후엔 다시 기다란 불기둥이 나타나서 가물가물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혹시 여자가 나를 기다리면서 짜증을 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허나 그녀는 종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한숨 잤다고 하는 때에 해가 높이 솟아 있었다. 옆방의 괘종시계가 아홉 점을 쳤다. 중랑천이라면 사람들이 벌써 일을 나가고 난 뒤의 시각이겠으나 이곳의 아침은 아직 일렀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천변은 전쟁이 지나간 거리모양 스산할 뿐이었다. 이 끝난 항구처럼.
  춘덕이는 벌써 집에 와 있었다. “나는 공짜로 오라고 해도 이젠 안간다.” 그는 좁은 눈을 깜짝깜짝 내리뜨면서 잇새로 침을 찍 쏘았다. “기분이 나빠서 말야. 나는 간밤에 그냥 와버렸어. 한사코 붙잡는 걸 뿌리치고 도망와 버렸거든.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야. 인격적으로 대우를 안 하면 나도 가만있을 성미가 아니야.” “그러길 잘했지.”하고 나는 미리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그는 헛침을 턱 뱉어냈다. “개쌍년들 사람을 무시하면 낸들 가만히 있을 줄 알구?”
  나는 그의 눈두덩을 한대 먹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손이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중량한 판자촌에 철거령이 내렸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었고 화젯거리가 될 만한 것도 못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당국에선 기일 안에 자진철거를 하지 않으면 집을 포기하는 걸로 알고 시에 접수하겠다고 했다. 접수란, 대신 철거해주겠다는 소리였다. 이렇듯 강력한 시달리고 보면 이번조차 가볍게 받아 넘길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버티고 있었다.
  철거령 마감 기일이 끝난 그 이튿날 마침내 기동 경찰관들이 동원되었다. 판자촌을 철거하는 데는 삽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늙은 부부가 나와서 통곡으로 애걸을 하여도, 장년들이 괭이를 들고 나와서 덤벼들어도 기동대들은 안 속는다는 듯 판잣집만을 걷어냈다.
  춘덕이와 나는 중랑천을 벗어나와 있었다. 나는 크기만 한 빈 트렁크를 들고 춘덕이 뒤를 따랐다. 이 트렁크란 집을 옮길 때마다 자석처럼 따라 다니는 물건이었다. 춘덕이는 빈 냄비를 싼 보퉁이를 들고 있었다. 그 냄비 속엔 옹기그릇 두개와 납작해진 칫솔과 빨래 비누가 들어있을 것이었다.
  집이 없거나 집을 일은 사람에겐 유별나게 밤이 이르다는 것을 알리라. 그것은 사실이다. 일을 당해보는 사람은 말이다. 나는 그렇게 밤이 이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걷고 있었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의외로 청계천변이었다. 내가 앞장을 섰으니까 춘덕이는 내 뒤를 따라왔겠으나 그러나 왜 내가 이리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방세가 쌀 것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안심하고 살 것 같아서였을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모든 것이 그런 것도 같았다.
  어수룩한 골목길에 이른 나는 그를 마주보면서 “어떡하면 좋겠니?”하고 막연하게 물어본다. “.....” “이곳에 자리를 잡는 수밖에 도리가 없나봐.” “그렇지만 여기는 안 돼.”하고 그가 뭔가 궁리하는 듯하면서 “인간성이 버려지고 욕심이 버려지고, 살고 싶은 맘이 버려진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이니?”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조금은 나를 아니꼽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한참을 묵묵히 서 있다가 마침내는 그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갈 곳이 없다는 슬픔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 혼자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너무나 울어버린 뒤였고, 안 울었던 때처럼 달리 어떻게 처신하기가 곤란할 무렵이었다. 춘덕이는 내가 울고 있는 것이 기분 나빴던지 네온이 흐르는 먼 빌딩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그머니 눈 끝에 졸음이 매달려있다. 피로했던 모양이었다.
  “여기에 우선 발을 붙이자. 적응이란 게 있잖니? 넌 역시 둘도 없는 내 친구지”하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참동안 할 말을 뭉그적거리다가 불쑥 한마디 꺼냈다.
  “안 돼. 욕심이 버려진다. 살고 싶은 인생도 버려져. 너하고도 안 돼.” 그는 이미 작정한 바가 있었다. “갈라지자.”하고 그가 간단없이 말했다. 그 말은 나직하면서도 윽박지르듯이 내뱉어 졌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밀린 네 방세는 시골에서 받을 거야. 연락을 취해 놨으니까.” 네 “그 뭐래도 좋아.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이냐.” “넌 그래도 대학생이야.” 처음으로 그는 그 대학생이란 용어를 써먹었다. 나는 어떻게 대꾸를 해주어야겠는데 마땅한 대꾸가 얼핏 떠오르지 않아서 히벌쭉 웃어 버렸다. 허나 그렇게 웃긴 웃었어도 그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이날따라 박속처럼 싱겁고 허탈한 내용을 담은 웃음은 일찍이 없었다.
  춘덕이는 그 웃음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골목 밖으로 급히 빠져나갔다. 나는 그 외 뒤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이 나의 등덜미를 덥석 잡아채는 착각에 놀라서 그 자리에 주춤 서버리고 말았다. 그를 따라갈 용기가 도무지 안 나는 것이었다. 그때 정말 슬그머니 내 팔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약을 주어야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정을 주어야 해요.” 여자는 내 팔을 잡고 방황과 슬픔으로 가슴이 메워진 나를 더욱 더 울리고 있었다.
  “사는 건 물거품예요. 그게 사라지기전에 인생을 만끽해야 잖아요? 어서 오세요. 제 얘긴 신파가 아녜요. 가장 절실한 얘기죠.”
  여자는 내 팔을 안아낀 채 발뒤꿈치를 높여서 나의 귓밥을 자근자근 깨물어주었다.
  “당신은 지금 심장 구멍이 나있는 것 같아요. 구멍 난 사람끼린 서로 위로가 될 거예요. 그럼 어서 가요. 울어야 할 필요가 없죠. 뭐--”
  그러나 나는 이 여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다만 그말이 유혹이란 사실만은 분명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순순히 따라야 할지 춘덕이가 간 곳을 곧 뒤따라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그저 별이 깔린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뜨겁고 뭉클한 것이 영 내려가지 않은 채로 가슴은 짓눌려 있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