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탐험기

自然(자연)의 造花(조화)ㆍ壯觀(장관)이루어
觀光開發(관광개발)의 꿈 부풀어
微生物(미생물)에 관심 기울여
20餘種(여종)의 박테리아 採集(채집)
 

클라이밍 개시
  洞窟(동굴)이 探險(탐험)의 專用對象(전용대상)은 아니지만 今般(금반) 探險隊(탐험대)의 결단성 있는 움직임은 잘 훈련된 校內(교내) 산악반(Climbing club)의 기술을 과시함에도 그랬지만 초창기인 探險隊(탐험대)의 隊內訓練(대내훈련)을 위해서도 그 절친 강원도 영월군 하과 ‘大野窟(대야굴)’의 힘든 探險(탐험)은 앞으로의 洞窟(동굴) 探險(탐험)요령 探險(탐험)장비 연구 및 觀光(관광)지 開發(개발)과 生物學(생물학) 學術調査(학술조사)에 크나큰 발판이 될 줄 믿는다.
  11月(월)18日(일). 閔完植(민완식) 元炳徽(원병휘) 교수님 그리고 배석규(한국洞窟(동굴)협회理事(이사))선생님의 지도와 역 까지 마중 나온 여러 山岳班員(산악반원)의 뜨거운 환송을 받고 한 것이 0時(시)30分(분). 8名(명)의 隊員(대원)들은 초조히 기대를 안은 채 긴긴 여정을 들었다.
  19日(일). 삼한사온의 영향인지 前(전)날에 비해 사뭇 포근한 날씨는 번잡한 마음들을 개운케 하는데 足(족)했다.
  역전에서 東江(동강)의 落花岩(낙화암)을 뒤로 돌리며 차는 南西向(남서향)으로 내달았고 目的地(목적지)인 진변리에 닿으니 한낮 오후.
  숙소를 정하자 계은 촉박하게 박력 있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공동장비 電池(전지) 복장 사진 採集(채집) 개인장구는 될수록 간편히 꾸렸다.
  洞窟(동굴)에 萬能(만능)인 權哲周(권철주)(政外(정외)3)군이 톱(Top)을 섰고 隊長(대장) 車光(차광)(경행2)군이 ‘세컨드’. 사진作家(작가) 金榮九(김영구)씨와 生物班(생물반)의 벅찬 ‘클라이밍’에 대한 기술지도는 김무웅(본교 卒(졸))씨, 그리고 ‘라스트ㆍ가드’(last guard)는 역시 산악부 OB의 강성윤(본교 卒(졸))씨가 맡았고 그의 장비공급은 산악반의 申弘植(신홍식)(史(사)1)군이 맡았다.
  ‘헬멧’으로 무장한 隊員(대원)들은 마치 투구로 단장한 ‘로마’의 기병대 같이 보무 당당하게 미지의 暗黑世界(암흑세계)(?)로 진군했다.
  江(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高度(고도) 2백30m의 不毛山(불모산)에는 거뭇거뭇한 석회암석이 이곳저곳 멋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기념촬영을 끝내고 1백여‘미터’는 될까한 강을 나룻배로 건넜다. 막다른 山(산)을 30여‘미터’ 올랐을까, 큰 巖石(암석)밑으로 폭2‘미터’ 높이 2‘미터’정도의 불규칙한 穴口(혈구)가 밑을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여기가 <고씨굴>.
  一切(일체)의 記錄(기록)은 生物班(생물반)이 맡고 探險隊(탐험대)는 신속히 맡은바 위치를 고수했다. 호기심과 초조. 긴장으로 울렁이는 探險(탐험)은 시작됐다.
  破巖(파암)과 落葉(낙엽)이 어수선한 入口(입구)길을 요란스럽게 내려섰다. 뜨뜻미지근한 탁한 공기, 어둠속에 휑 트인 웅장한 암석 空間(공간)속에 어리둥절한 자신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칠흑같은 空間(공간)에 후레쉬(head lamp)는 무참히 묻혀버리며 나약한 光線(광선)을 發(발)할뿐이었다. 쾌쾌한 흙냄새가 건조한 공기와 함께 훅 풍겨 왔다. 주위의 암석은 퇴색된 구리빛으로 메말라있었다. 습기가 많으면 아름답게 보이는 암석이라지만 훤칠한 入口(입구)광장을 지나 좁은 협암간을 몇 번 구비 돌아 빠져나갔다.
  단순하게만 생각되었던 土窟(토굴)같은 穴路(혈로)는 어림없었다.
  10‘피드’ 저쪽위로 얼핏 보이는 穴口(혈구)도 그런대로 어려운 進路(진로)의 시작이겠고, 이쪽 왼편 밑으로 돌아도 더 좋은 길이 나올지 모른다. 비좁은 穴口(혈구)를 파헤치면 밑으로 어마어마한 광장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人間(인간)이 힘들여 조각해놓았을 것 같은 이 오묘한 조화에 단 한 通路(통로)로의 探險(탐험)이 부끄러워 지는듯 했다. 앞에 둘러멘 探險(탐험)통은 요란하고 거추장스럽게 덜컹 거렸지만 밑으로 기고 혹은 시끄럽게 떨어지며 앞길을 개척하는 선발대의 뒤를 정신없이 쫓았다. 200m를 나아갔을까? 시간은 入口(입구)에선지 30分(분)을 넘고 있었다. 급한 물소리가 들리며 숨이 확 트이는 듯한 넓은 空間(공간)에서 우리의 후레쉬는 큰 호수를 포착했다. 신묘한 自然(자연)의 조화였다. 물은 요란히 옆구리를 빠져 예리한 암석들을 조각하고 있다. 10피트는 넉넉한 수심 밑으로 모래 한 톨 없는 아름다운 色(색)의 암석이 바닥을 수 놓고 있다. 물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선발대는 말없이 꾸준한 임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두 대의 ‘에어메트리스(airmetress)’로 조작된 배로 폭 40여 ‘피트’의 물을 건너 급히 아슬한 암석을 기어오르며, 비좁은 石筍(석순)사이를 빠지니 길은 일단 없어지고, 양옆에 긴 암석만이 벌어져 있을 뿐,  ‘후레쉬’의 빛이 닿을까 말까한 밑으로는 변화무쌍한 石筍(석순)의 사이를 굽이치는 요란한 湧水(용수). ‘침니’로 한발 한손 어둠을 해쳐 들어갔다. 다행히도 ‘크락’을 할 때 암석은 운동화 바닥을 박력 있게 잡아 주었으며, 간간이 石筍(석순)이나 鐘乳石(종유석)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두어 시간을 들어왔을까? 길은 비교적 평탄했다. 거대한 空間(공간)이 나타나고 왼편 바닥엔 큰 盤床(반상), 오른편으로는 맑은 地下水(지하수)가 바닥까지 시퍼렇게 투명하다. 일행은 반석위에 ‘베이스’를 定(정)하고 잠깐의 긴장을 풀기로 했다.
  그토록 밝은 용수로 버너(BURNER)에 끓인 커피맛! 형형색색 암석의 절경 속에 저마다 도취된 듯 아무 말 없다. 저쪽 구석에서 물가운데로 드리운 종유석이 휘황하게 번득거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 外界(외계)와의 완충지. 그 보잘 것 없던 민둥산 속에 이토록한 조화가 깃들였을 줄이야….
  기울인 커피에서 서려 오르는 무수한 김을 통해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의 明暗(명암)짙은 말없는 얼굴들은 그런대로 멋이 있었고 미덥기 한량 없었다.


관광지
  이제껏 探險(탐험)에 급급한 나머지 김선생님 외 카메라에 포착치 못한 절경을 아쉬워하며 行進(행진)은 계속되었다.
  여러모로 보는 각도에 따라 千態萬象(천태만상)의 암석들은 그런대로 배경과 콤비네이션을 이루는 절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늘같이 높은 天井(천정)에서 내려뻗친 형형색색의 鐘乳石(종유석)도 그랬지만 뚜닥에 떨어져 커가는 石筍(석순)과 맞부딪쳐 마치 고대희랍의 웅대한 건축물의 기둥같이 우아하게 번들거린다.
  어느 地質學者(지질학자)의 말대로 이 아름다운 기둥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연필 굵기의 흰빛 ‘스트로우’가 직경 1cm길이 10cm로 크기까지 2천 7백년이 경과되어야 한다니….
  아직 石筍(석순)과 맞닿지 못한 손가락 같은 어린 鐘乳石(종유석)은 그 끝에 어느 소복 입은 가냘픈 여인의 고귀한 눈물방울같이 귀중하게 물구슬을 달고 일정한 템포로 떨어지고 있다. 入口(입구)에서 보다는 높은 습도타인지 윤이 나는 주위의 암벽은 분홍빛, 黃(황)色(색)도 회색, 고동색의 무늬들을 불규칙하게 흘리고 있다. 만일 저 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그 위에서 심연한 哲學(철학)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百聞而不如一見(백물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펜으로 아무리 경탄해도 독자들에겐 장황한 파장밖에 되지 않겠지만 어느 外國雜誌(외국잡지)나 영화에 비친 洞窟(동굴)이 못다할 天然(천연)미술품을 이렇게 無心(무심)하게 버려두고 探險隊(탐험대)라는 구구히 어려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만이 이 절경을 감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무리해도 ‘아이러니컬’ 하다.
  석회分(분)을 용해시키며 낙하되는 물방울의 力學的(역학적) 의미에 따라 또 그 속에 포함된 불순 물속의 이온률에 따라 형형색색의 변화는 무궁하다.
  파도물결의 石筍(석순)밭 여기저기에 주발만큼 파인 우물 안에 다소곳이 담겨진 洞窟(동굴)진주며 야릇한 女人裸像(여인나상), 피아노의 高音(고음)을 연상시키는 속이 비어 말려진 종유벽 등 그의 컬러 사진이 아니고서는 설명 못다할 아기자기한 예술품은 얼마든지 發見(발견)할 수 있다. 후레쉬 끝은 얼굴의 긴장과 환호성을 일깨웠지만 지루하달 수는 없다.
3時(시)30分(분). 기온은 이제껏 가장 낮은 12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베이스’로 돌아온 隊員(대원)들은 1시간을 더 가야한다는 저쪽 폭포소리를 가깝게 들으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뿌듯한 기개를 농담 속에 담으며 돌아오는 길은 즐겁기만 했다. 男兒(남아)의 환호성이 칠흑 같은 空間(공간)을 돌아돌아 깊이 흘러 들어간다.
 

끊임없는 探險(탐험)
  20日(일). 어제의 피곤함도 젊음의 단잠에 사르고, 아침길을 서둘러 ‘대야굴’로 내달았다. 隊員(대원)들은 줄곧 웃음 속에 지루한 걸음도 洞窟(동굴)에 대한 긴장감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은 探險隊(탐험대)의 단결을 그만큼 촉박시켜주는 중요한 분위기조장이라 생각했다.
  ‘고씨굴’에서 南東(남동) 약 2ㆍ5키로 떨어진 ‘대야굴’은 폭 5미터 높이 4미터의 전형적인 굴의 入口(입구)다. 巖石(암석)의 굴곡은 긴박했으며 30미터쯤 들어간 곳부터 습기는 많고 물은 어느골에서도 콸콸 솟구친다.
  허리께 나오는 巖間(암간)의 물도 아까 강을 건널 때 경험한 탓인지 대단치는 안했지만 저미어오는 발은 끊어질듯 차갑다. 비교적 폭이 좁은 길 때문인지 1ㆍ20미터의 天井(천정)이 하늘같이 높아 보인다.
  단 한줄의 ‘스트로우’며 한 알의 洞窟(동굴)진주며 鐘乳石(종유석)과 石筍(석순)에도 隊員(대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소중히 다루었는데 아마도 저마다의 觀光(관광)개발계획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미국 테니시주 ‘컴버탠드’洞窟(동굴)의 ‘볼캐노’의 광장의 암석무대에서 감히 합창공연이나 콘서트는 갖기 못한다 하더라도 30여개의 아름다운 굴을 고이 간직한 우리 강토의 영월지구는 광광에로 시급히 개발되어야할 것 같다. 이 전등시설, 위험지역의 난간 줄사다리 등 조금의 힘만 쓰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내 고장 자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영월에는 화력발전소를 비롯해서 쌍용 시멘트 탄광들로 산업觀光(관광)을 겸할 수 있고 동강 落花巖(낙화암) 단종왕능 장능 청영포 등 명승고적을 간직하고 있어 더없이 좋은 觀光(관광)지역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學術調査(학술조사)
  生物相(생물상)은 한마디로 그 밀도가 너무나 미약한 것이 適者生存(적자생존)의 계열을 보이지 않았다는 點(점)이다.
  밝은 地下水(지하수)에는 플랑크톤이며 부식토며 조류나 말류도 없었고 외국에서와 같이 눈먼 고기나 백색가재 장님 도룡뇽도 물론 없었다.
  그것도 수십 분을 관찰해서야 눈에 겨우 보이는 몇 種(종)의 白色(백색) 톡톡히類(류)와 단 한 마리의 옛새우를 採集(채집)할 수 있었다.
  온도와 물이 적당하나 植物(식물)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으며 박쥐분의 유기물의 樓食(누식)하는 보잘 것 없는 多足類(다족류)와 곤충이 있을 뿐이다. 비교적 건조한 곳에 거미류나 지네류를 간혹 찾을 수 있었으며, 入口(입구)에서 1백~2백미터 사이에서는 괌박쥐와 집박쥐들이 동면하고 있었다.
  특히 洞窟內(동굴내) 微生物(미생물)에도 관심을 두어 20여종의 ‘박테리아’를 공기 중에서 採集(채집)했으며 3군의 곰팡이類(류)는 현재 미생물 硏究室(연구실)에서 면밀히 배양중이고 그 分類(분류)에 있어서는 얼마의 時日(시일)을 要(요)할 것 같다.
  洞窟內(동굴내) 生物學的(생물학적) 환경조건과 採集(채집)된 個體(개체)는 別表(별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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