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나날이 오고 또 가는 속에서 한 번도 한가로이 겨울을 追憶(추억)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 ‘겨울의 追憶(추억)’이라는 제목을 받고 보니 우선 생각나는 게 故鄕(고향)이다. 두터운 솜바지 저고리에 허리에 책보를 매고 뛰던 십리길이나 되는 학교길, 압록강에서 불어오는 모진 바람이 몹시 춥던 少年時節(소년시절). 그러나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겨울밤이면 참새집에 새그물을 던져 참새를 잡아 솜바지 가랑이에 넣어 가지고 와 구워먹던 생각이 떠오른다.
  中學時節(중학시절)의 겨울은 압록강에서 많이 보냈다. 눈이 많고 어름이 굳은 압록강에서의 ‘스케이트’타기, 여름이면 뗏목으로 겨울이면 큰 썰매로 많은 짐을 나르던 광경을 지금 생각하면 동화 속에 나오는 옛 이야기만 같다.
  黃金(황금)의 大學時節(대학시절)의 겨울은 異國(이국)의 낯설고 추운 하숙방에서 보냈다.
어머니께서 정성껏 만들어 부쳐주신 갱엿으로 故鄕(고향)을 씹으며 긴 겨울밤을 재미도 없는 책(농학서적)과 노-트와 씨름하는 동안 몇 번의 겨울이 가고 말았다. 멋진 친구들처럼 눈 오는 밤거리를 연인과 한없이 거닐었다든가 긴 겨울밤을 둘이 마주앉아 詩(시)와 文學(문학)을 이야기하며 젊음을 불태우든 그런 흔해빠진 스토리의 浪漫(낭만) 하나 가져 보지 못한 채 黃金(황금)의 時節(시절)은 갔다. 그런 멋진 追憶(추억)이라도 가졌더라면 이 글도 재미있게 읽을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刻薄(각박)하고 어수선한 現實(현실)속에서나마 그 겨울의 그 여인을 생각하며 흐뭇한 追憶(추억)의 한때를 즐길 수도 있었으련만…
  지금 생각하면 화가 치밀도록 後悔(후회)스럽다. 그러나 겨울방학이면 故鄕(고향)에 돌아와 먹든 냉면맛은 잊을 수 없다.
  비교적 성실했던 나는 마음 맞는 몇몇 친구와 겨울방학이면 故鄕(고향)의 마을의 書堂(서당)을 빌려 夜學(야학)을 가르쳤다.
  夜學(야학)이 끝나면 출출하다. 밖은 살을 여일듯 눈보라가 치고 춥지만 냉면집 방은 절절 끓는다. 그 더운 방에서 꿩고기를 다져얹은 곱빼기 냉면에 찡하고 시원한 냉면국물맛은 天下一味(천하일미)다.
  지금은 故鄕(고향)의 겨울맛이 담긴 그 냉면은 먹어볼 길 없다. 통일이 되어 故鄕(고향)에 가면 그 맛을 다시 찾을 수 있을런지.
  친구와 술에 인색하지 못한 나는 긴 겨울밤을 밖에서 헤맬 때가 많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은 으레 그 냉면 생각이 간절하다.
  이 맛이 텁텁하고 속이 쓰릴 때엔 박카스를 마시면서 그 찡하고 시원한 냉면국물을 생각한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자 겨울의 追憶(추억)보다 겨울의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의 入學問題(입학문제), 農場(농장)(조그마한 포도밭이지만)에 肥料(비료)를 내야하는 걱정 자질구레한 가정의 越冬問題(월동문제)까지 신경을 건드린다.
  또 오는 겨울부터라도 멋지고 풍부한 追憶(추억)거리를 장만해야겠다.
  먼 後日(후일)에 있을 겨울의 追憶(추억)을 爲(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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