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향취와 문화차이

‘블루칼라 시인’으로 불리우는 켄 로치는 리얼리즘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의 작품들은 부조리한 세상의 제도와 질서에 시달리는 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앞날이 보장된 의사직을 포기하고 조국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투쟁담을 눈물겹게 그려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직업소개소에서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하고 해고된 여성이 이주노동자를 이용하게 되는 악순환을 담담하게 고발하는 ‘자유로운 세계’ 등.

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갑’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을’로 살아가는 힘겨움과 울분이 가슴을 울린다. 그런 계보 속에 놓고 보면 최근 개봉작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향긋하게 유머를 타고 다가온다.
경범죄에 걸린 이들이 사회봉사명령에 따라 청소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다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하는 야외수업도 나가는 행운을 누린다. 주인공 로비는 홈리스 같은 처절한 상태로 곧 아빠가 될 처지이지만 폭력배로부터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막 태어난 아이를 만나러 간 병원에서도 로비는 건달들에게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다. 그런 로비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사회봉사 교육관이 그에게 위스키 한 잔을 권한다. 고급 위스키를 마셔보지 못한 로비에게 외로운 삶의 향취가 전해진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뛰어난 후각을 발견하게 되면서 독학을 통해 위스키 감식가의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사회봉사하는 세 친구들과 함께 촌티 나는 스코틀랜드 민속의상 치마차림으로 신분을 위장한 이들은 경매장에서 수십억대로 거래되는 오래된 위스키 향취를 맛본다.
고급 위스키 소유와 음주를 즐기는 부자로부터 이들이 빼내는 위스키의 깊은 향취는 극장에서 직접 맡을 수 없지만 은은하게 삶의 위로를 전해준다.

하층민의 삶을 달래준 영화를 보며, 그 향취에 무지한 내 호기심이 작동하던 바로 그 무렵, 음주사건으로 포장된 망신스러운 전 대변인 사건이 터졌다.
음주 성추행과 연관된 언론보도를 접하노라면 한국의 음주문화를 묻던 외국 친구의 질문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술 취하면 무슨 짓을 해도 눈감아 주는 것 같다 술에 취하건 아니건 ‘갑’이란 사람은 동일한데, 술에 취해 하는 행동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은 왜 그런가?” 술을 대하는 문화차이가 아프게 다가온다.
이번 사태가 풀려나가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권력을 가진 ‘갑’의 음주 추태 문화가 문화차이로 고착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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