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자가 싫증이 나기도 하지. 그 원인은 결국 여자 측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나는 하려던 말을 집어치웠습니다. ‘네온’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오락지대의 눈부신 건물을 보았던 때문입니다.
  ‘네온싸인’은 갖가지 색깔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네온사인’의 글씨 밑에는 여자의 나화가 붉은 미소를 내뿜고 있습니다. 저는 여자와 함께 거길 빠져나왔습니다. 여자는 침착하게 저의 걸음에 맞춰 걷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막연한 불안을 표시하며 말했어요.
  “저녁 열두시가 넘어서야 자는 게 나의 습관이에요.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그림을 그려야죠.” “그림을 그려야 된다구?” 그림을 그리건 노래를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생을 사는 방법에 어떠한 수단이 작용하였더라도 삶이 진실하면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리본’ 달린 여자의 ‘에나멜’ 구두가 차디차게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가느다란 다리, 빨간 ‘코트’ 커다란 나비 형태의 금속제, 은빛나는 ‘마스코트’ 그것은 한결 같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피곤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고 더 나아가서 잠만 자거나 라디오의 유행가에만 귀를 기울이기엔 싫증만 나니까요.” “좋은 생각이군”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보수 많은 직업을 구하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그만두고 말았어요. 흥미 없는 일을 못하는 게 나의 성질이니까요.” “……”
  “듣고 있나요? 제 말을.”
  저의 어렸을 적부터 남들과 한창 이야기하면서도 곧잘 제 일에만 열중해버린 까닭으로,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기 쉬우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 그게 얼핏 떠올랐습니다. 저는 자기말로 열렬한 문학도라는 이십세 쯤의 남자로부터 짧은 창작품을 하나를 받아두었으나, 어제 저녁에야 읽을 수가 있었는데 그 작품은 대충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전 그것을 여자와 걷고 있으면서 염두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조금 전 찾아간 쌀롱 <큐>의 홀 안에서 새파랗게 젊은 남자와 여자와 둘이 정답게 앉아있었고 약간 그 뒤로 다른 한 쌍의 남녀는 숱한 실랑이를 벌여대고 있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남자를 외면한 여자에서 몇 마디 말을 건네던 남자도 천장만 쳐다보고 담배를 씹어대듯이 자주 갈아 피웠다.
 남자는 여자의 의자 쪽으로 상반신을 기울이다싶이 가깝게 대고, 중얼거렸으나 상대편은 대답이 없었다. ‘이베뜨·지로오’의 ‘샹송’이 끝나기 조금 전, 남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서며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 고개를 들게한 다음 철썩 뺨을 후려치고는 문밖으로 뛰어 나가버렸다.
  어머니·‘슈테판·슈바이크’의 소설에 나타난 모든 인물은 극히 가공스런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 하지만 그의 유미적인 수법은 훌륭하다는 것과, 그래서 모든 소년 소녀들은 그를 즐겨 읽는다고 그에게도 말해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뭘 마시고 싶어요.”
  저의 뇌리에 그 문학도의 첫 구절과 어렸을 때의 흐릿한 영상이 마구 교차되자 아마 여자도 화가 났던 모양이었습니다.
  “돌아가겠어요.”
  여자가 마침내는 저를 흔들어서 모든 기억들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뭘 마시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싫어졌어요.” “......”
  “그만 가겠어요.”
  “이름이?” “지애.”
  여자는 굳게 다문 입을 끝내 닫힌 채 뒤를 돌아 오던 길을 곧장 걸어가다가 길이 구불어진데서 되돌아서더니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작가 P씨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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