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아버지 곁에 바싹 다가서서 자릴 잡았다. 해진 문풍지 사이로 제 방을 넘어온 강바람이 스며들었다. 몸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울음소리가 창자를 긁어댔다.
  “내가 죽기 전에 네눔에게 줘얄께 있어”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가시다니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진 말을 가로채고 나섰다. 오늘따라 말에 퍽 근엄한 힘이 배합되어 있었다. 긴 한숨이 모여 문틈으로 새나갔다.
  “네눔 에빈 벌써 내 자식도 아니고, 네눔이 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 대가, 이건 네 에비가 손못된 마지막 남은 논문서다. 얼마 못가서 네 할미도 죽을끼고, 졸업하거든 이 논 팔아서 네 이미 데불고 서울가서 살거래이, 이젠 다 틀린 일이니 구태여 촌바닥에서 살 것 없다.”
  할아버진 배개 밑에 접어두었던 서류뭉치를 뼈만 앙상한 손으로 넘겨주셨다.
  비가 내려야 한다. 며칠이고 비가 내려야 한다. 유일한 교통로인 강나룻터에 물이 들고 뱃사공이 대문 밖으로 나올 수 없어야 한다. 강을 건너면 시오리나 떨어진 곳에 함안이 있고 그 길로 마산, 부산으로 통했다.
  무섭게 비가 공간을 들쑤셔야 한다. 사공은 빗살에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종일 방안에서 물구나무만 서야한다. 그래서 아버진 강 건너 나룻터에 서서 비만 흠씬 뒤집어쓰고 다시 마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할아버진 아버질 보는 순간 수만 개의 핏줄이 부풀어 오른 시뻘건 몸체로 절명하실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는 뙤약 가뭄에 비 맞은 기세로 설칠 것이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선산이랑, 논밭이랑 팔아서 마산에서 학원까지 개업해서 배가 가슴보다 더 나오게 먹고사는 아버지는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마 이제 몇 마지기 남지 않은 전답을 모조리 팔아서 단층 양옥에 이층을 올리고, 학원 규모를 더 크게 늘릴지 모른다.
  바람이 더 거세게 일었다. 강변에 빽빽이 들어찬 키 크고 여읜 버드나무가 몸뚱이채 술렁이는 소리를 냈다.
  누구도 범하지 못할 만치 굳고 힘 있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퇴색되고 있었다. 일곱 번이나 연달아 터져 나오는 기침을 하시고는 몸에 불편을 느끼시는지 할아버진 모로 누우셨다. 나는 얼린 땟자국이 촘촘히 낀 할아버지 수염 같은 빛깔의 베개를 받쳐 드렸다. 할아버지는 누운 채 빈 담뱃대를 찾아 입에 물었다. 나는 쌈지에 담겨있는 가룻담배를 대머리통에 재어놓고 불을 살랐다.
  “성호야, 내일쯤 서울 올라가거라, 난 안죽어, 네눔이 올개 대학교 졸업하고 장개가서 새로 장손주 낳고 집안 꾸리는 꼴 보기전엔 안죽어”
  할아버지의 숨결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늙은 몸 한루밤새 모르는 것인게 네눔한테 서류뭉칠 건네주긴 했지만”
  “...할아버지”
  “괜찮다, 괜찮아, 늙은 것 지레 죽을까봐, 네 에미가 전볼 친 모양인데 학교를 빼먹고 매양 결석하모 우짜노?”
  “그렇게 짬새가 없는건 아녀요, 할아버지”
  “물론 네눔이 알아서 하겠지만, 내 건강은 걱정마라”
  처마끝의 풍경이 또 울었다. 할머니는 잡귀를 쫒을 양으로 그랬는지, 어디서 구해 온 풍경을 삼사년 전에 처마 네 모퉁이에 매달았다. 풍경은 밤이 짙을수록 더 청아하게 울었다. 청아하기라고보다 소름이 끼치는 스잔함이라 해야 옳았다. 어떤 밤이면 어둠을 갉아먹는 처절한 소리 때문에 밤새 이불 밑에서 태양이 어둠을 이기고 돋아날 때까지 꼼짝 않고 있었다. 나는 며칠 뒤 일단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할아버지도 모르게 몇 해째 재수를 하는 내게 드디어 할아버지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시험도 얼마 남지 않은 늦은 가을에 운명의 전보는 나를 찾아왔다. 나는 질식당할 듯한 두통을 느끼면서 시골로 다시 내려갔다. 아버지는 상복을 입고 할아버지 빈소 앞에서 조문객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싸늘하게 식은 할아버지의 주검에 매달려 통곡을 했다. 무지 무지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세찬 물줄기가 굽이지는 곳에서부터 방벽을 갉아먹었다. 나는 바위덩이채 먹어 치우는 무서운 물소리만큼이나 크게 울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뺨을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나를 할아버지 주검으로부터 끌어냈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내가 네 살 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항상 두려운 사람이었고, 그 후로 아버지라고 불러 본적도 없다. 할아버지는 죽어서까지도 아버질 용서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항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눔은 에비하고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 넌 네 에빌 어떻게 생각하노”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는 어느 정도 나의 식견을 인정하시는 것인지 할아버진 아버지의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늙은 에비, 에미 등지고, 니 에미까정 버리고 내 뺀놈, 그 놈을 우찌 사람이라 쿠짓노. 선산까정 팔아처먹고 제만 잘살면 제일인중 아는 불치헌 놈 같으니라구, 인자는 죽어도 그 눔은 용서 못한다이”
  그러실 적마다 할아버지의 눈덩이는 붉게 달아올랐다.
  “할아버지 오래나 사세요, 내가 할아버지 편히 모실께요”
  “그래, 그랬음 이 할비가 울매나 좋것노”
  “할아버지...”
  “조상보기 민망한 건 어쩔라 치더래도 당체 동네사람 보기 무안해서 큰 소리 제대로 못허고 산지도 벌써 이십년이 넘었다”
  “이제 다 틀린일이잖아요”
  “그래,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제”
  “걱정마세요, 할아버지”
  “걱정은 무슨, 구십 평생 살아온 가슴에 한이 안풀리니...... 정말 너무 많이 살았나 보다”
  할아버지는 일곱 번씩이나 또 기침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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