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회 본사 학술상 창작분야 장려상


“아줌마, 이제 나는 잊혀 버렸어. 이제는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사람들은 아무도 더 이상 날 기억하지 못하나봐” 무슨 일인지 알 만 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줌마, 저녁때 돌아올게요.”
  그녀는 인사하는 나에게 자동차 안에서 잠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아무래도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었다. 자동차는 마치 여왕의 호화로운 마차처럼 요란스럽게 대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몇 번을 으르렁거리더니 어느새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골목길을 달려 내려가는 자동차의 꽁무니가 조그맣게 가물거렸다.
  나는 천천히 대문을 닫았다. 철제로 된 대문은 기분 나쁜 신음소리를 토해놓았다. 중세의 성에 걸린 도개교를 올리는 느낌이었다. 대문에 빗장을 걸고는 집안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젠 가을이구나. 정원의 넓은 잔디 위로는 가을 특유의 화사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잔디는 아직 파란 빛깔이 돌긴 했지만 그 위로는 벌써 색 바랜 낙엽 몇 장이 뒹굴고 있었다. 나비 녀석은 그 새 어디로 달아났을까?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대문까지 쫄랑쫄랑 나를 따라나서던 고양이를 찾아 정원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녀석이 곧잘 숨어 있곤 하는 연못 근처의 바위 틈이나 단풍나무 옆의 풀숲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 집안 어느 구석에서 쥐새끼를 찾아 헤매든지 아니면 어디 양지쪽에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정원 쪽으로 몇 번 나비를 불러보다가 현관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집의 거대한 몸집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 혼자 살기엔 쓸데없이 커다란 집이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집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작은 성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집이 언덕배기에 있는 데다, 언덕을 올라오는 동안 나의 기를 죽여 버린 높다란 담장이 그런 느낌을 갖게 했으리라. 겨우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졌을 즈음 갑작스레 셋방으로 나앉게 된 나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이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기보다 놀라울 뿐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나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먼저 집안 청소부터 한 다음에 그간 쌓여 있을 빨래를 세탁해야 할 것이다. 원래는 도착하자마자 목욕물부터 준비해놓은 다음에,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 아침식사를 마련한 뒤 안방을 정리하고, 그 다음 거실 청소를 하고 식사 후엔 설거지, 그 다음 순으로 빨래를 하고 나면 점심식사를 마련하고 그녀의 주문에 따라 다른 일거리를 한 뒤에 장을 봐오고 저녁식사 마련, 그 다음 또 설거지, 주방청소, 빨래 걷어 들이기 순으로 나의 일과는 정해져 있다.
  마지막 순서로 일당을 받고 나면 나의 일과는 모두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가 외출을 했기 때문에 나의 일과는 약간 변경이 되어야 했다. 나는 먼저 안방청소부터 하기로 작정했다.
  외출을 위해 그녀가 요란한 화장을 하느라 안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나는 화장품을 하나하나 닦아서 제자리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화장품을 경대 위로 챙겨놓다 문득 나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낯설었다. 이마엔 이미 잔주름이 패이고, 피부도 윤기를 잃고 있었다. 쉰이 넘은 그녀보다 마흔에서 쉰 고개를 넘어가는 중인 내가 더 늙어보였다.
  나는 경대 위에 놓은 립스틱을 들었다. 핑크빛이었다. 입술 위로 립스틱을 약간 발라 보았다.
  거울 위로 핑크빛 입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홍빛 립스틱을 지우고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립스틱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입술 위에서 옛날 ‘황진이’ 에서의 그 탐욕스런 입술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연보라색으로 바꿔 바르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물었다.
  “아줌마, 이거 이뻐 보여?”
  그녀가 무슨 마음으로 외출을 다 결심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던 나는 갑작스런 물음에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거울 너머로 나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주 고생해 보이는데요?”
  나는 다시, 생각지 않은 말을 해야 했다. 그녀는 벌써 한 시간 이상을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웠다 고쳤다 하고 있었다. 거의 석 달 만의 첫 외출을 위해 그녀의 손은 분주했다. 나는 그녀가 얼굴에 콜드크림을 바를 때부터 그녀의 화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하는 사이에 그녀는 몇 번이나 다른 얼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아침에 도착하면 맨 처음 현관문을 열어줄 때 그녀의 모습은 늘 잠에서 막 깨어난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그러던 것이 목욕만 마치고 나면 그녀의 얼굴엔 숫처녀마냥 홍조까지 떠올라 있곤 했다.
  목욕 후의 전신 마사지에서 나는 그녀의 눈부신 알몸에 대해 매번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허리가 조금 굵어지고 유방이 밑으로 처진 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녀의 알몸은 삼십대의 그것만큼은 싱싱했다. 그러나 정작 나이를 초월해 버리는 그녀의 능력은 화장술에서 진가를 보였다. 콜드크림을 티슈로 깨끗이 지워낸 뒤,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른 다음, 언더 메이커를 하고 파운데이션을 하고 나면 그녀의 볼은 어느새 온기를 되찾아 있었다. 기초화장이 끝나고 나면 그녀는 언제나 눈썹부터 그리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늘 이때부터 바빠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이전에는 눈썹 하나에 그렇게 많은 표정이 숨어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했었다. 눈썹꼬리를 치켜올렸다가, 내렸다가, 일직선으로 그렸다가, 초승달처럼 그렸다가, 실비단처럼 가늘게, 호랑이 눈썹처럼 굵게, 짖게 엷게 짧게 길게, 눈썹 하나를 바꿀 때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씩 달라보였다. 그녀의 눈썹화장술은, 매일밤 침실에 들 때마다 눈썹을 다르게 그렸다던 ‘양귀비’ 의 촬영에서 익힌 것이리라. 또 그녀가 명암을 바꾸어 가며 아이샤도우를 할 때마다 그녀의 눈은 우수에 젖은 듯, 수줍은 듯, 교태에 넘치듯 바뀌어 갔다. 아이샤도우가 끝나고 나자 눈꺼풀에 선을 그리고 나서 그녀는 마스카라를 했는데, 속눈썹을 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가늘게 파들거렸다. 눈화장을 끝내고 그녀는 볼연지를 발랐다. 볼 위로 부끄러움 같은 연분홍빛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립스틱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연보라빛을 지우고 다시 핑크빛으로 고쳐 발랐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에겐 핑크빛이 무난해보였다. 그녀는 다시 립글로스를 발랐다. 그녀의 화장이 이제 거의 끝나고 있었다. 다음엔 콤팩트를 하고 샤넬 넘버 화이브나 쟈스민을 가볍게 뿌리고 나면 화장은 끝이 날 것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고친 화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특히 집에서 손보기엔 힘이 든 머리모양에 대해선 심한듯 했다. 그녀는 헤어드라이어를 내려놓고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곧 체념한 듯 새까만 선글라스를 껴보았다. 선글라스는 얼굴을 반 가까이 가려 버릴 만큼 큰 것이었다. 나는 지나는 듯 물었다.
  “그렇게 선글라스로 가려버릴거면 뭐하러 공들여 화장을 하세요?”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녀의 눈빛이 보이질 않았다.
  “선글라스를 써야 사람들이 날 못 알아보지. 괜히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아는 척하면 귀찮잖아. 안 그래?”
  그러면 뭐 하러 그렇게 요란스런 화장을 하세요. 요란한 화장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 텐데, 하는 말이 입 안을 뱅글뱅글 맴돌았으나 꾹 참고 목젖 너머로 삼켜버렸다. 괜히 말꼬리를 물었다간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빤했다. 그녀가 내 충고 따위에 관심을 갖기나 할까?
  나는 티슈로 핑크빛 립스틱을 박박 지워버렸다. 여전히 식도에 뭐가 걸린 듯 목이 메었다. 나는 화장대에서 일어나 빗자루를 쥐었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린 휴지를 쓸어 담아 휴지통에 쑤셔박았다. 걸레로 방바닥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가슴이 답답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청소하고 세탁하는 것 뿐이었다.
  어제 하루를 거르고 이틀 만에 와서 그런지 밀린 빨래가 많았다. 그녀는 매일 매일 그 많은 옷을 갈아입곤 했다. 그 중에는 세탁소에 맡겨야 할 것도 더러 있지만 그보다는 집에서 물세탁할 것이 많았다.
  그녀는 잠옷조차도 같은 것으로 이틀을 계속 입는 법이 없었다. 깨끗한 것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게 있어서, 어떻게 같은 옷을 이틀식이나 입는지 신기하다는 투였다. 그러면서도 방이나 거실을 어질러놓는 걸 보면 이상했다. 마치, 깨끗하고 좋은 반찬을 고르는 사람이 이것저것 반찬마다 들춰보고 집어보는 바람에 남도 못먹게 하는 것과 같았다. 삶은 빨래를 헹궈내고 나머진 세탁기로 돌리고 나서 탈수기로 물을 짜낸 다음에 바깥에다 말리고 나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나비 녀석이 먹을 것을 뒤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다지 짐승을 좋아하는 편이 못되는 나는 언젠가 나비 녀석 때문에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 차를 날라다 주느라 영사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갑자기 어둠속에서 차가운 두 개의 불빛이 뛰어나왔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놈의 눈빛은 야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차가운 불꽃이 활활 타는 듯했다. 나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놈은 한발 한발 용의주도하게 나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이었다. 놈은 넘어진 나의 치마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나는 놈을 끄집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놈의 혓바닥은 까칠까칠했다. 노처녀가 많은 집에 고양이가 반드시 몇 마리씩 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비에게 먹을 것을 꺼내어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원래는 청소와 세탁이 끝나고 나면 그녀의 주문에 따라 잔심부름을 하곤 했다. 잔심부름이란, 그녀가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기 때문에 대신 우체국에 가서 편지 따위를 부치는 일이나, 그녀가 전화로 주문한 물건들을 찾아오는 것, 가끔 주간지나 영화에 관계된 잡지를 사오는 것, 그리고 영사기에 필름을 갈아끼우는 것 등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외출을 했으니까 오후엔 별로 할일이 없었다. 무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일거리가 많을 때보다는 할 일이 없을 때가 더 고역인 법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란 얼마나 지겨운 노릇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경우 취미 활동을 즐긴다. 남자들은 대개 등산이나 낚시를 즐길 테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뜨개질을 하거나 라디오를 듣는 게 보통이다. 요즘에야 여자들도 에어로빅이다 테라리움이다 해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없는 사람들이야 자식들과 아귀다툼을 벌이거나, 끼리끼리 모여 고스톱이나 치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취미는 독특했다. 아니 특별했다.
  그녀는 난초를 친답시고 이런저런 고상한 난초들을 구해놓긴 했지만 돌보는 덴 거의 무관심했고, 고양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걸 빼면 동물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못되었다. 오죽하면 이 넓은 집에 개 한 마리 없을까? 그녀의 취미는 오로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세계 명작이나 특선 영화 뭐 이런 종류의 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출연한 영화만 보았다. 단물이 다 빠지고 신물조차 넘어오는 그런 껌을 계속 씹듯이, 벌써 수백 번을 보았을 영화를 되풀이해서 계속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그녀는 한국의 그레타 가르보였다. 그녀는 영원한 은막의 여왕으로 남아있기 위해, 팬들의 기억 속에 언제나 아름다운 여주인공으로서 남아 있기 위해 일제의 바깥출입을 삼가고 그녀의 자그마한 왕국 속에서 은거했다. 창문에 두껍게 드리워진 까만 커텐을 쳐 버리면 작은 규모의 소극장처럼 변해버리는 영사실에서 차르락 차르락 돌아가는 필름소리를 들으면 옛날의 화려한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까마득한 담높이와 널따란 정원에 주눅이 들어 있던 나는 영사실을 보고는 질려 버렸다. 셋방생활을 하는 내가 어떻게 개인 소유의 영사시설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깜깜한 영사실 속에서 그녀는 목소리만의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 때가 석 달쯤 전의 일이었다. 마침 장마가 지는 바람에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내가 파출부로 일한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면 어떻게 낮을 들고 다니나 전전긍긍하던 나도 막상 일감이 딸리자 체면이고 뭐고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때에, 보수를 두 배로 줄 테니 교양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주문은 귀가 솔깃했다. 다행히 그 중에서 내가 학력이 가장 높은 편이어서 그 자리를 얻는 행운을 잡은 것인데, 지벵까지 안내되어 오면서도 내가 주인집에 대해서 사전에 들은 것이라곤 모 그룹 총수의 차남과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면서 막대한 위자료를 받아 낸 왕년의 스타라는 것 뿐이었다.
  “잘 모르겠죠?”
  실망한 건지, 재미있어 하는 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목소리가 나에게 다시 물음을 던져오고 있었다. 뭐가 보여야 누군지 알기나 하지. 스크린에선 벌거벗은 중과 기생인 듯 싶은 여자가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때쯤에야 어둠에 익숙해진 나의 눈은 그녀의 얼굴 윤곽을 잡아내었다. 영화 속의 여자와 닮은 얼굴이었다.
  “아, 황진이에 출연했던…”
  “맞아요. 황진이가 바로 나여요.”
  어둠 속에서 자랑스레 웃는 이빨이 하얗게 드러나 보였다.
  “우리 잘해봐요.”
  첫날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로 그녀는 나의 자존심을 구겨놓았다. 두 배의 보수라는 유혹이 없었으면 당장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학력으로 어쩌다 파출부 생활을 다 하게 되었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잘근 씹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거머쥔 손 안으로 땀이 배어들었다.
  “바깥양반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라는 목소리가 겨우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요?”
  눈앞이 아득해지고 코끝이 찡했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아뇨,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러워요.”
  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자 그녀도 내 기분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아, 미안해요. 전혀 나쁜 뜻은 없었어요.”
  “.........”
  “자식이 셋이라고 했던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상냥해졌다. 그녀는 여배우답게 순식간에 화제와 더불어 말투까지 바꾸어 버렸다. 이 여자는 카멜레온과 사촌이라도 되나?  “큰애는 막 군대에 입대했고, 딸애가 대학에, 막내가 고등학교에 다녀요.”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죠?”
  “부모들이야 자식 키우는 게 제일 큰 낙이죠, 뭐.”
  “그래도 무자식 상팔자지. 자식들 땜에 젊어서 고생하고 늙어서 설움 받을게 뭐 있어요? 자기 생은 자기가 즐기는 거지.”
  나는 더 이상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왜 두 배의 보수를 제시했는지 알만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녀와 나의 처지를, 그 차이를 인식시키고 있었다. 그녀가 여왕이라면 나는 시녀였다.
  그녀의 집에서 하는 일이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힘든 일이라면 그녀와 말동무를 할 때 이따금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양귀비에서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나타났다는 등, 신사임당에서는 한국적 여성미를 잘 표현했고 선덕여왕에서는 여왕으로서의 우아한 품위와 여인의 고독을 감동 있게 연기했다는 등의 너스레를 떨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그녀의 영화에 대해 추켜세우는 대부분은 나의 솔직한 느낌에 약간의 살만 갖다 붙인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화에 있어서만은 그녀가 여왕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탈을 쓴 광대에게서 그의 맨얼굴을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마찬가지로 두꺼운 화장과 연기가 몸에 밴 배우에게서 그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란 힘이 든 일이다. 그녀는 가끔 그녀가 직접 작가가 되고,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되고, 관객이 되어 연기를 펼칠 때가 있었다. 집안일을 하던 중에 안방에서의 갑작스런 웃음소리나 울음소리에 널리 허겁지겁 뛰어가면 그녀는 늘 거울 앞에 서서 혼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 살다보니 그녀가 혹시 미쳐버린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나는 그것이 그녀 자신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펼치는 연기는 주로 클레오파트라의 역이었다. 그녀가 언젠가, 마지막으로 꼭 한번 클레오파트라의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열고 지켜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연기에만 열중했다. 무어라 위엄 있는 소리로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정말 눈물을 흘려가며 누군가에게 매달리기도 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달아나다가, 마지막에는 옷자락을 훌훌 풀어헤치더니 젖가슴을 쥐어뜯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면 그녀는 정말 쓰러져 죽은 듯이 일어나질 않았다. 이제 일어나겠지 하고 기다리던 내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달려가 보면 그녀는 그렇게 쓰러진 채로 잠들어 있곤 했다. 잠든 그녀를 안아다 침대에 눕히고 보면 그녀의 온 몸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그녀의 짙은 화장 뒤에 심어 있는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은 이런 모든 일에 내가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집에서 일한 지 십일 남짓했을 때일 것이다. 여느 때처럼, 다이어트를 하느라 토스트 한쪽과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운 그녀는 영사실 속에서 옛날의 추억에 젖어 있었다. 그녀에게 차 한 잔을 가져다주고 나오는데 좀처럼 쓰임이 없던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다 있었다. 수화기를 들자 낮선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녀는 영화를 볼 때나 낮잠을 잘 때에는 간섭받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고 했지만 전화속의 사내는 급한 용건이니 꼭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는 그녀의 손이 파들거리고 있었다.
  “뭐라고…그게 정말이야?…누가…? 그 자가?…응, 그래…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래…그따위 글을…그래, 알았어. 내가 곧 그리로 갈게.”
  수화기를 팽개치듯 내려놓은 그녀는 곧장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그날 준비해 놓은 저녁이 다 식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까지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양주병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고 주간지 따위가 찢겨진 채로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쓰러져 누운 그녀의 모습도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지고, 화장은 더럽게 번져 있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져서 속살이 드러나 보였다. 내가 그녀를 흔들어 깨우자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역한 술 냄새가 풍겼다. 안방으로 부축해가는 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그녀는 무어라 주정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줌마야? 반가워 같이 한잔하자고 우리, 나의 신혼을 위해서, 아들 같은 나의 새 애인을 위해서, 건배, 부라보, 하하하 여왕의 새로운 야사를 창조한 그들에게 영광과 저주가 함께 하기를! 빌어먹을 놈들, 우리들의 이름을 갉아먹고 사는 버러지 같은 놈들, 아들뻘의 걔하고 내가 어쨌다는 거야? 내가 뭘...”
  끝에 가서는 알아듣기도 힘든 소리를 늘어놓더니 그녀는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시트를 덮어주고 거실로 나왔다. 깨어진 술잔과 술병들, 주간지 따위를 쓸어 담았다. 찢겨진 주간지 한 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엔 그녀와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 남우가 같이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연하의 미남배우와 밀애를 즐기는...이라는 표제로 그녀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등의 읽을 가치도 없는 그런 내용의 기사였다. 나는 그 주간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처넣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술이 깬 그녀는 보기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응석을 부리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돼, 감히 내가 이 따위 추잡한 스캔들에 휘말리다니. 내 이름에 이렇게 먹칠을 하다니. 아줌마도 내가 연하의 후배와 눈이 맞았다고 생각해?”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걔를 보면 아들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영화와 관계된 일로 몇 번 만난 것 뿐이야. 내가 왜 이혼을 당했는데…다 자식이 없어서야. 아들을 못 낳는다고. 나도 아들을 갖고 싶었단 말야. 아들을. 그런데 너무해. 늙은 년이 아들 같은 후배 좀 아낀다고. 아, 이젠 나에 대한 이미지도 다 깨져버렸어.”
  바보같이. 언제는 자식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있냐더니. 나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더 이상 여왕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나와 똑같은 한 사람의 여자일 뿐이었다. 세상의 헛된 소문에 휘말린 늙고 외로운 여자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가능하다면 이 여자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내가 오기 전에는 가끔 영화와 관계된 일로 외출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후론 머리하러 나가는 일조차 없었다. 스스로 바깥세계와는 완전히 담을 쌓아버리고, 그다지도 신경을 쏟던 바깥세계에서의 자신의 소문에 관한 것조차 무관심한 듯 있다.
  그러니까 이번의 외출은 그 일이 있은 후 거의 석 달만의 첫 외출이 되는 셈이었다. 석 달만에 심정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생각을 품은 것인지 불쑥 외출을 결심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무얼로 시간을 때울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별로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하는 일 없이 거실을 오락가락하다보니 거실에 진열장이 눈에 들어왔다.
  양주병과 상패, 도자기, 스크랩북, 영화에 관계된 책 등이 꽃혀 있는 나는 진열장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끄집어내어 하나씩 닦았다. 현관 앞에 내다놓은 화분을 모두 안으로 들여놓았다. 내친김에 전지가위를 찾아와서 화분마다 이발을 시켜버렸다. 가지치기가 끝나고 나니 여전히 할 일이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손톱깎이와 소제도구를 꺼냈다. 손톱깎이를 들고 손을 내려다보니 거칠어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엄지손톱부터 차례로 깎았다. 손톱을 다 깎고 발톱도 깎았다. 엄지발톱을 깎는 데는 애를 먹었다.
  발톱을 깎고 나서는 경대에서 매니큐어를 가져다 손톱에 칠해보았다. 새끼손톱에 빨간 색을 칠했다. 너무 야했다. 무명지에는 분홍빛을 칠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지에 칠한 갈색은 칙칙해서 실었고, 검지에 칠한 금색은 너무 화려해서 싫었고, 엄지에 칠한 은색이 그런대로 무난했다. 발톱에는 모두 은빛 매니큐어를 칠했다. 다 칠해놓고 생각하니 일이나 다니는 여자가 매니큐어칠은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세톤으로 매니큐어를 지우는데 좀처럼 깨끗이 지워지질 않아 애를 먹었다. 매니큐어를 지우고 나서 거실로 도로 나왔다.
  거실의 커텐을 치고 전축을 틀었다. 이미자의 노래였다. 그런대로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떠도는 몸이라고 사랑마저도 내 마음 내 뜻 대로 하지 못하고 한없는 외로움에 가슴조이며 잊으려 애를 써도 발버둥 쳐도 잊을 수 없는 여인…”
  그녀는 매일 매일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방법으로 보내는데 어떻게 지겨움을 느끼지 않는 걸까? 거실 소파에 무릎을 착 당겨 앉은 내 모습이 궁상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들 생각이 났다. 지금쯤 전방에서 근무를 서고 있을 첫째는 고생이나 하지 않는지. 몸도 약한 애가 견뎌나갈지 걱정이 되었다. 씀씀이가 헤퍼서 늘 걱정이던 딸애도 집안이 어려워지자 강의가 끝나는 대로 일찍 와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이 대견했다. 언제나처럼 오늘은 꼭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던 그이가 밉살스럽게 느껴졌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소파에 쪼그리고 있으니 하품만 나왔다. 제일 어리지만 일찍 철이 들어서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제가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막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금씩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일이 생각났다. 몸이 나른해졌다. 막내는 언제나처럼 새벽 일찍 나와 같이 집을 나섰다.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골목의 갈림길에서 막내는 불쑥 내손을 잡더니 엄마가 너무 고생이 많아요 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막내의 어깨가 유난히 높아보였다. 막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아아 너무 잠이 와.
  꿈결에 들리는 듯한 요란한 클랙션 소리에 잠을 깨었다. 커텐을 쳐서 그런지 거실 안은 어두웠다. 전축바늘은 자동으로 제자리에 되돌아가 있었다. 신경질적인 클랙션 소리가 또 들려왔다. 나는 거실에 불을 켜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의 자동차가 대문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대문을 열자 그녀는 차고에 차를 넣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잠그고 따라 들어가는데 안에서는 방문을 세게 꽝 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내가 깊이 잠들어서 그녀가 대문 앞에서 오래 기다린 모양이었다. 나는 사과할 생각으로 방문을 열고 조심조심 들어갔다. 침대에 엎드린 그녀의 어깨가 보였다. 그녀는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뜻밖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나쁜 일이 있었나요?”
  그녀는 대답 없이 그냥 흐느끼기만 했다. 그녀의 어깨가 점점 더 크게 들썩였다.
  “제가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플 때는 누군가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게 다 말해보세요. 기분 나쁜 일도 속 시원히 다 말하고 나면 괜찮아 질 거에요.”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 때문에 화장이 번져 지저분했다.
  “아줌마, 이제 나는 잊혀져버렸어. 이제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사람들은 아무도 더 이상 날 기억하지 못하나봐.”
  무슨 일인지 알 만했다. 그녀가 왜 석 달 만에 외출을 결심했는지, 왜 그리 화장에 신경을 썼는지도. 하지만 사람들은 늙은 그녀의 모습에서 그 옛날 은막의 여왕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리라.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의 여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힘껏 안아주었다. 그녀는 내 품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계속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말하려고 했다가 미루어만 왔던 이야기를 오늘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스스로 남들과 쌓아버린 담을 허물어 버리라고. 영화 속의 여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이젠 그녀 자신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울고 싶은 대로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두자.
  나는 계속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나의 가슴 가득, 오십년 동안의 고독만큼 짙은 무게로 그녀의 울음이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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