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즘과 민주주의’… “부패된 의회정치에선 언제든지 발생 가능하다.”

 
  一(일), 序(서)
  現代史(현대사)에서 파시즘에 관한 빈번한 言及(언급)은 파시즘이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임을 입증하게 해준다. 또한 개념상 혼란을 빚어낼 만큼 유의적이고 직선적인 역사과정의 인식에 의해서는 어떤 이론도 도출해 낼 수 없는 복잡한 것이다.
  이는 파시즘이 각국의 역사적 상황, 문화의식, 사회경제적 여건의 정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나타냄을 의미한다.
  파시즘이 出現(출현)하는 社會(사회)는 資本主義體制(자본주의체제)이며, 그 지배적인 자본은 금융독점 자본이다. 파시즘은 20세기에 있어서  세계적으로는 獨占金融資本主義(독점금융자본주의)의 위기에 대처하고, 國內的(국내적)으로는 혁명적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첨예한 反革命(반혁명)의 暴力宗敎(폭력종교)이다. 물론 반혁명이란, 革命的(혁명적)상황은 전제하나 資本主義(자본주의)의 누적된 모순의 폭발적 결과로 나타난 파시즘은 단순한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를 포함한 全構造的(전구조적)위기를 의미한다.
  요컨대 파시즘은 과격하며 반동적인 社會諸勢力(사회제세력)을 반동적 방침과 수단으로 지도함으로써 부르주아 체제의 위기의 배출구를 찾는 자본주의사회의 일반적인 사회정치적 경향이다.
  오늘날의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변장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질서의 확립을 구실로 나타날지도 모르고, 또한 파시즘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국내적인 위기의 분출구를 대외적으로 마련하려는 위장술을 쓸지도 모른다. 파시즘을 과거의 독일, 이태리, 일본 등에서의 단순한 정치상황으로만 파악하거나 또는 민족적 특성, 민주적 의식수준의 저하로만 고정적으로 파악할 때, 새로이 나타나는 파시즘에 대하여는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파시즘의 외적 측면으로부터 출발하여 파시즘의 본질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二(이), 파시즘의 定義(정의)
  파시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의가 서로 맞서고 있다. 하나는 구미의 선진자본주의의 견해로 파시즘을 보수적 극우정당 또는 군부와 관료중의 반동분자에 의한 정치적 독재로서 일당독재체제의 확립을 필연적인 귀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입헌주의와 의회주의를 부인한다.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아울러 배격하고, 국가지상주의와 민족지상주의 및 군국주의를 소리높이 부르짖음으로써 독재자의 신격화와 지도자 원리에 입각한 사회의 권위주의적 편성을 수반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각국의 社會主義者(사회주의자)들의 견해로 파시즘을 현 단계에 있어서의 독점자본의 지배체제로 보는 정의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파시즘이란 단순한 공업사회의 현상이 아니라 제국주의단계의 현상으로서, 자유경쟁적인 초기자본주의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체제로 변절하면서 나타난 직접적이며 노골적인 독점자본의 지배체제를 의미하며, 의회제 민주주의에 의한 간접적 지배로서는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권력층이 찾아낸 또 하나의 지배형태라 정의된다.
  이들 두 견해는 各各(각각) 民主主義(민주주의)와 自由(자유)라는 새로운 옷으로 단장하고 나타나는 파시즘 형태의 발전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과 일체의 부르주아 反動(반동)에 對(대)하여 무차별하게 파시즘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공통점을 찾아 종합하면 파시즘은 意思(의사)의 自律性(자율성)과 行爲(행위)의 自己決定性(자기결정성)을 근본적 속성으로 하는 民主主義(민주주의)의 原理(원리)를 부인하는 전체주의적 지배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까지 볼 때 파시즘의 독일적 표상인 나치즘은 否定的(부정적)反(반)(Anti)主義(주의)로 一邊倒(일변도)된 침략적인 전체주의的(적) 지배형태였다.
  이러한 이른바 古典的(고전적) 파시즘에 對(대)한 定義(정의)에 비해 第二次世界大戰(제이차세계대전)이 파시즘의 敗北(패북)로 끝난 오늘날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네오파시즘(Neo Fascism) 인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民主主義(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操作(조작)내지 造作(조작)된 民意(민의)에 依(의)하여 實質的(실질적)으로 民主主義(민주주의)의 方式(방식)을 拒否(거부)하거나 마비시켜버리는 一切(일절)의 獨裁體制(독재체제)라고 規定(규정)할 수가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獨裁體制(독재체제)는 그것이 右翼的(우익적)이든 左翼的(좌익적)이든, 또는 合理的(합리적)으로 僞裝(위장)되었든 不合理的(불합리적)으로 僞裝(위장)되었든 간에 다 같이 네오파시즘이란 範疇(범주)에 통틀어 묶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共産主義(공산주의)나 新民主主義(신민주주의)내지 진보적 민주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이른바 合理的(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좌익적인 정치이데올로기도 그것이 實質的(실질적)으로 본래적인 자유민주주의적 방편과 체제를 왜곡하는 한에서는 네오파시즘이며, 반대로 전후의 후진제국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터져 나오는 이른바 修飾的(수식적) 민주주의도 대개가 이 範疇(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三(삼), 파시즘 擡頭(대두)의 背景(배경)
  파시즘은 第一次大戰後(제일차대전후)의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시대의 산물이라고 하고 있다.
  19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금융독점자본의 지배체제가 확보되자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제국주의적 투쟁이 치열해져서 마침내 1차대전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런데 궁핍과 공존과 죽음만이 연속되는 이 전쟁에, 특히 독일과 이태리 민중은 불만을 느꼈으며 大戰後(대전후) 대량실업과 만성적인 농업공황으로 인한 국내정치의 불안과 기성정당 및 議會(의회)의 부패에 무능력은 일반대중의 욕구불만을 더욱 격화시켜 파시즘은 방대한 반체제적인 정치적 에너지를 축적할 수가 있었다.
  이와 같은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一般大衆(일반대중)의 精神狀況(정신상황)은 ①社會革命(사회혁명)의 緊迫性(긴박성)에 對(대)한 부르주아지의 擴大(확대)된 恐怖(공포), ②프롤레타리아의 組織的(조직적) 鬪爭(투쟁)에 對(대)한 도시의 小市民(소시민)과 農民(농민)의 反感(반감)증대, ③細分(세분)된 分業(분업)과 專門化(전문화)로 인한 인텔리겐차와 기술자 및 근로자들의 기술적 니힐리즘(Niihilism)과 政治的(정치적) 무관심, ④매스컴의 마취작용에 의한 지식의 斷片化(단편화)와 方向感覺(방향감각)의 喪失(상실), ⑤모든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인 여러 가지 문제의 合理的(합리적) 調整(조정)의 가능성에 對(대)한 懷疑(회의)와 絶望(절망), ⑥失意(실의)와 無力感(무력감)에 對(대)한 補償(보상)으로서의 權威的(권위적) 리더십(카리스마) 에의 待望(대망)등이다. 바로 이와 같은 심각한 위기의식의 격증으로 말미암아 體制(체제)의 안정과 균형상태가 파괴되고 더구나 旣成(기성)의 政黨(정당)이나 사회단체의 조직이 事態(사태)를 自主的(자주적)으로 收拾(수습)할만한 能力(능력)과 창의력을 결하고 있을 경우, 즉 革命(혁명)의 客觀的(객관적) 狀況(상황)의 심화에 비하여 主體的(주체적) 條件(조건)이 뒤늦어져 있는 정도에 따라 그 ‘眞空(진공)’을 메우기 위해서 파시즘이 등장한다.
  따라서 이런 意味(의미)에서 보면 파시즘은 하등의 참다운 ‘新體制(신체제)’를 提示(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消極的(소극적)인 보수주의나 시대착오의 中世主義(중세주의)는 아니고 실로 테크놀로지의 高度(고도)한 발전을 基盤(기반)으로 하여 현대사회의 諸(제)모순을 反革命(반혁명)과 전쟁에의 組織化(조직화)에 의해서 一擧(일거)에 救濟(구제)해 보려고 하는 舊秩序(구질서)에 목숨을 건 飛躍(비약)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파시즘은 과연 누구의 利益(이익)을 위하여 어떤 者(자)의 손에 의하여 추진되어지는 것인가? 여기에는 ①파시즘은 大資本(대자본)과 勞動者(노동자) 계급 쌍방에 반대하는 中産(중산)계급의 독자적인 운동이라는 생각과, ②파시즘은 오직 大資本(대자본)의 이익만을 위하여 추진된 운동이라고 보는 생각이 대립되는데 一般的(일반적)으로 자본가의 황금의 힘과 一般大衆(일반대중)의 힘과의 奇怪(기괴)한 결합으로 권력을 장악한 파시즘은 처음에는 반자본주의적인 중산계급의 반항이라는 형태로 발생되었으나, 결국 독점자본에 봉사하는 獨裁(독재)에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보이고 있다.

  四(사), 파시즘의 類型(유형)과 機能(기능)
  파시즘 20세기에 있어서 감행된 反革命(반혁명)의 가장 전투적인 형태로 지금까지의 파시즘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발전형태를 취했다. ①독일과 이태리에서와 같이 광범위한 大衆的(대중적) 基礎(기초)를 만든 연후에 말하자면 ‘밑으로부터’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와 ②舊日本(구일본), 불가리아, 폴란드 등지에서 보인 것처럼 먼저 국가의 軍事力(군사력)에 의하여 말하자면 ‘위로부터’ 권력을 장악한 연후에 국가기관을 이용하여 그 기초를 점차 大衆(대중)속으로 펼쳐가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 같은 두 형태는 ①그 나라의 革命力(혁명력)의 組織化(조직화), ②그 나라의 기존 국가기구의 民主化(민주화), ③파쇼化(화)가 진행되어가는 동안에 혁명의 위기 (國內的危機(국내적위기))와 전쟁의 위기(對外的危機(대외적위기)) 중 우열정도에 따라 즉, 對內的(대내적)으로 혁신을 단행한 연후에 對外戰爭(대외전쟁)을 유발시키느냐, 그렇지 않으면 對外戰爭(대외전쟁)을 유발시킴으로써 이를 계기로 하여 대내적인 혁신을 단행하느냐에 따라서 각각 規定(규정)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태리와 독일처럼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 정도가, 즉, 혁명세력의 조직화의 정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또한 旣存國家機構(기존국가기구)가 일단 밈ㄴ주주의적인 형태를 취했던 국가에서는 대체로 ‘밑으로부터’ 의 형태가 취해졌다.
  이것에 비해 발칸 諸國(제국)과 舊日本(구일본)에 있어서처럼 혁명세력의 조직화의 정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또한 旣存國家機構(기존국가기구)속에 군부, 관료, 王制(왕제)등과 같은 후진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에는 대체로 ‘위로부터’의 형태가 취해졌다.
  그렇다면 금후 아메리카 파시즘화의 형태와 속도는 서로 모순되는 두 계기의 교착에 의해 극히 미묘하게 결정될 것이다. 독점자본에 의한 전위적인 파시즘 에너지의 흡수, 그리고 군부와 기업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볼 때 아메리카 파시즘은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이 다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도달했던 지점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P, 스위지가 아메리카 파시즘을 자본주의 자체의 군국주의화라고 규정한 것도 위와 같은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五(오), 파시즘의 이데올로기.
  그러면 파시즘은 대체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파시즘은 論理的(논리적)으로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체계적인 이론이 결여되어 있다.
  파시즘은 반혁명을 유일한 투쟁목표로 삼고 그것을 지향한 하나의 정치운동으로서 항상 행동주의를 앞세워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적 이상을 강력히 추구함으로써 그의 이론적 결핍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종종 이론 체계를 공공연히 경멸하고, 행동주의를 찬양했던 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파시즘은 論理一貫(논리일관)된 이데올로기로부터 정책이 나온 것이 아니라 반대로 파시즘의 정책에 알맞도록 이데올로기가 장식되어 기회주의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파시즘은 그들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반파시즘 세력의 조직과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反(반)파시즘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모든 명분을 조작 폐기하려는 교묘한 강압적 탄압정책을 펼친다.
  이는 파시즘이 폭력, 테러에만 의존하여 단순한 적의 배제, 소멸로 인한 의회정치에 대한 근본적 혐오감을 지닌 정치적 획일화를 꾀할 뿐만 아니라 ‘적’ 의 이용을 통한 反(반)파시즘운동의 前衛組織(전위조직)이 미래에 대두될 가능성마저 근절시키려 하는 초월적 국가지배를 正常化(정상화)하려는 것이다.
  가상적국의 설정으로 인한 위기의식의 조장, 지식계급의 매수, 어용노조의 육성으로 體制(체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키고, 매스컴을 독점하고, 스포츠의 집중적 육성, 도발적 오락 등으로 思想的(사상적) 反撥(반발)을 도취적으로 증발시키려 하고, 政治的(정치적) 集權化(집권화)와 절대주의를 강조하여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수립하려고 한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원리’에 의하면 파시즘이란 歷史的(역사적) 宗敎的(종교적) 槪念(개념)이며, 反個人主義的(반개인주의적)이어서 항상 국가편에 속하며 國家(국가)를 개인의 참다운 현실로서 재확인하나, 따라서 국가 외에는 개인과 단체는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은 국가로부터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로서의 국민은 발전하는 한에 있어서만 존재하며, 생존해 나가는 倫理的(윤리적) 實在(실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시스트에게 있어서는 國家(국가)안에 모든 것이 있으며 國家(국가) 밖에서는 人間的(인간적)인 것 精神的(정신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價値(가치)가 거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시즘은 전체주의적이며, 모든 가치의 종합이며 통일체인 파시스트 國家(국가)가 해석하고 발전시키고 또 人民(인민)의 全生活(전생활)에 힘을 준다.
  따라서 파시즘은 社會主義(사회주의)에서 말하는 國家(국가)의 계급적 파악은 부인되나 實質上(실질상)은 절대다수의 人民(인민)의 희생을 강제하고 그것을 전체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一部(일부)의 獨占的(독점적)이익을 꾀하는 것이다.
  政治的(정치적)저항의 非合法化(비합법화)라는 폭력압제의 實現(실현)으로 完成(완성)되는 폐쇄 지향적, 절대적 파시즘의 本質的(본질적)구조는 모든 가능한 저항마저 근절시켜 근본적 사회혁명 없이는 도피될 가능성이 없게 될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 파시즘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평가하여 본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合理主義(합리주의), 理性(이성)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것에 도전하고 인간이 自己抑壓(자기억압)의 수단으로 발명한 法(법)에 의한 지배라는 西方文明(서방문명)의 최대의 精神遺産(정신유산)을 放棄(방기)내지는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인류의 이상으로 하는 문명사회의 초보적 원리를 거부하고 있다.

  六(육), 파시즘과 민주주의
  파시즘은 시민사회가 정통적인 민주양식에 따른 문제해결의 능력을 상실할 때에 기득권익의 옹호자로서 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은 유물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일도 아니다.
  공산주의가 주로 민주주의 이전에 그리고 산업화 이전사회의 산물인데 반하여 파시즘은 민주주의 이후 그리고 산업화 이후의 산물이다. 즉 파시즘은 민주주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공산주의는 후진사회를 산업화하고자 하는 전체주의적 방법이며, 파시즘은 신진산업사회에서 내부갈등을 해결코자 하는 전체주의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나치스와 같은 강력한 파시스트국가는 없고 또한 파시스트 조직도 공공연히 활동하는 경우는 적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방법을 따르면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경향은 있다.
  파시즘은 民主主義(민주주의)의 原則(원칙)을 무시하여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만큼 현대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그와 같은 방식이 權力者(권력자)에 의하여 기도될 위험성은 충분히 있다. 民主主義(민주주의)의 옹호는 어느 지도자나 특정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문제로 생각하여야 한다. 특히 大衆社會(대중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에너지에서 대중참여라는 계기를 오용하여 그 집단적 압력에 의해서 개인의 固有權(고유권)인 기본적 인권을 억누르고 있다.
  戰前(전전) 파시즘 발생상황과 戰後(전후)의 정치상황은 많이 변했다. 그러나 戰後(전후)의 자유국가는 반공을 통한 체제옹호의 문제가 가장 큰 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 취지는 자유의 확보를 위한 자유의 제한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안전이 양립할 수 없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자유의 제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정도가 어느 한계까지 용인되느냐 하는 것과 그리고 이러한 방법이 악용됨으로써 특수한 정치적 효과를 의식적으로 노리는 것이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민주주의란 원래 문제해결의 방식이 지루하고 또 반대를 관용하는 만큼 인내와 자제가 요구된다. 따라서 정치적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에 끈기 있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한다는 것은 1인의 지배자에게 만사를 맡기는 것보다 그 책임이 무겁고 힘든 것이다.
  파시즘의 體制的(체제적)인 성립은 오늘날 정치적인 상황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議會政治(의회정치)가 무능, 부패하여 국민의 버림을 받고 있는 곳, 言論(언론)이 政府權力(정부권력)의 간섭으로 무력해지고 점차 어용화 하고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파시즘에의 길이 넓게 열려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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