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펜윅을 아시나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지은이 레너드 위벌리
옮긴이 박중서
펴낸곳 뜨인돌출판사
12000원 / 275쪽
소장처 : 중앙도서관 인문과학실
청구기호 : 823 W632m박2
 
여전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네들. 어느 편의 뒤 허리춤이라도 잡고 이념의 줄을 서자며 사방 가득한 고함소리들. 애국과 반역 사이 이념의 긴장에 시달리는 중환자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쓴웃음 이는 희극이면서도 주연을 자처해야할 다큐 한 편이기도 하니, 잠시라도 비켜나고픈 마음 어쩔 수 없는 나날이다. 그래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을 떠올려본다.
그랜드 펜윅은 국토면적이 여의도의 약 4.8배에 불과한 아담한 나라다. 총인구는 고작 6천여 명. 국가원수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전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집권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노동당이 국정을 다루는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체계를 갖고 있다.

1년 국방비가 우리 돈 20만원에 불과할 만큼 경제력 면에서는 최빈국에 속하니 조만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해 국격을 드높여야할지 모를 상황이다.
수상인 마운트조이 백작의 숙원은 직선도로 건설과 최신 수도설비 완공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네? 야당은 결사반대입장인데다 철없는 대공녀는 공국의 1년 치 예산과 맞먹는 고가의 모피코트를 사달라며 떼를 쓴다.

우리의 지략가 마운트조이 백작. 모피코트 구입을 핑계 삼아 미국에 차관요청을 한다. 그런데 차관에는 모피코트 구매비용과 함께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낼 비용 500만 달러까지 포함되어 있다. 달 탐사선은 허울이고 각종 공사에 쓸 비용임은 당연. 달 패권을 놓고 소련과 혈투 중이던 미국은 달이 인류 공동의 것이라는 국제협약의 당위성을 얻어내기 위해 차관제공을 허락한다. 여기에 체신 떨어진다고 제공하는 비용이 무려 5천만 달러다. 과연 전국토를 공사판화 하려는 백작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질까? 아니면 대의명분을 좇아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낼까? 대공녀는 모피코트를 선물 받을 수 있을까?

무척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레너드 위벌리의 1962년 작이다. 출판연도에서 느껴지는 거부감도 있을 테고, 냉전시기의 우주싸움(?)이 배경이라니 퍽 구태의연할 것 같다는 의구심 또한 당연하다.
그랜드 펜윅이라는 있지도 않은 나라를 소재 삼았으니 떨어지는 개연성과 허무맹랑함 탓에 쓴웃음만 남지 않으려나? 걱정 할 법도 싶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허무맹랑함이 줄법한 약점은 풍자와 해학이라는 비틀기로 절묘하게 상쇄된다.
정치인의 시침 떼는 속내, 강대국들의 국가 이기주의, 언론의 약아빠진 습성, 민심의 가벼운 속성…, 심지어 문명·비문명에 대한 화두 등 꽤나 많은 것들의 진면목까지 까발리는 시선을 갖춰냈으니 그저 재미나다 낄낄거릴 수만은 없는 묵직함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 뒷맛으로 개연성은 덤이다.

우리네 복잡스런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회피하는 심정으로 돌아보는 동화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40년도 더 된 풍자와 해학이 여전히도 적용되는 걸 보면 우리 주변 태반의 것들은 장고한 시간만큼의 변화를 갖지 못했나 싶은 각성도 있게 된다.
미·소 강대국의 틈 사이에서도 당당하며, 원하는 모든 바를 쟁취하고, 모두들 웃으며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그랜드 펜윅의 사람들. 갈등이 있을지언정 진정 상대를 이겨내려는 것이 아닌 화합을 위한 것일 뿐이니 무지막지하게 부러워진다.
작가의 다른 작품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윌스트리트 공략기’,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 등도 지나치게 재미있고 진중할 것임을 중도의 이름으로 보증하는 바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