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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국인 <41> 사진작가 황규태 동문현재를 즐기는 것 그것이 곧 작품이다
  • 배종성 객원기자
  • 승인 2013.05.06
  • 호수 1539
  • 댓글 0

   
 
한국 예술계에서 1세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굴곡진 현대사에서 피어난 1세대 예술가들의 활동은 곧 새로운 영역의 개척이자 후배 예술인들의 귀감이 된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고 백남준 작가와 우리대학 출신으로 영화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고 유현목 감독은 한국 현대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목들이다.

황규태(정치63졸) 동문은 우리나라 사진예술의 1세대 작가다. 하지만 그는 ‘1세대의 거장’이라는 화석화된 이름으로만 남아있지 않다. 그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한국 사진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황 동문은 현재까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을 넘나들며 14회의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아트선재센터 등 주요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사진계에서 그의 업적은 단연 돋보인다.

6,70년대 한국 사진 예술은 기록 사진으로만 국한됐다. 하지만 그는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등을 접목시킨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사진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사진이 ‘사진 이후의 사진(Photography after Photography)’이라고 평가 받는 데는 그의 선구적인 예술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하나에 의지해 현장을 누비다

   
 
황 동문은 1958년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그가 사진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사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귀했고 사진 예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때. 사진에 입문한 그는 당시를 아련히 추억한다.

“고등학교 때 처음 카메라를 손에 잡았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강의를 빼먹고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남산으로, 명동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그때는 필름이 귀해서 아껴 쓰고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빌리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그는 대학시절에 서울 소재 대학들이 모여 만든 ‘사진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미 그때부터 그의 사진은 기성 사진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진에 푹 빠진 그는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60년대,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그는 항상 사건 현장의 최일선에 있었다. 최루탄과 진압봉 세례가 난무하는 거리에서 그는 카메라 하나에 의지해 현장을 누볐다. 그는 보도 사진뿐만 아니라 6,70년대 가난하고 궁핍했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으로 담는데도 열중했다.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고 편집을 통해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실상을 보여주는 것. 그가 현재 이룬 작품세계는 이미 그 시절부터 잠재했던 것이다.

황 동문은 당시 이룬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더 새로운 사진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 미국에서 그는 컬러 사진을 접하게 된다. 컬러 사진은 그의 사진세계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평론가들은 그 당시 그의 사진에 대해 ‘미국이라는 문명의 끝에서 세기말적인 풍경을 그만의 색으로 담아냈다’라며 참신한 시각에 주목했다. 오랜 기간 미국에 머무르고 199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떠난 지 20여 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의 사진은 여전히 한국 사진계에 잊혀지지 않는 성취로 남아있었다. 황 동문은 컴퓨터와 첨단장비의 도입에 힘입어 예술적 감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감동을 부여하다

   
 
그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를 단지 새로운 시도와 번뜩이는 상상력으로만 평하는 것도 황 동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현대 예술을 관통하는 철학적 담론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황 동문의 작품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철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실재와 복재, 이 두 상반된 개념의 역전과 그 때문에 현혹되는 인간을 비판했다. 그의 사진에서 원본과 복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기존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 무한히 복제하기 때문이다.
“제 작품에서 관객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고 애쓰지만 그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더 큰 감동과 의미를 줄 수 있지요.”
그는 관객의 열린 해석과 상호작용을 허용하여 작품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엇이 진실이며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탁한 사회를 풍자하기도 한다. 평단과 관객들은 그 점에 열광하고 있다.

   
 
함께 보고 즐겨야 그것이 곧, 예술
황 동문은 활발한 전시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월에는 신세계 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에게 전시는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시대와 소통하는 중요한 의식(儀式)과도 같다.
“작품을 그저 쌓아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예술은 본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보고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이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작품은 빛을 발하게 됩니다.”
황 동문의 독보적인 예술관과 성취는 그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창작을 위해 심각한 고뇌에 빠지지 않고 작품 자체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사진을 좋아하고 작업을 즐긴다.
“좋아하고 즐기면 계속 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실력이 쌓이고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지금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덧붙혔다.
“항상 사진을 시작하겠다는 신참 작가들에게 저는 물어봅니다. ‘좋아서 할 수 있어?’라고. 학업도, 그리고 후배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여러 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성취를 이루겠다’라는 맹목적인 집착은 위험해요.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현재를 즐긴다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흔히들 노력하는 사람은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즐김의 힘. 빡빡한 일상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20대의 청춘들에게 그의 깨달음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여전히 즐기고 있다. 남은 여생도 한바탕 사진을 즐기고 싶다는 평범하고도 치열한 바람.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즐김은 사진계에 살아있는 전설로 남을 것이며 한국 예술사에 또 한 번 동국의 이름을 아로새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황규태 동문 프로필

△1938년 충남 예산 출생 △동국대학교 정치학과 1963년 졸업 △경향신문 입사(1963) △서울프레스센터 개인전(197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 개인전 ‘1960년대를 보다’(2005) △신세계 갤러리 개인전 ‘꽃들의 외출’(2013)


 

배종성 객원기자  baessi03@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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