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靑春(청춘)이 못다핀 채 거리에서 숨져간 지 여덟 돌을 맞이했다. 그러나 여덟 돌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는 이와 같은 자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소일하기에는 우리의 주위가 너무나 엄숙하며 우리의 힘을 재촉하고 있다.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있을 시간적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긴박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정에 항거하다 숨져 가신 盧熙斗(노희두) 학형에게 우리 동국의 5천 건아는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학형들의 피는 헛되지 않았으며 그날의 조국의 젊은 얼들은 감연히 일어서 祖國(조국)의 歷史(역사)를 창조하였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8年前(년전)의 선배가 남겨준 敎訓(교훈)은 빛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四ㆍ一九(사ㆍ일구)를 보내면서 우리 마음의 한구석에는 서운함을 금할 길 없으며 분노의 가슴을 억누른다.
  그러나 우리는 숨져간 학형들과 四ㆍ一九(사ㆍ일구)의 유족들의 얼을 되새겨 祖國(조국)이 우리의 젊을 부를 때 우리는 언제나 투쟁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學生(학생)의 힘은 곧 조국의 힘이며 부정에 반대하는 것이 곧 정의가 아닌가. 우리 東國人(동국인) 들은 우리 민족이 악랄한 일본제국주의 植民地化(식민지화)에도 항거하여 왔으며 태풍이 스쳐가는 동안 반세기를 넘기게 되었다.
  또한 학교와 학생의 생명인 학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먼저 학원다운 학원이 건설 되어야만 하며 학원다운 학원이 아닌 곳에 어떻게 자유를 보장하는가. 학원은 오로지 학문의 전당인 것이다.
  오로지 학원의 자유와 法(법)이 존속하는 한 어떠한 世俗(세속)에 抗命(항명)하여 政治家(정치가)나 권세가들의 走拘(주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세차게 파도치는 그 순결한 정열과 정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요 따라서 4ㆍ19 精神(정신)도 언제든지 必要(필요)할 때는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학형들은 숨져갔으나 그들의 피는 영원히 살아있어 이 나라의 前道(전도)를 감시하고 不斷(부단)히 淨化(정화)시킬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