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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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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오민아
       
  

【등장인물】

박봉팔  (남, 42)
김 청  (여, 22)
엄마  (여, 45) 

 

 <1>

 조명 천천히, 어둡게 들어오면 무대 뒤편에 커다란 풍력기 세 대가 놓여있다.
 두 대는 약간 가깝게, 한 대는 조금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풍력기 외에 다른 소품은 없다. 황량한 느낌이다.
 손이 세 개 달린 풍력기 세 대가 천천히 돌아간다.
 두 풍력기와 동떨어진 풍력기 사이에 청이 서 있다. 뒷모습만 보인다.
 고개를 잔뜩 젖히고 좌, 우로 팔을 벌려 천천히 흔든다.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바람 부는 방향을 따라 나부낀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암전.
 
 <2>

 무대는 단촐하다. 무대 중앙에 소파와 테이블이 객석을 향해 놓여있다.
 무대 왼쪽에 베란다가 있다. 베란다 안에 빨래 건조대가 놓여있다.
 건조대에는 채 마르지 않은 빨래들이 널려있다. 
 소파 뒤쪽 벽면엔 봉팔과 청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속 청이의 화장이 짙고 천박해 보인다.
 그러나 웃는 얼굴만큼은 환하다.
 봉팔은 청이를 바라보고 있으며 옆모습만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오른쪽으로 뒤쪽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이 문은 방으로 들어가거나 거실로 나올 때 사용한다.
 무대 오른쪽 문은 집 외부로 통할 때 사용하는 문이다.
 비 오는 소리.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청이, 방에서 뛰어나온다.
 빨래를 걷어 한 아름 안고 소파 쪽으로 온다.
 테이블에 빨래를 내려놓고는 소파에 앉는다.
 청, 한숨 돌린 후 빨래를 털기 시작한다.
 무대 오른편으로 봉팔 등장.

청 (활짝 웃으며) 왔어?

 봉팔, 어깨의 빗방울을 털고 청, 빨래를 턴다.

청 늦었네.

 봉팔, 물끄러미 청이를 바라보고 있다. 청, 봉팔을 힐끔 쳐다보며.

청 (웃음) 비가 쏟아지길래.
봉팔 (놀랍다는 듯) 웬일로.
청 어김없이?

 둘, 마주보고 웃는다. 청, 계속해서 빨래를 턴다. 봉팔, 소파에 털썩 앉는다.
 청이 빨래 개던 것을 멈추고 잽싸게 봉팔의 얼굴에 얼굴을 들이민다.
 코를 킁킁거리다가 눈을 흘긴다.
 
봉팔 술집에서 만난 년이, 술 먹었다고 난리치면, 이게 무슨 싸가지 없는 경우야.
청 아이쿠, 내가 깜박 잊고 그만! 그렇지?

 봉팔, 애교를 피우듯 청에게 안긴다.

청 욕실에 수건 있어.
봉팔 (들은 채 만 채) 응.
청 내가 뭐라고 했게?
봉팔 응?
청 (물든 빨래를 들며) 온통 물들었어. 색 있는 빨래는 따로 넣으라고 했잖아.

 봉팔, 몸을 일으켜 소파 한쪽에 기대앉는다.

봉팔 바가지는 패스.
청 매번.
봉팔 다시 빨아.
청 그런다고 지워지는 거면 화도 안나.

 봉팔, 빨래를 털던 청의 손을 잡는다. 청, 물끄러미 봉팔을 쳐다본다.

청 (활짝 웃으며) 내가 너 때문에 삭는다. 삭아.
봉팔 (웃음) 지랄.
청 (하품, 기지개를 켜며) 피곤해.

 봉팔, 청이의 어깨를 살갑게 주무르며

봉팔 하루 종일 집에서 뭐했어?
청 빨래.
봉팔 종일?

 봉팔, 청이를 어이없단 듯 쳐다보고 청, 봉팔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봉팔, 청의 무릎에 누운다. 청, 봉팔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마에 키스한다. 이마를 두드린다.

봉팔 아.
청 천박할 대로 천박한 게 이마 하난 멋있다.
봉팔 이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야. 천박하다니.
청 (웃으며) 그럼 아니게? 
봉팔 따질 건 따져보자. 술 마시는 놈, 술 따르는 년. 누가 더 천박하게?
청 둘 다 같은 판에 앉았는데, 더하고 덜 할게 뭐있나.
봉팔 얼쑤!
청 (웃음) 지화자!
봉팔 자자.
청 마저 하고 잘게. 자.
봉팔 내일 해. 
청 젖은 빨래 쌓아두면 냄새나고 못써.
 
 봉팔, 청의 허리춤을 파고든다.

청 응?
봉팔 (무릎에서 일어나며) 딱하면 척하는 맛이 있어야지.

 봉팔, 일어나 방으로 향한다. 청, 혼자 우두커니 남겨진다.
 빨래 털기를 멈춘다. 청, 테이블 위에 놓인 빨래를 두고 소파에 눕는다.
 웃음이 나온다. 방문을 향해.

청  에이, 씨이팔 새끼.
봉팔E. 빨랑 와.

 청, 소파에 고쳐 앉으며.

청 (웃으며) 간다, 가. 이 천박한 새끼.

 암전.

 <3>

 방 안. 무대 중앙에 더블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 오른 편에는 협탁이 놓여있다.
 협탁 위에는 봉팔의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 있다.
 청이 먼저 잠에서 깼다. 모로 누워 봉팔을 들여다 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봉팔을 보고 슬쩍 웃는다.
 장난스럽게 봉팔의 귀에 대고 소리친다.

청 굿! 모닝.
봉팔 (벌떡 일어서며) 어!
청 (웃으며) 잠, 깨라구.

 봉팔,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다.

봉팔 아이 씨팔.
청 (되물으며) 씨이팔? 나. 씨이팔? 
봉팔 에라, 너도, 나도, 오늘도 안 죽었네 싶어서.
청 (봉팔 쪽으로 다가가며) 장-하다! 오늘도 살아나서.

 청, 봉팔에게 키스하려는 듯, 입술을 내밀고 다가간다.
 봉팔, 손바닥으로 청의 얼굴을 잡아 멈춰 세운다. 인상 쓴다.

봉팔 양치라도 미리 하던가.
청 아침부터 까탈스럽게.
봉팔 상쾌한 아침에 이쁜 애인이 치약냄새 풍기면서 새하얀 이로 웃어주면 좀 좋아?
청 (심각하게) 이쁜 애인이라.

 봉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봉팔이 기지개를 켜면 청이,
 봉팔에게 달겨들어 키스를 시도한다. 봉팔, 필사적으로 피한다.
 티격태격. 결국 청의 승리. 둘, 낄낄 웃는다.
 봉팔이 청이의 어깨를 껴안은 채 침대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는다.

청 주말인데, 나들이 갈까? 꽃 폈던데.
봉팔 (헛기침) 이 나이 되면 말이다.
청 아들 딸 불쑥불쑥 잘 낳고 꽃 나들이 갈 나이지.

 봉팔, 협탁 위의 담배를 찾아 더듬거린다.

청 가까운 데라도 성의를 좀 보여. 응?
봉팔 봐서.
청 도시락도 싸고. 신난다.
봉팔 (담배를 잡으며) 준비할 게 많아.
청 가만, 장소 먼저 정하자. 어디가 좋을까?
봉팔 날 잡혔어.

 청, 말이 없다. 멍한 표정. (사이) 청, 큰 소리로 웃는다.

청 옛날에 가게 식구들 하고 양수리 놀러갔을 적에, 기억나?

 봉팔, 대꾸하지 않는다. 청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청 아무래도 나들이는 당신 결혼식장으로 가야겠다.
봉팔 장난 치지마.

 봉팔,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청인 말이 없다. 슬픈 얼굴이다. 

청 난 엄마 닮았나. (사이) 그래서 이따위 천박한 남잘.

 청, 웃는다. 봉팔, 협탁 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다.

봉팔 스물 둘이잖아. 얼마든지,
청 (말을 가로채며) 술을 잘 따르는 년이니까.
봉팔 나보다 좋은 남자 많아.
청 천박한 남자가 좋아.
봉팔 (한숨 쉬듯) 미안하다.
청 겁나?
봉팔 (소리 높여) 미안하다구.
청 이렇게 젊고 싱싱한 애인 두고. (질세라 소리 높여) 뭐가 무서워서.
봉팔 눈 뜨면 아차, 살았구나. 씨이팔, 살았구나. 까짓거 오늘도 더럽게 살아보자.
청 얼쑤!
봉팔 청미씨라면 달라질지도 몰라.
청 (개의치 않는 듯) 강원도 가자.
봉팔 (한숨 쉬며) 관두자.
청 풍력발전소 어때? 외눈박이 괴물 닮은 풍력기. 바람 불면 우우, 돌아가는.
봉팔 관둬.
청 전에 가본 적이 있어. 몸뚱이에 달린 거라곤 달랑 손 세 개뿐인데, 그 손 세 개가  그렇게 무거워. 세월아 세월아.
봉팔 .
청 엄마 얘기 한 적 있던가?
봉팔 기억 안 나.
청 예뻤다. 난 엄말 참 안 닮았어. 아빠를 닮았나 싶다가도.
봉팔 싶다가도?
청 애 아빠란 사람 잽싸게 도망가고 아홉 달, 울음을 어찌나 잘 참던지. (웃음) 나는  엄마 울음이야. 참다 참다 터져 나온.  

 봉팔, 침대에서 일어난다.

청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갔어. 대관령쯤이었나, 풍력기 있던 곳이. 엄마가 돌연 차 를 세우더니 풍력기 앞에 서더라. 두 팔을 벌리고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어. 무섭 더라. 풍력기가 엄마인지 엄마가 풍력기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웃음) 우두커니 서  있던 엄마가 우우, 울더라.

 봉팔, 한 숨 쉰 후 다시 침대에 앉는다.

청 갈 거지?
봉팔 수력인지 풍력인지.
청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 풍력.

 청이, 엉거주춤한 봉팔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웃으며 팔을 벌린다.
 봉팔, 청의 옆에 앉는다. 청, 봉팔을 꼬옥 안는다.
 봉팔, 청이 머리를 밀어 떼어내려고 한다. 청이, 죽어도 안 떨어진다.
 과정이 반복된다. 결국 청의 승리.
 봉팔은 지쳤다는 시늉을 한다. 피식 웃는다.

 암전.

 <4>

 <1>과 무대 똑같다. 그러나 각 각의 풍력기 앞에 거대한 빨fot줄로 보이는 줄이 있 고
 하얗고 긴 빨래들이 널려있다. 장막 같은 느낌이다.
 청이와 봉팔, 객석을 등진 채 고개를 젖히고 서 있다.
 돌아가는 풍력기를 보고 있다.
 침묵.

청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게) 울어도 괜찮아.
봉팔 (청이의 어깨를 감싸며) 괜찮아.
청 괜찮아.

 바람이 다소 세게 불면 풍력기 틈 사이 가운데 장막 뒤로, 엄마가 보인다.
 엄마 역시 객석을 등진 채 고개를 젖히고 서 있다. 양 팔을 벌리고 있다.
 양팔을 좌우로 흔들고 있다.
 청, 장막 사이를 좌우로 걸으며 엄마에게 다가간다.

청 (봉팔을 바라보며) 장가간대. 잘 울고, 잘 웃는, 눈이 맑은 여자래. (사이) 엄마, 난  누굴 닮았나? 천박하다.

 엄마, 양팔의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나 뒤돌아보지는 않는다.
 봉팔, 관객을 향해 돌아 선 후, 바닥에 주저앉는다.

봉팔 쌀쌀하다.

 청이, 엄마의 팔과 등짝을 만지며

청 가슴이 아프면 울어야 하지? 괜찮아.

 엄마, 웃는지 우는지 모를 소리를 내며 몸을 떤다.
 청이, 엄마의 등을 껴안아준다.

봉팔 청아.

 청이, 장막 사이를 헤집고 봉팔 옆에 나란히 앉는다.
 엄마, 바람이 나부낄 때마다 어렴풋이 보인다.

청 (꽤 큰 소리로) 에라 씨이팔.

 봉팔, 청이를 쳐다본다.

청 (웃음) 왜?
봉팔 (당황하며) 왜?
청 신파야.

 청이, 웃는다. 봉팔, 따라 웃는다. 봉팔, 청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봉팔 청아.
청 촌스럽긴.
봉팔 달리, 뭐라 불러?
청 엄마도 참. 좋은 이름 많은데 청이가 뭐야. 효도할 아빠도 못 찾아 줬으면서.
봉팔 대신 나한테 해.

 청이, 슬픈 얼굴. 말이 없다.
 봉팔, 허리를 곧추 세운 채 어깨를 활짝 펴고 청이를 품안으로 끌어당기며.

봉팔 에헴, 청아.

 청이, 못이기는 척 봉팔의 어깨에 어깨를 기댄다.

청 바람이 너무 세서. 엄마는 힘이 풀렸던 거야.

 청이, 고개 들어 봉팔을 본다.

청 쌀쌀하다.

 둘, 슬프게 웃는다.
 암전. 


 <5>

 <2>와 무대 똑같다.
 그러나 벽면에 걸려있던 사진은 없다.
 청이,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다.
 무대 오른편으로 봉팔 등장. 소파 근처까지 와 앉지 못하고 서있다.  

청 (놀라지 않은 듯) 왔어?

 봉팔, 우두커니 서 있다. 청이, 빨래를 개며.

청 앉아. 어색해.

 봉팔,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청이, 묵묵히 빨래를 갠다.

청 (조심스럽게) 좀 어때?

 봉팔, 의문스럽게 청이를 쳐다본다.

청 (웃음) 나 말이야.
봉팔 예뻐.
청 거짓말.
봉팔 (심각한 듯 고개를 떨구며) 씨이팔.

 청이, 봉팔 쳐다보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웃으며

봉팔 들켰다! 
청 커피?
봉팔 아니.

 청이, 빨래를 개다 멈추고 봉팔을 본다.

청 전화라도 줬으면. 손님 두고 빨래 늘여놓지 않았을 텐데.
봉팔 빨래 할 때가 제일 좋아.
청 상쾌해.
봉팔 행여나 흰 빨래에 색 있는 빨래라도 섞이는 날엔,
청 매번.
봉팔 바가지는 패스.
청 (웃음) 정말 모르겠더라. (사이) 당신 이 집 오고 처음 빨래 한날, 건조대에 매달린  당신 빤스가 바람에 나부끼는데, 영 부끄러워야지. 이 두 구멍으로 당신 힘없는  두 다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할 텐데. 아휴, 망측해! 내가 어딜 만져, 어떻게 접어.  (웃음) 정말 난감했어.
봉팔 청아.
청 서방질도 한 두 번 한 놈이 잘 한다구. 며칠 안 걸리더라.
봉팔 보고 싶었다.
청 이 빤스가 내 건지 당신건지. 손만 뻗으면 착착, 저절로 빨래가 개어지더라니까.
봉팔 청아.
청 계집질도 그렇지? 이 년이 저 년인지 그 년인지. 그렇지? 옆에 누웠던 년 얼굴은  기억도 안나, 손만 뻗으면 저절로.
봉팔 넌 달라. 천박하잖아. (웃음) 
청 마음이 넓은 남자를 만날 거야. 나같이 천박한 여자도 괜찮은.

청 겁나?
봉팔 아니.
청 응 겁나.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할 때 두려움이 생긴대. 너도 나도 이제 행복해져야 지.
봉팔 갈게.
청 (드라마틱하게) “행복해, 잘 살아.”

 봉팔도 청이도 어색한 듯 가볍게 웃는다.

청  놀러와. 이미 물들었잖아. 그치?

 봉팔, 미소 짓는다. 빨래를 개고 있는 청이를 안는다.
 청이 봉팔의 팔을 잡아 내려 놓는다.

청 빨래.

 봉팔, 천천히 일어나 무대 오른 편으로 퇴장.   
 청이, 일어나 봉팔이 떠나간 쪽을 바라본다.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는다. 빨래를 들어 탁 탁 턴다.
 빨래를 개기 시작한다.

 암전.

오민아  webmaster@d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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