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말을 가끔 學生(학생)들에게 특히 卒業(졸업)을 앞둔 學生(학생)들에게 이야기하여 들려주곤 한다. 내 나름의 訓辭(훈사)로서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海女(해녀)의 哲學(철학)’이라 하고 序頭(서두)를 끄집어내면 學生(학생)들은 爆笑(폭소)를 참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아마 ‘海女(해녀)’라고 하니 젊은 그들의 관심꺼리에다가 생각을 結付(결부)시키기 때문인가 싶다. 즉 그것은 女子(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딱딱하고 ‘유머’를 알지 못하는 내가 하리라고 미리 짐작한 데서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달콤하고 나약한 이야기의 줄거리가 되는 말구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女子(여자)’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들 인생항로에 있어 지침이 되는 철학적 고무적인 이야기다.
  내가 大學(대학)을 卒業(졸업)한 해가 1943年(년)이니 太平洋戰爭(태평양전쟁)이 한참 치열하던 바로 그때다. 그때 일본에선 文科系統(문과계통) 學科(학과)는 廢止(폐지)되고 學生(학생)들은 徵兵保留(징병보류)가 撤廢(철폐)되고 심지어 韓國學生(한국학생)들까지도 學徒志願兵(학도지원병)이라고 하는 美名(미명)아래 끌려가지 않으면 아니될 때였다. 따라서 젊은 學生(학생)들 전부는 絶望的(절망적)인 앞날에 대하여 비관적이어서 그저 虛無主義(허무주의)에 의한 瞬間(순간)의 享樂(향락)에만 치우쳐 아무런 野望(야망)도 없이 虛送歲月(허송세월)을 일삼아 왔든 것이다. 이와 같은 때에 있어 이 말은 卒業(졸업)을 앞둔 그 어느 날 경영학 ‘세미나’指導敎授(지도교수)였던 大木秀男(대목수남) 선생님(선생님은 당시 日本(일본)經營學界(경영학계)에서 촉망받는 少壯學者(소장학자)로서 日本(일본)의 技術經營學(기술경영학) 樹立(수립)을 위하여 애쓰시던 분으로 1946年(년) 40代(대)를 바라보는 젊은 나이로 作故(작고)하였다)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든 말씀이다.
  “아시다시피 海女(해녀)랑 본래 물을 즐기고 물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本業(본업)으로 한다. 그와 같은 海女(해녀)도 비오는 날 바다로 갈 때엔 비를 피하느라고 우산을 받고 갯가에 까지 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제군들도 卒業(졸업)하자 곧 軍門(군문)에 들어가 언제 죽을런지 알 수 없는 몸이지만 설사 죽는 그날 까지는 學問(학문)을 위하여 人格(인격)의 도야를 위하여 꾸준히 힘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발 죽어가는 그 時間(시간)까지도 제군들 자신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하여라.” 이것이 恩師(은사)가 우리를 위하여 가르치시든 말씀이다.
  나는 나의 日常生活(일상생활)에 있어 항상 이 가르치심을 되새겨 지금까지 나를 채찍질하며 激勵(격려)하는데 努力(노력)하여왔다. 내가 특히 이 紙面(지면)을 통하여 또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하는 이유란 내가 直接(직접) 만나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들한테도 이 말을 들려주어 조금이라도 제군의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여서다. 나의 恩師(은사)가 이 말씀을 우리들한테 말씀하시던 때와 지금의 우리 환경과 事情(사정)은 다르다고는 할지라도 이 말씀의 眞理(진리)는 그때나 지금 또는 앞날의 어때, 라고 할지라도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부디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하여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면 多幸(다행)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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