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본교의 象徵(상징)動物(동물)이다. 코끼리를 상징동물로 삼게 된 것은 佛敎(불교)와 코끼리의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마야부인의 胎夢(태몽)에 코끼리를 타고 내려 왔다는 說話(설화)를 비롯하여 佛敎(불교)經典(경전)엔 코끼리를 宗敎的(종교적)인 修行者(수행자)의 교훈으로 삼아 왔다. 특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普賢(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타고 다녔던 것. 코끼리의 슬기와 勇猛(용맹)과 忍耐力(인내력)을 높이 본 때문이다.

▲옛날 印度(인도)사람들은 코끼리를 戰爭(전쟁)의 무기로 삼았다. 알렉산더 大王(대왕)이 침입했을 때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의 방패가 되었던 것은 그 하나의 例(예). 화살 따위에 쓰러질 리가 없는 코끼리이다. 法句經(법구경)에는 ‘싸움터에서 화살을 맞고도 견디는 코끼리처럼 나도 비난을 견디리라’는 구절이 있다. 코끼리의 忍耐(인내)를 修行者(수행자)에게 강조한 대목이리라.

▲코끼리는 둔하게 생겼지만 결코 둔하지는 않다. 호랑이 사냥에 그 勇猛(용맹)과 機智(기지)가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두고 보더라도 알만하다. 코끼리는 또 지혜롭게 일하는 동물로서 團結力(단결력)이 강하기로도 으뜸이다. 敵(적)을 향하여 한 덩어리가 되어 突進(돌진)하는 敢鬪光景(감투광경)은 映畵(영화)를 통하여 흔히 보는 바다. 죽을 때는 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코끼리. 이러한 靈物(영물)을 상징동물로 삼고 있는 東大建牙(동대건아)의 氣風(기풍)은 항시 슬기롭고 勇敢(용감)하고 그러면서 忍耐(인내)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찮은 일로 亂鬪劇(난투극)을 벌리는 따위의 용열을 증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孝昌(효창)운동장에서 또 하나의 불쾌한 사태가 벌어졌다. ‘럭비聯盟戰(연맹전)’에 출전한 본교 選手(선수)와 海士(해사)팀 간의 亂鬪劇(난투극) 그것이다. 이기거나 지거나 간에 당당해야 하는 것이 스포츠 精神(정신)이요, 東(동)大(대)코끼리 다운 체통일 게다. 그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알바가 아니다. 경기가 中斷(중단)될 만큼 심각했었다는 報道(보도)만으로도 우리는 不快(불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機會(기회)에 본교 選手(선수)들의 精神的(정신적)姿勢(자세)를 철저히 다져놓기를 희망한다. 南山(남산)의 코끼리답게 슬기롭고 용감하고, 그리하여 어떠한 事態(사태)도 참아서 이길 수 있는 그런 참 바탕이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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