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할 겨를도 없는 일벌 같은
人生(인생)이 얼마나 행복할른지...”

  새벽에 언뜻 잠이 깨었는데 빗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나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새벽에 어쩌다 잠이 깨어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것은 아직 기침 (起寢(기침))하지 못한 내 영혼을 한 올 한 올 일깨워 주고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누구를 미워했던 일, 누구를 헐뜯었던 일, 누구를 소홀히 했던 일들이 빗소리 속에 큰 뉘우침이 되어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괜히 흥분했거나 오만했거나 허세를 부렸던 일들이 참담해질 만큼 큰 낭패로 느껴지기도 한다.
  혹은 일에 쫓기어 혹은 사람에 치어 내 몰골을 되돌아 볼 새도 없이 그날그날 마구잡이로 살아온 내가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새벽에만 이라도 조금은 착해지고 純眞(순진)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금까지는 설사 허둥대며 천방지축으로 살아 왔을망정 오늘부터라도 조금은 올곧고 정갈하게 살고 싶다. 참 지겹게도 긴 겨울이었다. 그러나 춘분이 지난 지 오래니 이제 봄비임이 분명하다. 봄비는 그대로 봄의 傳令(전령)이요 觸媒(촉매)다.
  아직 움츠리고 망설이는 삼라만상을 붐비는 그 크고 번들번들한 손으로 어루만져 한청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게 할 테니 말이다. 오늘이 마침 휴일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제법 참해진 마음을 흔들지 않은 채 더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내 몰골을 더 매만져 보았으면 해서다.
  솔직히 나는 휴일마다 비나 왔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이다.
  등산이니 낚시니 무슨 야유회니 해서 부지런히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퍽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나대로 비 내리는 휴일을 즐기는 별난 재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휴일이면 나는 거의 누워서 산다. 그러나 머리맡에는 으레 책 몇 권과 원고지 몇 장, 밀린 신문, 그리고 먹을 것을 준비한다. 가벼운 이불을 덮고 누운 채 밀린 월간지를 뒤적여도 좋고 며칠 동안 못 본 신문의 연재소설을 한꺼번에 읽어도 좋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오르면 원고지 뒷장에 끄적여 보기도 하고 그도 지겨우면 미련 없이 잠을 청한다. 은밀하게 소곤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곤한 잠에 빠지는 맛이란 가히 꿀맛이다. 그럴 때면 솔직히 일주일 못 잔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자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머리말의 과일이나 과자를 먹는다. 그러다가 또 책을 읽고 끄적이고 잠을 자고…
  휴일에도 가게나 직장 일 때문에 몸짝을 붙이고 정신없이 나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의 정력이나 열의에 경외를 표하면서도 별로 부럽지는 않다. 바쁜 일벌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던가?
  그러나 슬퍼할 겨를도 없는 인생이냐 얼마나 행복할 지는 의문이다.
  아직 봄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휴일이 아니다.
  이렇게 단비가 내리는 날 나를 뉘우쳐 보며 나를 더 가다듬어 볼 여유마저 잃은 채 다시 일터로 나가야만 하다니…
  괜히 빗소리에 취하여 늑장을 부렸나보다. 허둥허둥 출근준비를 한다.
  현관에서 우산을 챙겨본다. 학교에 갈 아이들이 셋인데 헝겊우산 셋에 비닐우산 하나가 보인다.
  비닐우산은 간밤에 내가 사들고 들어 온 것이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닐우산을 펴들고 현관을 나선다.
  손바닥만한 꽃밭이지만 갓 피어난 목련꽃 봉오리가 단비에 홈빡 젖고 있다.
  우리의 초엽하고 가난한 뜨락에도 머지않아 봄이 오려나 보다.
  나는 부지런히 골목길을 걷는다.
  봄비가 내 초라한 비닐우산 위에서나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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