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무리가 한마음 한뜻되어 제 재물을 제것이라 하는 이가 없더라”

예수 傳統(전통)거부로구도 구원의 尺度(척도)삼아
동질성, 평등 등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속성

  이런 사람들이 모인 初期(초기) 基督敎(기독교) 共同體(공동체)의 特性(특성)은 ‘形式的(형식적)인 意味(의미)를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속된 자들 (members one of another)’의 集團(집단)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千年王國運動體集團(천년왕국운동체집단)의 一般的(일반적)인 特性(특성)은 Victor Turner의 ’The Ritual Process'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同質性(동질성), 平等(평등), 이름없음, 財産(재산)의 不在(부재),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은 地位(지위)를 부여 同一(동일)한 옷을 착용, 性(성)의 절제 (혹은 그 반대로 性的(성적)인 共同體(공동체), 性(성)의 節制(절제)나 性(성)의 共同體(공동체), 性(성)의 節制(절제)나 地位(지위)를 正當化(정당화)시키는 結婚(결혼)과 家族(가족)을 解體(해체)시킨다) 性區分(성구분)의 極小化(극소화)…’
  위의 屬性(속성)들은 初期(초기) 基督敎共同體(기독교공동체)들이 지녔던 具體的(구체적)인 屬性(속성)과도 直接的(직접적)인 關係(관계)가 있다.
  물론 Jurner가 주장한 屬性(속성)이 비록 밀접한 關係(관계)가 있기는 하나 全的(전적)으로 基督敎(기독교)에 摘用(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聖書(성서)를 통해 볼 때 이러한 점들은 千年王國運動(천년왕국운동)으로서의 初期(초기) 基督敎(기독교)를 例證(예증)해 준다.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꼴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마가복음 9장34~36절)
  이는 천년왕국운동의 典型(전형)인 反構造(반구조)의 段階(단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자들 가운데서 누가 最上(최상)의 地位(지위)를 차지하는가를 論爭(논쟁)할 때 예수가 개입하여 지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지위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어린이를 共同體(공동체)의 모델로 내세워 이를 해결한 것도 당연한 歸結(귀결)이 된다. 이 생각은 다른 領域(영역)까지 擴大(확대)되어 傳統的(전통적)인 價値尺度(가치척도)뿐만 아니라 家族的(가족적)인 紐帶關係(유대관계)까지도 부정되고 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父母(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가복음 14장26절)
  예수 자신도 마태복은 13장 46~48절에 보면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면서 그것을 否定(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장32절)
  이를 볼 때 初代敎會(초대교회)에서는 분명히 財産(재산)은 共有(공유)되고 있다.
  이는 Jurner의 說明(설명)을 설득적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性區分(성구분)의 極小化(극소화)는 초기 기독교의 문헌에서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어떠한 性差別(성차별)도 있을 수 없는 千年王國(천년왕국)에의 信者(신자)들의 念願(염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으니라. (마가복음 12장25절)
  위의 예수의 말보다 더욱 시사적인 것은 바울 이야기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28절)
  性差別(성차별)의 極小化(극소화)는 후대에 등장하는 montanism이나 Marcionism이나 ‘異端(이단)’에서 理想主義的(이상주의적) 경향을 띠고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反構造(반구조)의 단계가 영원히 지속됨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까지의 낡은 규칙이 전복되고 무규칙의 단계로 移行(이행)된 후에는 새로운 규칙의 성립이라는 단계가 반드시 따른다. 즉 낡은 규칙에서 무규칙의 단계로 이행되어 감에 따라 運動體(운동체)들은 새로운 규칙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自己矛盾(자기모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낡은 규칙→무규칙→새로운 규칙의 移行(이행)에는 또 하나의 千年王國的(천년왕국적)원리의 共同(공동)의 복지라는 原理(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장23절)
  즉 개인 자유나 유익을 共同體(공동체)로 종속시킴으로써 사도바울은 새 규칙에로의 전환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규율이 생긴다 함은 千年王國運動(천년왕국운동)으로서의 初代敎會(초대교회)의 本質(본질)과 근본적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결국 이 단계로 전환됨에 따라 千年王國運動(천년왕국운동)으로서의 初期(초기) 基督敎(기독교)는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Burridge는 千年王國運動體(천년왕국운동체)를 연구한 그의 著作(저작) ‘New heaven New Earth’에서 예언자적 활동을 論(논)하면서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 두 Group나 혹은 두 Category의 인물들이 동일한 가치관이나 가정들을 共有(공유)하고 있고, 그러나 이 두 集團(집단)이나 두 catrgory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 共有(공유)된 가치관에 내포된 보상이나 급부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導師(도사)나 預言者(예언자)는 탄생되고, 새로운 가정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집단이나 category의 인물들이 생겨나게 된다.
  둘째 예언자는 그 새 인간을 자신 속에 상징화하거나 자신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의 특성을 알려주는 媒介者(매개자)이다.
  이 두 가지의 요소를 千年王國(천년왕국) 지도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 볼 때 福音書(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의 활동은 이와 완전히 부합된다. 첫 번째 요소의 두 Group나 Category는 당시의 유대 地方(지방)에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으며 그 가담자들로 설명될 수 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음일러라. (마가복음 1장22절)
  그는 옛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Vision을 그의 追從者(추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게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마가복음 11장15절)
  위의 句節(구절)은 예수의 行動(행동)에 대한 典型的(전형적)인 形式(형식)을 말해준다. 예언자적 권위에서 나오는 그의 行動(행동)은 그가 스스로를 구원의 尺度(척도)로 내세우는 점에서 그 頂點(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또한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12장8-9절)
  예수는 현재의 규칙과 전통을 거부함과 동시에 자신을 구원의 尺度(척도)로 내세우면서 그 媒介體(매개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처음에 내세운, 初期(초기) 基督敎共同體(기독교공동체)가 千年王國集團(천년왕국집단)으로 태동하였고 예수가 그 集團(집단)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는 가정은 증명된 셈이다. 물론 하나의 사실을 볼 때는 여러 가지 觀點(관점)이 있을 수 있고 많은 見解差異(견해차이)는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 觀點(관점)에 있어서 替過妥當性(체과타당성)이 결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千年王國(천년왕국)으로서의 初期(초기) 基督敎(기독교)는 現在(현재)까지도 人類社會(인류사회)에 있어서 많은 影響(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후에 聖書(성서)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他地域(타지역)에서의 千年王國運動(천년왕국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 그 反應(반응)이 肯定的(긍정적)이든 否定的(부정적)이든 다음과 같은 疑問(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 죽은 사람을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獨生子(독생자)라고 우리가 믿어야 하는 理由(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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