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쿨하게 즐기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분단국가라는 ‘뜨거운 감자’ 속에 사는 서러움을 절감한다. “이러다 전쟁나면 어떻게 하죠?” 라고 묻는 학생도 있다. 외신에서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이슈로 다룬다. 그래도 우리는 그저 여느때처럼 일상을 영위한다. 분단국가에서 사는 뜨거운 감자 맛이 일상의 숨결에 배어든다.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물어봐도 답은 명쾌하지 않다.

그런 와중에 ‘지슬’이 개봉해 10만명 이상 관객을 모으며 ‘워낭소리’ 신드롬을 이어갈 것이란 기쁜 소식이 들린다. 제주도 말로 ‘감자’를 뜻하는 ‘지슬’을 제목으로 내건 이 작품은 아픔을 먹고 사는 한국영화의 미학을 처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1948년 겨울.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으로 3만여 명을 저승으로 보낸 제주 4.3사건이 영화의 무대이다. 빨갱이를 잡기 위해 제주를 장악한 군세력은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저승으로 내모는 학살극을 명령,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죽을까 두려워 깊은 동굴로 도피한 사람들과 빨갱이 말살에 나선 군부대의 행태가 교차한다. 그 과정은 죽은 자를 보내는 산 자의 제사 양식에 담겨진다. 영혼을 모셔 앉히는 ‘신위’, 영혼이 머무는 곳 ‘신묘’, 영혼이 남긴 음식을 먹는 ‘음복’, 신위를 태우며 염원을 드리는 ‘소지’라는 챕터 구성은 동굴 피난민과 빨갱이 잡기 군인들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말하면 영화가 심각할 것 같지만, 정작 영화는 맛깔스럽고 정겹다. 이데올로기 논쟁과도 상관없다. 일상을 살아내는 근심에 겨운 사람들이 구시렁대며 나누는 대화와 처연하게 아름다운 제주 풍광이 수묵화같은 고아함을 풍기며 시선을 씻어낸다.

특히 동굴 속에 도피한 이들의 모습을 잡아내는 장면들은 뜨거운 감자를 식혀내는 쿨한 맛을 보여준다. 위험하다고 하니까 일단 살려고 동굴에 숨었지만 집에 두고 온 돼지가 굶어 죽을까 걱정하는 사람, 좋아하는 여자에게 장가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근심, 늙어서 아픈 엄마를 업어서라도 모시고 와야 한다는 각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불을 피우며 나누는 대화 장면은 보는 나도 거기 같이 앉아있는 것 같은 정겨움을 전해준다.

‘지슬’은 현재 벌어지는 ‘뜨거운 감자’와 직접적 관계는 없다. 그러나 소수 권력자의 이데올로기 심문으로 고달퍼지는 많은 이들의 아픔이 흑백화면에 담긴 앙상한 나뭇가지의 서러움처럼 메아리친다.

Tips. 마음이 허전할 때, 극장에 가서 ‘지슬’을 맛보시기 바란다. 미학적 제사를 맛보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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