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우 동문과의 일문일답

다시하고픈 大學生活(대학생활)
步行(보행)연습... 退院(퇴원)했으면
바둑 讀書(독서)로 消日(소일)하지만

  8년 전 不義(불의)에 항거하다가 경찰의 흉탄에 중상을 입고 현재까지 梧柳洞(오류동)원호병원에 入院(입원) 치료중인 金胖友(김반우우)(28)동문을 찾아다.
  金(김)동문이 4ㆍ19의 怒濤(노도)에 뛰어든 것은 農經科(농경과) 1학년 때 革命(혁명)의 대열에 앞장서서 孝子(효자)洞(동) 종점을 지나 경무대에 이르는 거리에서 무차별 亂射(난사)하는 경찰의 흉탄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가 그해 6월에 이르자 겨우 의식을 찾았다. 흉탄이 목줄기를 관통, 척추신경이 마비되어 手足(수족)을 제대로 못 늘리고, 말도 제대로 못해왔는데, 만 8년에 걸친 鬪病(투병)으로 퇴원을 희망할 단계까지 회복되었다.
  원호병원을 찾은 것은 화창한 11일 오전. 기자를 맞은 김동문은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음은 金(김)동문과의 問(문)一(일)答(답)이다.

△ 만 8년 동안 치료를 받은 결과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는가? 처음에는 체념했다. 수술과 藥物(약물)치료가 끝나고, 物理(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步行(보행)연습에 치중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금년 내에 퇴원하고 싶다. △ 당시 부상당했던 학생들 중 아직 퇴원 못한 사람은? 거의 퇴원하고 네 명만 남았다. 이제 나도 정상으로의 회복기에 있다. 많은 척추신경환자들의 회복은 담당의사들이 놀랄 정도다. △ 어떻게 消日(소일)하는가? 장기, 바둑과 독서, 움직이는 生活(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원을 산책하며 공상하는 시간이 많다. △ 어떤 空想(공상)인가. 구체적으로… 글쎄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을 記者(기자)가 정리해서 한마디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공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 日記(일기)를 쓰는가? 손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쓰질 못했다. 간단한 문안편지 정도는 쓴다. △ 精神的(정신적)인 건강상태는 어떤가? 극히 正常(정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건 어림없는 妄想(망상)이다. △ 正常(정상)이라고 했는데? 어머니(67세)가 계속 돌봐준 덕분이다. 그동안 많은 인내력, 특히 병적 고통에서 이겨내는 힘을 길렀던 것이 큰 효과를 거두었던 것 같다. △ 8년 동안 여러 차례 大學生(대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시위를 했는데, 그걸 어떻게 보는가? 大學生(대학생)들은 젊은 知性人(지성인)이다. 모든 일이 젊음의 패기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젊은이로써 자중하고 지성을 발휘해야할 것이다. 기분에 의한 행동은 완전할 수 없다. △ 당시 부상을 입었던 곳은? 孝子洞(효자동) 전차종점과 무대 중간 지점이다. △ 만일 당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 경찰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면 어쩌겠는가? 글쎄 感情(감정)이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니까 상상하기 곤란하다. 당시와 현재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 東大(동대)를 보고 싶지 않는가? 日刊新聞(일간신문)에 보도되는 東大(동대)에 관한 기사는 모조리 읽는다. 많이 변모했을 것이다. 明洞(명동) 聖母(성모)병원에 있을 때 멀리 하얗게 보이는 탑(東友塔(동우탑))을 바라볼 수 있었다. 퇴원해서 학교생활을 해봤으면 좋겠다. 64년도에 學士證(학사증)을 받았는데 ‘졸업’과 ‘배웠다’는 것은 다를 테니까. 나를 가장 간절하게 하는 것은 學究(학구)에의 애착이다. △ 窓邊(창변)에 놓인 화분은 대부분 선인장인데… 선인장이 좋아서다. 저기 정원에 있는 꽃나무는 朱宗植(주종식) 교수가 가져온 것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심어둔 것이다. 꽃이 필 때마다 朱(주)교수님을 생각한다. 그분에게 감사한다. △ 지금 너무 앙상하지 않는가. 머지않아 잎이 돋아나고 꽃이 만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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