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의 베테랑”


◯ㆍㆍㆍ武稿洞(무교동) 대한체육회관 앞에서 청계천 켠을 바라보면 光南(광남) 빌딩에 걸린 붉은 바탕에 흰 글씨의 ‘三蔓銀行(삼만은행)서울支店(지점)’ 간판이 보인다. 일본銀行(은행)에서 최고로 군림, 世界(세계)방방곡곡에 연결이 되어있는 은행이다. 이 은행이 韓日(한일)간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개점 한 때가 작년 10월 22일. 이곳의 韓國人(한국인) 총책임자인 支店長代理(지점장대리)가 金大浩(김대호)(42歲(세))동문이다.

◯ㆍㆍㆍ“外國銀行(외국은행)으로써 韓國人(한국인)책임자는 <아마>드물 것”이라고 말하는 金(김)동문은 늠름한 풍채에 여유만만. 6ㆍ25사변이 일어나기 전 해 東大(동대)전문부 文學部(문학부)를 졸업, 國民(국민)은행 城東支店長代理(성동지점장대리)에서 ‘미쓰비시’은행으로 영전한 것이 오늘의 金(김)동문이다. 한때는 故(고) 김영석 박사의 권유로 東大(동대)교무과에서 일한 적도 있었지만, 그의 잔뼈는 大部分(대부분) 銀行街(은행가)에서 굵어진 것.

◯ㆍㆍㆍ在學時節(재학시절)에는 물론 學業(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韓國大學(한국대학)축구계의 王子(왕자)”로 군림했었던 일은 東大體育史(동대체육사)와 함께 記錄(기록)되기도. “그때는 공부하는데 있어서나 스포츠에서 단연 東大(동대)가 제일이었다”고 당시를 술회한다. 당시 自身(자신)을 포함한 5명의 학생이 은행시험에 응시 ‘모두 合格(합격)했다’고 자랑을 하기도..

◯ㆍㆍㆍ“外部(외부)에서 이렇게 母校(모교)를 지켜볼 때 우리가 다니던 시절보다 퇴보해가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東國人(동국인) 개개인이 분투, 노력해서 學界(학계)는 물론 體育界(체육계)등, 다방면에 걸쳐 다른 어느 젊은이보다 출중해야합니다. 우리들은 어디가도, 어느 면에서건 지지 않았어요”하면서 그의 同期生(동기생)들과 그 당시의 敎授(교수)들을 손꼽아 보인다.

◯ㆍㆍㆍ우리나라에 손을 뻗친 日本銀行支店(일본은행지점)은 ‘미쓰비시’ 은행과 東京(동경)은행 등 두개 역시 金同門(김동문)은 ‘미쓰비시’ 은행의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일본 一流大學(일류대학)졸업생이 아니면 채용하지 않는다는 그것만으로도 “단연 日本(일본)최고” 은행이라는 것이 그것.

◯ㆍㆍㆍ애당초에는 工科係(공과계)를 꿈꾸었으나 東大(동대)에는 그 계통의 전공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澤(택)한 것이 國內第一(국내제일)인 文科系(문과계)를 澤(택)했는데 社會(사회)에선 또 經濟系(경제계)로 전환하였다고.

◯ㆍㆍㆍ“지금은 어쩐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女學生(여학생)이 단 2명 뿐”이었지만 大學時節(대학시절)의 아기자기한 맛은 항시 그립단다.
 현재 城北區三仙洞(성북구삼선동)2가 266번지에 가정을 꾸미고 있는 그는 부인 李順子(이순자)(40歲(세))여사와의 사이에 2男(남)1女(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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