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허망함을 헤치고
냉혹한 질서 앞에서 출발예감
삶은 비정하게 질주해 버리고…
목멱의 사계절은 항상 바람이 불었고 바람 때문에 앓았습니다. 바람 부는 오후와 바람 부는 저녁이 그래도 밤이 되었던 지난 4년, 누가 바람 부는 날 내면을 읽지 않았나요. 저무는 저녁에 부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라 부스러지는 영혼의 흐느낌이었습니다.

  목멱의 사계절은 항상 바람이 불었고 바람 때문에 앓았습니다. 모든 앓음은 참된 앓음일 때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람 부는 오후와 바람 부는 저녁이 그대로 밤이 되었던 지난 4년. 누가 바람 부는 날 내면을 읽지 않았나요. 먼 곳에서 불수록 더욱 선명해 오는 어떤 침묵 더 많은 의미의 침묵 원형의 침묵. 저무는 저녁에 부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라 부스러지는 영혼의 흐느낌이었습니다. 낡은 편지들. 몇 권의 일기장, 몇 개의 선율- 저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계절의 질서, 냉혹한 질서 앞에서 출발을 예감해야 했습니다. 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남산의 봄날은 늦고 봄날의 情調(정조)에 의하여 학살된 겨울은 뒤에 남습니다. 바람이 불고 해가 나고 다시 비가 내립니다. 새 학기의 공간에서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저 바람의 의미, 해의 의미, 빗발의 의미를.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묻어 있다가 지워진 캠퍼스에 왜 봄날은 늦게 오는가를-82년 새 학기에도 이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고의 시간 비로소 후회가 옵니다. 한 학기의 끝, 아니 대학문을 나서며 거기 아련히 스며드는 후회의 바람 소리는 안타깝습니다.
  삶을 소유하려 했으나 삶은 언제나 비정하게 우리를 두고 질주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고통 우리들의 인내 우리들의 후회가 차디차게 얼어붙은 겨울이 머무는 벌판에 서 있습니다. 찬바람이 파고들면 우리들의 외부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나는 땅에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뜨거운 비밀이듯 저 후회 속에 흔들리는 사물들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뜨거운 비밀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는 배웠습니다. 비밀은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섬광 하나의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찬바람의 기억과 부르르 떨던 영혼의 기억을 안고 모든 사물의 피 안에서 이제 읽습니다.
  존재와 부재의 덧없음 그 허망한 거품을 헤치고 거기 안쓰러이 웅크리고 있는 삶의 핵심을.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궁핍이 마침내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어떤 짜증 어떤 갈망 어떤 불안의 심연에서 우리는 사물을 직시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내부에 있다는 사실과 사납게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내부에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 내부에 있기 때문에 후회도 불행이 아니라 우리의 실현과 신화를 의미한다는 아이러니의 발견이었습니다.
  서글픔과 견딜 수 없음의 벌판에서 그리하여 우리는 조용히 몸을 흔들어 봅니다. 흔들어 본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이 이 지상에서 우리들의 실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의지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희망. 무형의 언어는 깊은 밤 지나고 나면 상처만 남는 밤. 그리하여 정리할 것이 많은 밤에 조용히 몸을 흔들며 우리를 찾아옵니다. 비로소 우리는 후회와 희망의 시간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용서할 수 없는 관념의 언어들을 사색의 동악로에 바람 부는 저녁 남산을 물들이던 황량했던 노을도 노을 속에 안타까이 젖던 대학 건물도, 3층 도서관의 불빛도 저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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