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의 계절 - 그 회상과 충고와


  본교 附設(부설) 佛敎文化硏究所(불교문화연구소)에 전국 各寺院(각사원)의 각종 文化財(문화재), 古文書(고문서), 經書(경서) 또는 現存建物(현존건물)등의 자료를 비치하기 위해 주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전국 각지를 누비고 다녔던 지난 수년간을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일과 생각들이 엉키고 설켜 말할 갈피를 잡기가 어려우나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한 두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건 다 그렇겠지만 조사차 각처를 헤매고 다닌다는 것은 고생을 짊어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절이란 대개 깊은 산속에 있고, 아무리 교통수단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보통 2, 30리씩은 걸어야 하는데, 때는 여름방학이라 30도를 내리지 않는 炎天下(염천하)에서 등에 무거운 ‘룩색’을 지고 걷기란 그리 즐거운 것은 못된다.
  4년 전 충남일대를 다닐 때의 일이었다. 새벽5시경 天安市(천안시)에서 먹히지 않는 국밥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30리쯤 ‘버스’탄 후 저녁때까지 60리길을 걸었다. 다시 天安(천안)으로 나오기 위해 6km를 걸어야 했는데 절의 스님 말씀이 이쪽으로 가면 10리만 걸으면 車(차)를 탈 수 있다고 하여 그 길을 택했다가 무려 35리를 걷게 된 일이 있었다. 마침 음력으로 보름달이라 달이 훤하게 비춰주었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 했었다. 결국 지서 순경의 고마운 협조로 천안으로부터 택시를 불러 밤11시반에야 겨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날은 결국 95리를 걸었던 것이다.
  다녀 보느라면 이런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이런 고생을 고생으로만 생각한다면 아무도 감히 떠날 수는 없다. 그 활동에 대해 어떤 信念(신념)과 使命感(사명감)을 가져야 고생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2년 전 全北一帶(전북일대)를 돌아다니던 때의 일이다. 金山寺(금산사)를 방문한 후 旅館村(여관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밤 11시쯤 자리에 들자 옆은 누운 故禹貞相敎授(고우정상교수)가 ‘지네가 있는데…’ 하신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天井(천정)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데 내 귀에는 꼭 쥐소리로 들린다. ‘저 소리는 쥐가 다니는 소리가 아닌가요?’했더니 禹敎授(우교수)는 ‘아니야 지네가다니는 소리야’하신다.
  그럭저럭 어슴푸레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문득 옆구리에 따끔한 느낌이 있어 본능적으로 손이 옆구리에 갔는데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손에 닿았다. 六感(육감)의 활동이 매우 민첩하였는지 벌떡 일어나면서 플래시를 켜 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길이 10cm 정도의 지네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크, 내가 지네한테 물렸구나!’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오르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옆의 禹敎授(우교수)도 내 소란 통에 곤한 잠에서 깨어나 지네소탕작전에 앞장서 주었다. 결국 빗자루를 들고 약 60분 동안의 격투(?) 끝에 지네를 소탕하긴 하였으나 밤새도록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지네를 퇴치하고 나니 그제야 내 옆구리의 아픔을 느낀 나는 원시적인 치료제인 침도 바르고 현대적인 마이신 연고도 발랐었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관계가 없어 오늘날 이런 回想記(회상기)를 쓰고 있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며 소름이 끼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전의 일인지 꽤 오래전의 일이다. 五臺山(오대산)을 찾았을 때의 망신談(담)이다. 上院寺(상원사)와 寂滅寶宮(적멸보궁)을 다녀 月精寺(월정사)로 내려오는 길에 문득 생리적인 배설을 위해 개울 가 숲 근처에 앉았는데, 문득 앞을 보니 2m 전방 나뭇가지에 毒蛇(독사)한마리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앞이 아찔해지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배설은 고사하고 온 몸이 떨린다. 아마 평소에 뱀을 무서워하고 싫어하지 않았던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나는바가 있어 얼굴은 상기된 채 눈을 똑바로 떠서 뱀을 노려보았다. 맹수를 만났을 때 눈싸움에 이겨야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지를 치켜 입지도 못하고 앉은 채 슬슬 뒤로 후퇴를 하였다. 네다섯 발자국 후퇴를 하면서 뱀이 쫓아  오는 기색이 없음을 느낀 나는 후다닥 일어서면서 바지를 치켜 입고, 동시에 달음박질을 쳐서 큰길가로 나왔다.
  일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다음날 듣자하니, 바로 그때 개울 건너 밭에서 김을 메던 한촌색시가 문득 나의 볼장 사나운 꼴을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배꼽이 빠질 뻔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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