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경영84졸) 동문
어느날인가 기회는 정말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래서 느닷없이 편집국장이 돼 버렸다. 경인일보에 입사한지 21년, 기자를 시작한지 26년만이다. 기자로 살면서 편집국장을 꿈꾸지 않은건 아니지만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회사의 편집국장 선출방식은 독특하다. 회사에서 후보를 지명하면 기자들의 찬반투표를 거친다. 과반수를 넘으면 통과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탈락이다. 국장이 돼도 가시밭길은 남아있다. 2년 임기 중 첫 해가 지나면 신임투표를 한다. 거기서 과반이상의 득표를 못하면 군말없이 물러나야 한다.

두사람의 전임자들이 그 덫에 걸려 퇴장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됐다. 그게 지난 2월 1일쯤이다. 일주일의 선거운동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내가 후배들에게 한 얘기는 하나. 강한 편집국 강한 신문을 만들겠다. 나를 선택하면 여러분은 그때부터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죽도록 일 시키고 억척스럽게 부려먹을거다. 그게 싫으면 나를 선택하지 마라. 그 대신 책임은 내가 진다.

그 메세지를 후배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난 모른다. 다만 95%가 넘는 투표율에 82%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편집국장에 대한 투표가 시작된 후 최고기록이라고 후배들이 귀띰해줬다. 국장은 됐지만 마음은 착잡했다. 이미 두 번의 진통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돼버린 편집국을 어떻게 정상화시켜야 할지 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자를 하면서, 그것도 기자직종에선 3D업종으로 불리는 사회부 사건기자로 생활의 절반이상을 보내면서 깨달은게 있다. 피할 수 없을 땐 부딪히는게 최선이다. 그래야 특종을 하든 낙종을 하든 결론이 난다. 깨달음대로 부딪쳐 갔다. 다행히 편집국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웃기는 건 일을 갖고 마구 쪼아대는데도 후배들은 그게 좋단다.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 마음이다.

취임 후 모자라는 인력을 보충하기위해 경력기자 채용 공고를 냈다. 동국대 출신 3명이 지원했다. 반가웠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뽑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력을 살피고 필기시험을 치르면서 기대는 희미해지고 있다. 능력이 비슷하면 뽑을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방법이 없다. 후배도 중요하지만 국장인 내겐 편집국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게 후배들의 불만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나 역시 사회초년병일때 그런 불만을 가졌다. 돌이켜 보면 선배들이 후배를 안 챙겨서가 아니라 내가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반문하게 된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인정받고 싶다면 실력을 보여줘라. 입사의 험난한 과정을 뚫어도 실력이 없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 인정받으면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챙겨준다. 비포장 도로가 포장도로로 바뀌게 된다고나 할까. 지치지 않는 끈기와 굽히지 않는 도전 정신, 그게 동국의 전통이라고 나는 믿는다. 챙겨줄 후배가 많아 정말 피곤한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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