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철재 서가 사이로 책들을 훑으며 배회하다보면 같은 제목을 한 복본들이 적게는 둘 셋, 많게는 열 몇 권씩 무리지어 있는 걸 보게 된다. 그 비좁은 사이에 저 혼자 외톨이 모양으로 박혀있는 책들이 눈에 띈다. 재미없어서일까...? 이용자들의 관심보다 먼지 받아내는 게 제 역할일 성 싶은 불쌍한 신세들이다. 먼지를 떨어내고 이용자들 품에서 사랑받았으면 싶은 책들이 여럿이다. 그 중 하나를 열어본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비스코비츠란 이름의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우화 여러 편의 모음이다. 20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기 다른 종의 동물이 주인공으로 출현하지만 그 모든 주인공 이름은 비스코비츠다. 리우바, 주코틱, 페트로빅 등 등장동물들 또한 비스코비츠를 좇아 매 에피소드에서 동일한 종족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들 주변존재들에게는 친구이거나 가족구성원 내지 주변의 관망자 역할이 고루 주어진다.

저자인 알렉산드로 보파는 인간에 대한 시선을, 비스코비츠란 서로 다른 동물을 통해 그럴듯하게 담아내어 다소 기괴한 우화 여러 편을 만들어내고 있다.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비스코비츠에겐 철저하게 동물로서 갖는 과학적인 본능과 습성을 부여하는 한편, 인간만이 가질법한 다양한 욕망을 결합해 삶의 다양한 면모에서 이어지는 철학적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교미의 대가로 암사마귀의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하고야 마는 수사마귀의 비극을 들었을테다. 사마귀 비스코비츠는 아빠의 양분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자신의 탄생비화를 떠올리면서도 수컷인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주어질 죽음의 숙명에 묵묵히 몸을 맡기기로 하는데, 아빠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암컷 리우바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한편, 수족과 머리를 갉아 먹히면서도 그녀의 차가운 숨결에 전율하기까지 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음을 선(善)이라 믿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미화하기도 하고 바삭바삭 짭짤했다는 엄마 사마귀의 미각을 빌어 우스꽝스럽게 비웃어 보이기도 하는데... 이렇듯 흔히 보아 넘겼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동물들만의 생태 낱낱에서 발견되는 인간 군상들의 희화화된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라는 작가의 단언이란 게 비스코비츠 이하 등장동물 일동은 ‘인간의 빗댄 모습일 뿐이야!’라는 표현의 반어일 뿐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된다.
인간 또한 동물이기에 그 둘의 분리가 어색스러울 수도 있다. 그 둘이 동일하게 갖고 있을 짐승스러움에 비춰 보자면, 인간들만의 자존이나 자만을 위해 사용되는 억지스러운 구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흔히, 본능이라 폄하해 마지않는 동물들의 짐승스러움에 내제된 잔혹함과 폭력, 사랑의 헌신 등이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보지 못했던 걸 들여다보고, 잔잔한 열거의 가운데 인간의 삶을 놓치지 않는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보파의 독특한 시선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 감탄 하나만으로도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먼지를 떨어낼만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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