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史的(사회사적) 藝術硏究(예술연구) 탁월
硏究對象(연구대상)으로 映畵(영화)에 沒頭(몰두)하기도
독일의 旣成觀念(기성관념)타파를 試圖(시도)

  1982年(년) 헝가리출생
  社會學的(사회학적)인 藝術史(예술사)정리
  ‘예술과 文學(문학)의 社會史(사회사)’란 원래의 제목은 Sozalgeschichte der Kunst und Lieratur로서 1,2두 권으로 1953년 독일 Munchen에서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은 처음 후랑크후르트 大學(대학)교수이며 社會學者(사회학자)인 Karl Mannhein의 편집에 의한 ‘사회학 및 사회적 再建(재건)을 위한 國際文庫(국제문고)’ The International Library of Sociology and Social Reconstruction의 한 책자로써 쓰인 것이다.
  著者(저자) 아놀드․하우저(Arnold Hauser)는 1892년 헝가리에서 出生(출생)한 藝術社會學者(예술사회학자)로서 60年代(년대)초반까지도 美國(미국) 마사추세츠의 쁘란다이스大學(대학)에 客員敎授(객원교수)로 와있던 이 方面(방면)의 權威者(권위자)이며 처음에는 美術的(미술적) 입장에서 나중에는 社會學的(사회학적) 입장으로 그 방향을 달리한 美術史家(미술사가)이기도 하다.
  그의 ‘藝術(예술)과 文學(문학)의 社會史(사회사)’는 단순한 한 時代(시대)의 文學(문학)과 藝術(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先史時代(선사시대)로부터 現代(현대)에 이르기까지 廣範(광범)하게, 그러면서도 오늘날 이때까지도 理論(이론)만으로서 주장되어 온 “藝術(예술)은 社會(사회)의 構造(구조)와 變動(변동)여하에 따라 制約(제약)을 받게 된다”라는 名題(명제)를 가장 具體的(구체적)으로 藝術史上(예술사상)의 豊富(풍부)한 資料(자료)들을 驅使(구사)해가며 立證(입증)해가고 있는 점은 실로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著者(저자)는 주로 독일 낭만주의에 의하여 형성된 藝術觀(예술관) 내지는 藝術至上主義者(예술지상주의자)들의 諸旣成觀念(제기성관념)을 타파하고자한 점등은 本著(본저)의 특색이자 따라서 본 저자의 교훈이요, 예술관임을 알 수 있다.
  우선 그의 풍부한 자료에 입각한 本著(본저)의 방대함과 그의 藝術史觀(예술사관)은 이 책의 目次(목차)만으로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本稿(본고)의 請託意圖(청탁의도)에 따라 간단히 그 目次(목차)와 아울러 저자의 구심점을 찾고 筆者(필자)나름의 鄙見(비견)을 添言(첨언)하고자 한다.
  時代別(시대별)로 多樣(다양)한 資料(자료)로
  社會(사회)․政治(정치)와의 관계 著述(저술)
  1, 先史時代(선사시대)
  ‘舊石器時代(구석기시대) 魔法(마법)과 自然主義(자연주의)’에서는 Gottfried Semper의 기계적 唯物主義史觀(유물주의사관)과 (Semper은 예술이란 手工業(수공업)의 副産物(부산물)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예술은 재료의 성질, 가공 및 제품의 사용목적으로부터 必然的(필연적)으로 생산되는 裝飾的形式(장식적형식)의 總和(총화)라고 말하고 있다.) Alois Riegl의 自然模倣說(자연모방설)을 引用(인용)해가면서 先史時代(선사시대)의 自然主義(자연주의), 生活(생활) 方便(방편)으로서의 예술, 그리고 ‘藝術(예술)과 魔法(마법)’에서는 舊石器時代(구석기시대)의 예술을 呪術(주술)의 수단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H.Obermaier, M.C.Burkitt등의 주장을 例(예)로써 설명하고 있다.
  別項(별항)‘新石器時代(신석기시대) 에니미즘과 幾何學樣式(기하학양식)’에서는 先史時代(선사시대)의 기하학양식과 生活形態(생활형태)의 변화, 魔法(마법)과 에니미즘, 樣式化(양식화)와 合理化(합리화), 農耕文化(농경문화)에 나타난 保守主義(보수주의), 藝術社會學(예술사회학)의 애매성을 지적하고, 예술과의 관계에 있어서 呪術的(주술적) 世界觀(세계관)과 에니미즘的(적) 世界觀(세계관)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魔法(마법)과 聖職者(성직자)로서의 藝術家(예술가), 職業(직업) 및 家內作業(가내작업)으로서의 예술’이란 항목에 가서는 先史時代(선사시대)의 藝術生産活動(예술생산활동), 藝術活動(예술활동)의 分化(분화), 그리고 최초의 農民藝術(농민예술)과 民衆藝術(민중예술)의 分化過程(분화과정)을 社會學的(사회학적) 측면에서 파헤치고 있다.
  2, 古代(고대) 오리엔트의 都市文化(도시문화)
  여기서는 주로 一般藝術(일반예술)의 소재가 되고 있는 古代(고대) 오리엔트 藝術(예술)에 있어서의 動(동)과 靜(정), 都市文化(도시문화)와 都市藝術(도시예술), 政治的强制(정치적강제)와 藝術的價値(예술적가치), 그리고 에집트에 있어서의 藝術家(예술가)의 지위와 藝術活動(예술활동)의 組織化(조직화), 藝術上(예술상)의 二元性(이원성), 에집트의 地方藝術(지방예술),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藝術(예술)의 樣式上(양식상)의 특징과 그 差異點(차이점)등을 파헤쳐 나가고 있다.
  3, 古代(고대) 그리스․로마
  그 중 중요한 대목만을 추려보면, 宗敎共同體(종교공동체) 예술의 단계, 英雄時代(영웅시대)와 그 社會倫理(사회윤리),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타난 당시 社會觀(사회관), 아르가이즘과 僣主制下(참주제하)의 宮廷藝術(궁정예술), 고전주의와 민주제, 그리스의 啓蒙思潮(계몽사조), 헤레니즘의 社會的(사회적) 平均化(평균화), 帝政時代(제정시대)와 古代(고대)그리스․로마의 王朝(왕조), 古代(고대)그리스․로마의 시인과 造形藝術家(조형예술가) 등이다.
  4, 中世(중세)
  中世(중세)에 들어와서는 初期(초기) 그리스도敎(교)예술의 정신주의적 경향, 비잔티인政敎合一主義下(정교합일주의하)에 있어서의 예술양식, 僧侶(승려)계급 勢力(세력)에 대한 鬪爭(투쟁), 宮廷樣式(궁정양식)과 民衆樣式(민중양식), 英雄歌謠(영웅가요)의 작자와 청중, 封建制度(봉건제도)와 로마네스크樣式(양식) 등, 그 간의 文學(문학)과 統制(통제), 미모스, 繪畵(회화), 조각, 건축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방면의 많은 자료를 갖고 그 시대 시대의 社會性(사회성) 내지는 政治的(정치적)인 실제과면 결부시켜 설명해 가고 있다.
  이 항목에서 뿐만 아니라 本著(본저)의 항목은 실로 자세하여 이것만으로 써도 그 내용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기에 그 요점만을 추린 것에 불과하다.
  古代(고대)로부터의 ‘유럽’ 예술
  社會學的(사회학적)으로 分析(분석) 說明(설명)
  인간이 현실을 창조하고 현실이 또한 인간을 창조해가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마음의 활동이 문화를 창조하며 문화 또한 인간의 마음의 활동을 규정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그리고 이 양자 사이에는 이미 태고로부터 창조적 순환관계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兩者(양자)중 어느 한편이 역사적 세계를 움직이는 窓極(창극)의 요인이 된다고 믿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人間(인간)과 現實(현실)은 밀착되어 있으며, 이것이 또한 人類社會史(인류사회사)의 한 反映(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다시 예술에 관한 現論的(현론적)인 考察面(고찰면)에서 생각해 볼 때, 藝術(예술)은 먼저 心理學的(심리학적), 그리고 社會學的(사회학적)인 面(면)의 파악이 동시에 要請(요청)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도 本著者(본저자)인 Arnold Hauser의 成長期(성장기)로 부터의 思想體系(사상체계)는 二元性(이원성)을 동시에 갖춘 社會學者(사회학자)로서 損色(손색)이 없다.
  모든 文化歷史(문화역사) 및 그 生産(생산)에 관한 연구는 자연 Psychologismus과 Soziologismus과의 그 어느 한편에 치우치기 마련이며, 또한 그 어느 한편에 더한 비중을 두느냐는 것은 오로지 硏究家(연구가)의 자유의사에 속하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예술과 문학의 社會史(사회사)’는 이미 그 題名(제명)이 말해주고 있는 것과 같이 그는 여기에서 인류문명의 黎明期(여명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예술, 주로 유럽藝術(예술)의 역사를 Soziologismus的(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또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心理學主義的(심리학주의적)인 견해가 전혀 배제된 것도 아니어서, 그 중간 중간에 볼 수 있는 그의 탁월한 심리학적 견해는 社會學的(사회학적)인 그의 해석의 미비성을 보완 설명하는 경우도 허다히 볼 수 있다.
  그러면 다시 本著(본저)의 항목으로 옮겨가 이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5, 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
  여기서는 첫째 그 당시 아직도 확립되어 있지 못한 르네상스라는 복잡한 時代槪念(시대개념)과 宮廷藝術(궁정예술)의 鑑賞者層(감상자층)의 社會的(사회적) 역할, 둘째 매너리즘의 발견, 종교개혁과 예술, 세익스피어의 政治的世界觀(정치적세계관), 그리고 바로크의 諸形態(제형태)를 實證的(실증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藝術(예술)의 社會的要因(사회적요인) 찾아
  20世紀(세기) 영화연구에 몰두
  6, 古典主義(고전주의)와 浪漫主義(낭만주의)
  宮廷的(궁정적) 藝術(예술)의 붕괴, 새로운 讀者層市民劇(독자층시민극)의 성립, 독일의 啓蒙主義(계몽주의), 혁명과 藝術(예술), 독일을 중심으로 한 西歐(서구)의 浪漫主義(낭만주의)와 같은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나, 文學(문학)에 있어서의 연애모티브의 승리라든지 자유의 이데올로기, 계급투쟁에 봉사하는 演劇(연극), 그 주인공의 社會的(사회적) 성격, 드라마의 心理學化(심리학화), 음악에 있어서의 로맨티시즘 등과 같은 細目(세목)은 그 실제적인 社會史的(사회사적) 풍부한 자료와 함께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과제 및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7, 自然主義(자연주의)와 印象主義(인상주의)
  이 項目(항목)에서는 七月革命(칠월혁명)의 世代(세대) 중, 小說(소설)의 새로운 主人公(주인공), 저널리즘과 文學(문학),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에 관한 批判(비판), 그리고 당시 社會小說(사회소설) 등을 例(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으며, 第二帝政(제이제정)에 이르러서는 自然主義(자연주의)의 勝利(승리)와 후로벨의 市民性(시민성), 오페렛타와 演劇(연극) 觀客層(관객층)을 분석하고 있으며, 英國(영국) 및 러시아의 社會小說(사회소설)에서는 市民階級(시민계급)과 인텔리層(층)의 갈등, 自己疎外(자기소외)의 心理學(심리학), 도스토예프스키의 心理學(심리학)과 社會哲學(사회철학), 톨스토이의 政治的(정치적) 世界觀(세계관) 등 실로 多方面(다방면)에 걸쳐 作品(작품)들을 例示(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19世紀(세기) 美的文化(미적문화)의 危機(위기)를 넘어 印象主義(인상주의) 時代(시대)에 와서는 繪畵(회화)의 優位性(우위성)을 지적하고, 藝術家(예술가) 氣質(기질)과 市民精神(시민정신), 그리고 象徵主義(상징주의), 世代(세대)교체에 있어서의 暴露心理學(폭로심리학)을 광범하게 다루고 있다.
  8, 映畵時代(영화시대)
  著者(저자)는 20세기 그의 社會學的(사회학적) 연구대상으로서 영화예술에 沒頭(몰두)하게 되며, 이것이 곧 그의 社會史(사회사)의 방향을 規定(규정)짖는 자료로 인식해 갔다.
  이로써 일찍이 미술사에서 다시 영화연구로 방향을 달리해간 사실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의도하였던 것은 美術史(미술사)에서보다 영화연구를 통해 모든 예술의 사회적 요인을 찾으려 했던데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도 저자는 자본주의 위기와 근대예술의 西洋球(서양구) 다다이즘과 쉬르리얼리즘 心理小說(심리소설)의 위기를 논하고 끝으로 영화예술에 관한 폭넓은 그의 세계관 및 소비에트 러시아에 있어서의 영화유물론과 선전수단으로서의 영화론의 배경 그리고 이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아메리카 영화의 美學(미학), 내지는 그 사회적 배경을 同時(동시)에 說(설)하면서 경제적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그 나름의 一家見(일가견)을 보임으로써 대단원 짓고 있다.
  文學(문학)-美術(미술)-哲學硏究(철학연구)
  ‘藝術史(예술사)의 哲學(철학)’도 著迷(저미)
  어쨌든 西歐社會(서구사회) 전반에 걸쳐 一目瞭然(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그의 文學(문학) 및 藝術史觀(예술사관)은 폭넓게 西歐人(서구인)의 思想體系(사상체계)를 통해서 鮮明(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다.
  著者(저자)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잠시 지적된바 있으나 그의 이와 같은 力著(역저)가 나오기까지 그는 헝가리태생으로서 그곳 ‘부다페스트’와 ‘프랑스’의 ‘파이’ 독일의 ‘베를린’ 등 각 대학에서 哲學(철학), 美術史(미술사), 文學史(문학사) 연구에 전념하면서 이곳에서 처음 ‘게오르그․짐멜’와 ‘벨그송’美術史家(미술사가)인 ‘막스․도보르샤크’, ‘뷔르후린’그리고 文學史家(문학사가)인 ‘쿠스타트․란손’등의 깊은 感化(감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伊太利(이태리)와 독일에서 美術史(미술사)연구에 몰두하게 되나 이때부터 그는 美術(미술)을 社會學的(사회학적) 측면에서 다루어갔다. 그리고 經濟史家(경제사가) 막스․베버의 著作(저작)에 한 때나마 傾倒(경도)하게 된 것도 이 때었다고 하며, 그러나 그는 곧 빈으로 돌아가 映畵(영화)의 기술 및 그 理論(이론)에 다시 몰두하게 되었고 美術史(미술사)를 움직이고 있는 사회학적 요인이 映畵(영화)의 연구를 통해서 可能(가능)하다는 새로운 見解(견해)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런던으로 건너가 著作(저작)에 전념하면서 여기서 얻은 成果(성과)가 바로 ‘藝術(예술)과 文學(문학)의 社會史(사회사)’(1953)였던 것이며, 이와 雙眉(쌍미)를 이루는 이 방면의 姉妹書(자매서) ‘藝術史(예술사)의 哲學(철학)’(1958)은 그로부터 5년 뒤에 독일에서 출판된 것으로서 이 또한 전자의 결함을 補完(보완)하고 더욱 이 방면의 연구를 심화시켜가고 있는 力著(역저)인 것이다.
  현재 ‘藝術(예술)과 文學(문학)의 社會史(사회사)’는 英國(영국)․美國(미국)․독일․프랑스․伊太利(이태리)․스페인 그리고 日本(일본)과 韓國語(한국어)로도 널리 飜譯紹介(번역소개)되고 있으며, 古代(고대)에서 現代(현대)에 이르기까지 文學(문학) 및 藝術(예술)의 思潮(사조)를 중심으로 그 背景(배경)과 社會史的(사회사적) 연구서로서는 지금까지(한 시대 한 나라에 局限(국한)된 것을 除外(제외)하고는)唯一無二(유일무이)한 業績(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編輯者註(편집자주)=최근 創作(창작)과 批評社(비평사)에서 ‘文學(문학)과 藝術(예술)의 社會史(사회사)’(白樂晴譯(백악청역))가 創批新書(창비신서)①⑫권으로 出版(출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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