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주체의 실천적 역사학 확립 요구
생동감 있는 구사, 철저한 사료고증으로 체계의 완결성 갖춰


  ‘조선전사’ 1차분 다섯권이 출판되었다. 이 같은 일은 몇 해 전이었다면 전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사실 이것은 지난해 거세차게 일어났던 조국통일촉진투쟁의 구체적 성과의 일부분이다. 최근 들어 일일이 기억해내기에도 힘들 정도로 다종다기하게 쏟아져 나오는 북한 원전들 가운데서 ‘조선전사’(이하 ‘전사’라 함)로 다른 그것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것은 ‘전사’가 출판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조건과 관련해서이다. 물론 ‘전사’의 출판이 전적으로 지난해의 조통촉진투쟁의 성과에서 기인함은 사실이지만, 남한 역사학계 내부에서 실천적인 역사학에 대한 요구가 점증하고 있었던 사실과 분리되어 설명되어지지는 않는다. 대중으로부터 버려지고 밀실에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뒹굴고 있던 관변사학을 매장하고, 민중주체의 역사학 현실 속에 살아 꿈틀대는 실천적 역사학을 확립하기 위한 진지한 모색이 학술운동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에 북한 역사학의 성과를 대중에게 검증받아내고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비등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작업은 위대한 대중투쟁 성과에 힘입은 바 ‘북한바로알기운동’ 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 혼입되어 독자 대중에게 가시화되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역사학이 차지하는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역사학은 항상 해당시기의 정치적 과제와 긴밀히 결합되어 대중교양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다. 더욱이 정치주권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북한에 있어서 역사학의 체계를 바로세우고 그것을 곧 대중을 추동하는 무기로 만들어야 했던 일은 긴급한 과제였었다.
  북한이 국가적으로 역사편찬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때는 1948년부터인데 첫 번째 성과로 ‘조선민족해방투쟁사’가 간행된 것이 그 이듬해였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 역사학은 50년대 말 전 사회의 사회주의화라는 중요한 변화를 경험하고 60년대 말에 이르러 주체사관에 의해 역사 記述(기술)을 하게 되는데 그간 꾸준히 축적해 온 역량의 구체적 결과물이 바로 이 ‘전사’이다. 총 33권에 달하는 방대한 체계로 인해 간행작업에만 꼬박 3년 (1979~1982)이 소요된 ‘전사’편찬사업은 북한의 한국사연구의 총결산이 된다.
  ‘전사’ 33권의 체계에서 북한이 압도적으로 비중을 두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현대사부분이다. 나라를 되찾기까지와 그리고 그 이후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무수히 뿌려야만 했던 피와 땀을 생각할 때 그들이 그렇게 현대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도서출판 푸른숲이 재편집, 소개한 ‘전사’ 1차분 다섯권은 원전의 권 11(리조사4)에서 권 15(근대편3)까지에 해당되는 분량이며 해당 시기는 이조 후기인 18세기로부터 초기공산주의 운동의 발생기인 1920년대 전반기까지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에서 민감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현대사부분을 논외로 놓느다면 ‘전사’ 1차분 다섯 권에 망라되어 소개되는 시기는 사실상 ‘전사’ 전체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인정된다. 그것은 특히 남한의 학계에서 아직도 논란중인 부분, 즉 조선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및 발전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서인데 이러한 문제들을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 무수한 토론과 논쟁 끝에 정리하였으며 하나의 공식적 입장으로 굳혀 내세우고 있다.
  ‘전사’에서도 주장하고 있듯이 조선에서도 내재적으로 자본주의적 관계가 생성ㆍ발전하였으나 서구의 고전적 자본주의화 과정과는 엄연히 다르며 그 수준도 지극히 미약하였다는 주장이 현재 북한이 정설로 고수하고 있는 그것이다.
  ‘조선통사’ ‘근대조선역사’ 등 비교적 많은 종의 북한 역사원전들이 소개되었으나 실제로 ‘전사’의 체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원전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북한에서조차도 역사학의 시원지이며 귀결지로 여겨질 만큼 ‘전사’ 33권이 지니는 의의는 지대하기 때문이다.
  체계의 방대함과 수미일관성, 역사記述(기술)에 있어서의 적일성, 시기시기마다의 사건들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필력의 구사, 사료고증에 대한 철저함 등으로 하여 거의 완벽한 자기완결의 체계를 갖춘 ‘전사’의 우수함은 이런 것들에서 드러난다.
  무릇 역사記述(기술) 이 역사를 일구고 만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의 학술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사학이 이미 대중과 친숙한 학문으로 주변에 존재해왔지만 그것은 전도된 가치의식에 기인하는 역사학이었으며, 지배자들의 역사학이었다.
  역사의 대중화는 이렇듯 전도된 가치의식을 근저에서 뒤덮으면서 자기 역사와 사회에 대해 철저히 잘 알아야 하겠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전사’는 북한의 입장, 즉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기술되어진 민족사의 총체적 복원이다. 북한에서는 역사의 대중화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민중의 생활력에 의해 규제되고 발현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말한다. 가령 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자기나라를 되찾게 되기까지 자기들이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싸워왔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새나라 건설이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전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에게 가장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고 있다. 현재의 척박한 우리의 학술운동, 더 좁게는 역사학이 대중으로부터 살아나고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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