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작여시관’…문패삼아 총장역임시 ‘동대’ 면모 다듬고 목장속에서 불법닦아

 

  ○…올해로 개교 64주년을 맞는 본교를 아는 이는, 대개 본교 전신인 中央學林(중앙학림) 졸업생이며 제2대 총장을 지낸 白性郁(백성욱)박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본교에 이룩해 놓은 업적이 그만큼 큰 것이기에 지금도 쉽사리 망각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떠나 계신 白(백)박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교기념일을 며칠 앞 둔 지난 3일, 경기도 소사읍 소사리에 있는 그의 목장을 방문하였다.
 

   ○…소사역에서 약 2km가량 걸어 목장과 과수원으로 유명한 소사리 동구에 다다라 한 村老(촌로)에게 ‘白性牧場(백성목장)’을 물었더니 “白(백)장관 댁이요?”하면서 길을 가르쳐준다.
  왕년의 굵직하고 화려했던 그의 경력이 아직도 그를 ‘장관’으로 통하게 한다.
  한 켠에 ‘白性牧場(백성목장)’이라고 쓰인 간판을 바라보면서 야산 어구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기와집 대문 앞에 이르니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라고 쓰인 金剛經(금강경)의 한 구절이 문패 대신 맞아준다. 이 대목은 白(백)박사 자신이 “金剛經(금강경)의 골수며 최후”라고 말하는 ‘一切有僞法(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라는 四句偈(사구게)의 마지막 구절-.
  문안에 들어서서 일보는 이에게 白(백)박사의 면담을 청했다. 이내 잠바에 간편한 한복 바지 차림의 白(백)박사가 모든 分別(분별)을 여인 듯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나오시더니 “또 학교얘기 시키려고 왔니? 괜히들 그러는 거지 난 이제 빼버려도 좋을 사람이야”하고 말문을 막아버리신다. 그래도 자리를 권하고 나서 일제 당시의 학교얘기며, 총장 재직 시의 회고담을 기억을 더듬어 가며 들려줄 때의 白(백)박사는 아무래도 옛 추억에 잠기는 듯 이따금 먼 산을 바라보곤 한다.
 

  ○…자유당 시절에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그가 정계를 물러나와 본교 제2대 총장으로 취임한 것은 본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지 다섯 달 후인 1953년 7월-. 그때인만해도 본교는 종합대학으로서의 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白(백)박사는 우선 校舍(교사)부터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터도 말썽이 많았고, 게다가 엉뚱한 비난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 할 일 나하면 그만 아니냐”는 신념으로 숱한 ‘에피소드’를 남기면서 白(백)박사는 공사를 진행시켰다. 이렇게 해서 白(백)박사가 65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는 석조관ㆍ과학관ㆍ본부 건물이 준공을 보았고, 도서관 건물도 완공을 며칠 앞두기에 이르렀다.
  “동대가 더 발전하려면 醫大(의대)가 있어야 한다. 農大(농대)도 따로 내보내야 하고”-. 재직 시의 구상으로 그쳐버린 일단을 못내 아쉬운 듯 펼치신다.
 

  ○…白(백)박사가 야산 3만여 정보에 밀 등 가축사료를 재배하며 젖소 10두를 치고 있는 이곳 ‘白性牧場(백성목장)’으로 번잡한 세상을 피해 오기는 지금 꼭 8년째.
  “바쁘다면 몹시 바쁘고 한가하다면 너무 한가하다”는 그의 여생을 “공부하기 위해” 이곳으로 물러나온 것이라 했다. 저녁 9시에 자리에 들면 새벽 2시에 기상하여 하루 종일 金剛經(금강경)을 독송하고 念(염)하는 일이 생활의 전부란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 오후는 不食(불식)이다.
  독신으로 70수년을 살아온 노인답지 않게 기력은 여전히 정정- 비결을 물었더니 “그런 거 없다. 그저 金剛經(금강경) 法力(법력)때문이다”라고. 그래도 “경향각지에서 찾아오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다 접하시고 낮엔 풀도 베고 잡일을 거드신다”고 목장 일을 보고 있는 젊은이가 귀띔해 준다.
  “곳곳이 다 法堂(법당)이고 行住坐臥(행주좌와)가 모두 수행”이라는 白(백)박사에게 끝으로 젊은 학도들에게 주실 말씀을 물어보았다.
  “나 그런 거 모른다. 너희들 지금 한문 문화와 한글 문화가 서로 엇갈리는 과도기에서 고생들 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세계에서 이탈하는 것도, 남의 세계를 넘겨보는 것도 원치 않는 듯 웬만한 질문엔 거의 대답을 회피하신다.
  1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약 40분 정도는 금강경과 수도얘기만 하시는 白(백)박사-.
  초야에 은둔한 채 지금 無心(무심)의 行(행)으로 어떤 여생을 닦고 있는지 정확히는 짐작하기 어려울 뿐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