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상(법과대학) 교수
박근혜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발표되면서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발맞추어 법조인출신이 총리나 장관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법조인 출신이 정부 고위직 인사로 거론 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과다수임료나 고액연봉에 관한 논란은 평범한 서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법원이나 검찰의 고위직에서 퇴임하고 로펌에 가면 통상 월 1억은 받는다는데, 왜 그들에게 고액연봉을 제공할까? 법정에서 소송대리인으로 열심히 변론을 한 대가일까? 아니면 사건관련 검은 로비의 반대급부일까?

최근 사회통합이나 국민소통에 대한 담론이 인기(?)있는 아젠더이다.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OECD 34개국 중 꼴찌 그룹에 속한다.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으로 인한 치유비용이 GDP의 27%인 300조원이라고 하는데, 전관예우로 인한 고액연봉논란이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사회갈등의 한 원인으로 작동될까봐 걱정스럽다. 결국은 전관예우에 따른 높은 수임료는 국민부담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는데, 이 문제를 방치한채 사회통합을 외치면 통할지 미지수다.

전관예우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사법부 불신의 빌미가 되고,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잘못된 재판문화를 만들게 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재판불신의 비아냥(?)이 시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오죽했으면 작년에 극장가를 휩쓴 영화 ‘부러진 화살’을 관람한 관객들이 허구인 영화의 내용을 사실로 믿어 버릴만큼 사법부와 법조에 대한 국민불신이 극에 달하였을까?

전관예우는 사법정의의 차원에서도, 사법부 독립을 위해서도, 재판의 독립, 공정과 신뢰를 위해서도, 특히 사회통합을 위한 차원에서도 근절되어야 할 법률시장의 독버섯이다.
법원이나 검찰고위직을 역임하고도 대형로펌의 고액연봉 유혹을 뿌리치고, 국가기관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거나,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법률서비스 사각지대인 시골의 시군법원에서 직간접적으로 민초들의 권익을 챙겨주는 아름다운 재능기부(?)를 하는 원로법조인들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모든 인간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시민이 당연히 적재적소에서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법치국가이다. 이게 안되니 법치대신 인치가, 적법절차 대신 떼법이 설치게 되는 것이다. 법은 참으로 시민생활의 도우미이고 보듬이이며, 지킴이이다. 법은 인간생활에서 물이고 공기이고 햇빛이어야 한다. 법이 가진 자만을 보호하는 특권층의 지킴이이어서는 안된다. 전관예우로 재판에서 정의가 뒤집혀서도 안되고, 전관예우를 받은 자가 국정의 고위직에 취임해서도 안된다.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을 통해 ‘전관예우’도 없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없는 반듯한 법치선진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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