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개념’을 읽고

  교양학부생의 ‘독서콩쿠르’대회가 지난 2일 중강당에서 열려 19명의 발표자가 독후감을 발표하였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독후감 중 입상작 내용의 요지이다. 이날 심사위원은 金聖培(김성배) 章湖(장호) 金起東(김기동) 교수였다. <편집자>

  本書(본서)는(유신론―기독교) 실존주의의 창시자인 키엘케골에 의한 것으로 대체적으로 원죄의 전제로서의 불안과 원죄의 결과로서의 불안으로 대별하고 하느님 앞의 구원의 門(문)이라고 첨가, 먼저 전제로서의 불안에서는 Augustinus학파 등이 인류의 시조인 Adam이 인류와 숙명적 관계로 원죄 개념에 참여시키는데 반발하고 역사는 量的(양적) 規定(규정)에서 뿐이고 개체는 항상 맨 처음부터라고 하여 Adam은 자신이자 인류가 되게 함으로써 인류를 원죄개념에 공동 참여시킨다. Adam이 하느님으로부터 ‘善惡果(선악과)를 따먹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禁令(금령)을 받았을 때 Adam은 善惡區別(선악구별)이 불가한 無知(무지)의 상태로 정신작용하지 않고 자연성과 직접적인 통일에 있어서 靈的(영적)으로 규정된 순결 자체이었다. 그러나 禁令(금령) 속에서 가능성을 예상하고 죽음이라는 그 어떠한 것이 위협적으로 접근, 善惡果(선악과) 채취에 선택의 자유가 마치 어지럼병과 같이 無(무)인 어떤 대상에 떨고 있는 마음이 끌려있는―반감적 공감―상황 속에 휘말린 것이 바로 不安(불안)이라고 명명, 또 인간은 극단의 神的(신적)인 靈(령)과 동물적인 肉(육)이 精神(정신)(본인은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이라고 생각된다)이라는 제3자에 의하여 지배 종합된다고 전제하고 순결의 상태란 이 精神(정신)이 꿈꾸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는 不安(불안)이 개체를 약하게 하고, 精神(정신)을 일깨움으로서 불안 가운데서 유한성에 근거를 구해 善惡果(선악과)를 따먹는 질적 비약으로 원죄를 성립한다. 아담과 이브는 수치심을 느끼는 원죄의 결과로서 또 다른 불안이 생긴다. 이 가운데 罪性(죄성)과 함께 성욕이 자리 잡게 되어 여기서부터 인류의 역사가 전개된다. 수치심에 있어 성적 충동이 일어났을 때 정지적인 상태를 순수사랑 혹은 性愛(성애)라 하고 이때 精神(정신)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의식하여 精神(정신)이 승리를 거두고 불안은 추방된다. 인류의 역사가 量的(양적)증가인 바와 같이 불안도 역사성이 나타나 자연에 있어서의 객관적 불안과 개체에 있어서 주관적 불안이 발생 전자는 정통파에 의하는 것으로 피조물 전체에 주어지는 것이며 후자는 세대적 관계의 결과와 역사적 관계의 결과로 양분되어 세대적 관계에서의 결과를 Eve를 통한 상징적 묘사를 하는데, Eve가 Adam의 갈비뼈로 파생됨으로 性(성)의 구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量的(양적) 區別(구별)로, 本質(본질)은 동일하나, 파생적이란 것은 근원적인 것보다 불완전하다고 주장, 여성이 남성보다 반성적ㆍ감성적이라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불안하다는 결론까지 추출하며, 비약적으로는 性欲(성욕)도 더 강하다는 추리를 낳는다. 그러나, 性欲(성욕) 자체는 죄가 아님을 천명함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덜 精神的(정신적)으로 규정된 存在(존재)로 남성에게 복종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는 내용과 합일된다.

  역사적 관계의 결과에서는 죄와 불안의 연속성을 설명하고 우리가 불안을 느끼지 못함은 불안이 비현실적이고 대기태세에 들어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 불안하다는 것은 인간이 精神的(정신적)으로 규정된 존재로서 보다 위대한 인간이라는, 역설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주장으로 풀이한다.
  끝에서 그는 불안이 시간성과 무한성, 하느님과 인간, 운명 등으로 비교되어, 신앙에 의한 구원으로만이 가능하다고 불안을 구원의 수단으로서 규정, 기독교 신자의 자세를 취하면서 막을 내린다.
  생각해보면, 그는 시종일관 聖書(성서)라는 절대적 전제를 사용함으로써 일반에겐 의문점을 제기시키고, 파생적인 것이 근원적인 것보다 불완전하다든지 하는 것은 현상적 규명은 되도 본질적 파악은 되지 못하며 질적 비약ㆍ성적충동은 어떻게 가능한지, 또 정신 분할에서 肉(육)ㆍ감성ㆍ性慾(성욕)ㆍ죄성의 발전과정 내지는 관계설명에서도 의문된다. 결론짓자면, 우리말에 “두려움”이 “둘리워 있다”는 어느 친구의 말처럼 상황을 얘기하는 것으로, 不安(불안)이란 無知(무지)의 상황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전제를 가질 때 심리학의 “갈등”의 이면적 표현 혹은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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