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 창구 열려…남한 잣대로 곡해해선 안 될 터

  88년이었다. 당시 대학신문사 기자였던 나는 양성철 교수를 비롯한 재미교포 몇 명이 북한을 방문하고 난 느낌을 적은 ‘북한기행’ 이라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쓴 일이 있었다. 예상대로 그 기사는 곧바로 파문을 일으켰다. 주간교수는 그 원고가 들어간 상태에서는 신문을 낼 수 없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안기부원까지 출몰했다.
  다행히도 문제의 서평은 신문에 실릴 수 있었다. 편집장과 나, 주간교수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놓고 3일 밤낮을 씨름하며 내용을 수정한(아니, 긴 줄다리기 끝에 타협한) 결과였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았다. 부산여대에서는 똑같은 북한 기행문을 서평으로 실었다가 편집장과 필자가 구속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의 이야기다.
  지난 9월 북한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가 SBS에서 방영된데 이어, 10월엔 벽초 홍명희의 원작소설을 극화한 ‘림꺽정(林巨正(임거정))’이 KBS에서 10부작으로 방영되었다.  ‘상전벽해’ 란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곧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북한영화 ‘불가사리’와 ‘꽃 파는 처녀’, ‘돌아오지 않는 밀사’를 상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춘천국제만화축제에서도 북한만화 60여편이 전시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북한의 소설이 출간되기도 하였고, 북한의 그림이 전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영화의 상영은 남한의 국민들에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문화적 충격을 던질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서는 북한 문화예술의 개방 폭을 더욱 넓힐 것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의 문화예술은 특정소수만이 볼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닌, 우리가 레코드가게에서 가요나 팝송을 선택해서 고르듯 하나의 선택품이 되었다.

  사실 전 세계의 문화예술이 다 들어오는 글로벌 시대에 유독 북한의 작품만 안 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미국대중문화가 판을 치고, 일본대중문화가 수입개방되는 마당에 같은 민족인 북한의 문화예술이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최근 TV에서 방영한 북한영화들의 시청률이 무척 저조했다고 한다. 본 사람들도 대부분 ‘유치하다’, ‘5,60년대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예상했던 일이다. 정말로 두 작품은 북한에서 7,80년대에 만들어진 ‘흘러간 영화’였다. 90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남한 국민들의 ‘외면’을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지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고전영화들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니 말이다. 정말 북한의 문화예술은 별 볼일 없는, 경쟁력 없는, 그런 것일까?
  나는 가끔씩 통일부 북한자료관에서 상영하는 북한영화를 보러간다. 처음엔 단순한 줄거리에 설익은(?) 연기, 개인을 지나치게 영웅화하는 내용들 때문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10여편 이상을 보고나서야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남한의 잣대로 북한의 문예작품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과거 북한에 취재를 간 남한측 기자가 올여름에 바캉스를 어디로 가냐고 북한주민에게 물었다. 북한 주민은 “묘향산으로 바캉스간다”고 했는데, 그 말이 남한에서 우스갯소리로 유행했다. 남한과 북한에서 쓰이는 바캉스의 의미가 서로 다른 데도 우리는 남한의 잣대로 북한주민의 말을 재단하고 그 무식함에 비웃었던 것이다.
  북한의 문예작품을 북한의 잣대로 본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북한의 모든 문예선전물에서 ‘공식’처럼 나오는 상투적인 ‘사상성’과 ‘우상화’부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 없이 ‘그저 넘겨버리고 나면’ 그 안에 숨어있던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가 보인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가 북한의 영화예술을 보며 흔히 우리의 ‘5,60년대 수준이다’라고 느끼는 것은 북한이 우리 고유의 정서를 그나마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우리는 그 정서를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반증이다.
  어쨌든 남한의 국민들이 처음으로 소개된 북한문화예술에 대해 보인 ‘냉정한 반응’은 앞으로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를 일깨워주었다. 또한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방영된 북한영화를 보면, 대사 가운데 ‘동무’, ‘접수했다’, ‘일없다’등을 제외하고 언어의 이질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무명저고리를 입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보적이나마 민족의 동질감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다.
  이제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문화예술의 내면에 흐르는 한민족의 정서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일, 그것은 어렵지 않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들에게는 똑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50년간의 단절을 넘어 드디어 북한영화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반기 SBS에서 방영된 다큐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그 시작이었고 KBS2에서 방영된 ‘림꺽정’이 본격적인 북한영화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30분 분량이 짤리는 통일부의 압력 속에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반면 ‘림꺽정’ 은 KBS에서 방영되어 공영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홍명희의 작품성과 사실감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는 평은 북한영화의 현주소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북한영화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 속에 두 편의 영화가 더 소개될 예정이다.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와 현재 남북합작영화로 제작ㆍ진행중인 ‘장길산’ 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영화의 상영은 북한의 사회상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의미하고 있어 문화교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 초대전
  잠깐씩 소개되는 북한 소식이나 사진을 통해서 혹은 전망대의 먼발치에서만 보았던 금강산의 모습을 이제는 그림으로도 볼 수 있었다.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북한 저명 화가 초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월북 화가 11명과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20명의 작품을 전시한 이번 행사는 북한 내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옌볜 송화미술원의 양해를 얻어 전시된 작품들은 현재 북한 화단의 동향을 짐작케 해주며 민족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풍경화나 화조화를 특유의 묘사법과 현대적 감각을 도입해서 그린 작품과 선묘와 점묘 기법을 개성 있게 활용한 작품들이 소개됐다는 평이다.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영남대 유홍준 교수가 북한 방문을 끝내고 출간한 책.
  지난 1월 12일부터 중앙일보에 연재된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의 연장선상에서 출간됐지만 신문에 실린 글들을 엮어 묶은 것은 아니다. 평양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공항에서부터 대동강, 고인돌, 묘향산, 강서고분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문화유산과 정취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평양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말씨 등을 유교수만의 독특하고 정감어린 말투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북한의 유산뿐 아니라 풍토까지도 접할 수 있다고. 현재 평양의 유행이나 결혼풍속도 등을 알려주는 짧은 글들이 책의 잔재미를 더해주며 보다 북한문화를 친숙하게 느끼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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