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같은 군사독재자들을 칭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아마 제작진도 매일 가슴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월요일 밤 11시. 이 늦은 시간에 문화방송에서는 이상한 제목의 개그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김국진ㆍ김용만의 21세기위원회’. 개그맨들의 위원회라. 대체 뭐 하는 위원회일까? 다수의 진행자와 보조진행자가 우루루 몰려 나와서 무대를 가득 메우고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형식은 90년대의 여느 개그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편성시간만큼은 특이하다고 하겠다. 그 늦은 시간에 그런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는 것은 확실히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니까.
  당연히 이 프로그램이 시도한 이런 편성시간의 파격 정도로는 시청자들의 별다른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프로그램은 제법 알려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 까닭이 특이한 편성시간이나 특이한 제목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은아라는 한창 잘 나가는 아나운서는 물론이고, 김국진이라는 빼어난 개그맨의 매력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이 프로그램이 널리 회자된 것은 하나의 코너, 바로 ‘칭찬합시다’라는 일종의 계도성 코너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저 요란스럽게 웃기기만 하려고 했을 때 이 ‘위원회’는 별 다른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를 널리 조성하려고 하자 갑자기 커다란 호응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이런 급변이 발생했을까? ‘21세기 명랑사회’는 단순히 말장난을 잘 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시청자 들이 잘 알고 있었던 때문이 아닐까?

  한국 사람은 칭찬에 인색하다고들 한다. 그 원인으로는 심지어 조선시대의 당파분쟁이 거론되기도 한다. 따지자면 식민사관과도 연관이 있을 이런 평가가 상당부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임을 이 프로그램은 보여준다.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다만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칭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몰래카메라를 이용하는 ‘양심냉장고’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위원회’의 칭찬릴레이는 일반인의 진솔한 평가를 제작진이 그저 좇아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런 문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의외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그 추구하는 방식에서는 사뭇 다른 프로그램인 것이다.
  칭찬을 하고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전두환이나 노태우, 아니 박정희 같은 군사독재자들을 칭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주영이나 이건희를 칭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조선일보의 김대중이나 조갑제를 칭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아마 제작진도 매일 가슴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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