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향한 무능력과 권태의 항변일지도

“어느 시인처럼 신문사에 복종하고 싶었다”

  수백바퀴 돌아버린 사발시계 분침위에 얹힌 내 모습이…
  이경우 기자 <文科大(문과대) 獨文科(독문과)>

  10월1일자 脫修習(탈수습), 문득 들은 편집회의 시간의 짧은 한마디였다. 순간 무너질 듯한 肉身(육신)의 피로와 가을의 새로운 충동을 느끼며 꼬리표가 달린 지난날의 착각에 빠졌다. 여지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르내리던 東岳路(동악로) 그 무덥던 날엔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時間(시간)의 의미도 活字(활자)와의 묘한 인연같이 그렇게 찍혀서 선명한데 밟고 오른 그곳에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虛無(허무)한 것일까!
  지나온 6개월은 나에게 ‘취재’의 意味(의미)조차도 깨닫게 하지 못하게 했거늘 修習(수습)을 빼앗겠다는 시간의 意味(의미)는 더욱 나를 몽롱하게 만든다. 어떤 날이었을까. 記者(기자)란 말에 현혹되어 원서를 쓰던 날, 가슴에 와닿던 충격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수습의 구호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자”라고 한 어느 선배의 얘기던가.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하고 싶지 않은 얘기다. 아니 자랑할 것이 없다면 너무 부끄러운 날들일 것이다. ‘신고식’과 ‘위계’의 恐怖(공포) 속에서 ‘감’이란 것의 意味(의미)를 머리 아닌 발로 생각해야만 했던 6개월, 뇌리에 새긴 것이라곤 ‘取材(취재)’밖에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묘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時間(시간)이란 것을 느끼고자 할 땐 이미 수백바퀴 돌아버린 작은 사발시계 분침위에 처량히 얹힌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조그만 행복의 환상에서 차가운 現實(현실)로의 탈바꿈이었다. 어항 속의 금붕어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태양처럼 보이듯, 古木(고목)을 의지하는 매미는 한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쟁이’는 족쇄 찬 새처럼 날 수 없는 울분을 작은 牙城(아성)에 토할 뿐이다.
  ‘기자’란 말에 ‘수습’이란 거추장스러운 형용사를 가하지 않은 영예스런 감투도 모르던 意味(의미)의 시간자체의 이득일 것이다. 믿기 위해서 주는 모든 것은 이제 족쇄 풀린 새처럼 빛나는 태양에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6개월의 스냅이 주마등처럼…
  이한수 기자 <經商大(경상대) 電算科(전산과)>

  지친 몸이 버스에서 졸다가 뛰어내리면 가로등의 창백한 불빛이 나를 비웃는다. 길가에 줄지어 서있는 사루비아의 정열로 위로하려고 애쓰지만 달빛 받은 버드나무의 을씨년스런 모양이 꼭 내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나 보다. 집에 가면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나의 집이기에 자정이 가까운 이 시간에 임박해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나에게는 낯설기만 했던 신문사의 수습기자 생활이 이제는 몸에 익숙해져 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해가 지면 어둠이 몰려오면 거리의 불빛들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이 나는 모든 것을 하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싶다.
  바다의 교양시를 생각하기엔 소심한 나였기에 나를 개발시키고 싶은 力作用(역작용)이 신문사의 생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늦가을의 사과만큼이나 얼굴 붉힐 쑥스러운 일들이 내가 지나다니는 보도블럭의 발자욱들과는 달리 지워지지 못한 채 마음속에 선명하게 찍혀 있음을 직시한다.
  소 같은 투지, 벌 같은 노력, 곰 같은 용기로 세상을 사는 방법을 ‘별난 신고식’은 나에게 가르쳤지만 가을바람에 쓸려 다니는 낙엽과 같이 정신적 나약함이 소주잔에 허무를 토해내게 했다. 사진기자로 양면을 취재하기에 부르튼 발바닥, 東岳(동악)의 땅개가 되지 못한다고 꾸지람하는 선배들의 눈초리, 非拘束(비구속)의 拘束(구속)으로 나 자신이 스스로 빼앗겨 버린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기자의 일 이외에는 흥미를 잃게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울적하게 만들 때면 퇴계로의 밤거리는 온통 술 취한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절망과 보람이 한데 뒤섞여 나를 조종한 지난 6개월의 스냅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도 터지고 쥐똥 씹은 누구의 얼굴처럼 찜찜한 표정도 지어본다. 이제 기다리던 脫修習(탈수습)이지만 수습이라는 까칠한 옷을 벗어 버리는 시원함 보다는 무거운 質感(질감)의 옷을 껴입는 듯한 책임감이 양어깨를 더욱 무섭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삽시간에 내 시야에는 우리 집 철대문이 보이고 나는 저녁밥에 대한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이나 자두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홍주연 기자 <農科大(농과대) 林學科(임학과)>

  바람이 차다. 좀 더 두껍고 따뜻한 스웨터를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늦은 시간, 오늘도 난 신문사 구석에 앉아 오늘하루를 마치려 한다.
  요즈음 와서는 이상하리만큼 점점 虛(허)해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수습기자에서 기자로 탈바꿈해야만 하는 외면의 화려함에 놓여 있는 듯싶다.
  신고식. 취재, 기사, 원고, 조판, 10시 귀가, 암실집합… 지난 6개월의 아픈 시간들이 이제 와서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지독히 구속이란 것을 싫어했던 나에게 신문사는 나의 모든 것을 구속했다. 난 항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운명이란 것은 어느새 내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놓았고 난 그것에 순응할 수밖에는 아니, 어쩌면 난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신문사에 복종하고 싶어 했는지도.
  탈수습을 함에 있어 지금 내게는 면접 때의 자신만만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신문에 대한 어떤 의무, 책임으로 움츠러들고 있다. 만약 내가 지난 6개월의 시간들을 도화지에 표현한다면 난 바탕이 비치는 환한 색의 수채화를 그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그려왔던 그림은 결코 밝지도 않은 어두운 빛의 바탕이 감추어진 유화였던 까닭에 지금 나는 또 다른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희미한 현실 속에서 약간 확실해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는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진실이 담긴 글을 쓰겠다는 것이다.
  오늘도 어둠에 익숙해진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숨 쉴 수 있다는 사실과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다만 감사할 따름이다.’


  깡소주 피로연에 응혈된 외로움을 이겨내
  김향경 기자 <慶州大(경주대) 日文科(일문과)>

  신고식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절감케 한 기회로 남아 그날의 소주 맛이 탈수습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가시지 않은 채 지나간 수습생활 6개월은 자책과 외로움과 부끄러움뿐이었다.
  신문뭉치의 무게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잊어버린 강의시간표와 더불어 정신없이 출입처를 돌땐 친구들의 학과이야기가 내게는 온통 눈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닌가 했다.
  질식할 것 같이 경직되어만 보이던 신문사의 분위기며, 수습생활과 쉴 새 없는 방황, 갈등은 사회적 피조물을 더러더러 맛보게 한 캠퍼스의 고아로 만들어갔고, 어색한 記者(기자)흉내는 언론창달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딴에는 기특한 발버둥이 되기도 하였다.
  자신을 향한 무능력과 권태의 항변 속에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황급히 수습의 늪을 빠져나왔지만 이제 이 탈수습기는 내 존재가치의 자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마도 깡소주의 피로연으로 이리저리 부딪쳐온 응혈된 외로움을 달래며 목청껏 社歌(사가)를 외칠 때만큼은 내 존재에 뼈아픈 의미가 내려질 것이리라.
  6개월의 어설픈 몸짓은 수습의 굴레에서 온통 흔들렸지만 따가운 햇살이 사라져 가는 가을녘 나는 아마추어 인생에 울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어린 회한을 느낀다.
  기억 속에 접어든 되새김 당한 원고뭉치는 영상처리가 고장 난 화면처럼 삐걱이고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탈수습의 탈을 뒤집어쓰는 것 같은 억울함이 종래 일어나는 탓은 무엇일까.
  두렵고 부끄럽다. 인생에 있어 수습기간이란 것이 있다면 나는 평생을 ‘수습인생’으로만 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또 다른 형태로 다가올 기자로서 고통을 생생히 부딪치며 뛰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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