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동대문학상 소설부문 본상 가작] - 곽진솔(국어국문3)

▲곽진솔(국어국문3)

기억해보자. 루가 죽던 날,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그 날도 별 다를 건 없었다. 그저 가게에서 물을 끓이다 손을 데었고, 살이 익는 고통으로 찻잔을 떨어뜨려 하루 일당을 고스란히 빼앗겼을 뿐이다. 어제와 그제, 한 달 전, 3년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테이프를 가위로 잘라내듯, 시침이 자정을 지나면 오늘이 어제로부터 끊어지는 일반적인 시간개념과 여전히 화해하지 못한 채였다. 내 시간은 어제와 내일의 구분 없이 흘러가기만 했고, 흐름에는 한정이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늘어지기만 하던 하루의 연장선에서 어느 날, 루가 죽었다. 현관 등에 불이 들어왔을 때, 나는 한없이 늘어지던 테이프가 가위로 잘리는 소리를 들었다. 신발장 옆 전신거울에 비친 내가 보였다. 초겨울 칼바람에 창백하게 얼어붙은 여자가 가을철 스웨터 차림으로 서 있었다. 여윈 얼굴이 빈혈증 환자를 연상시켰다. 몇 초 뒤 자동센서가 꺼졌고, 약하게나마 불빛이 비쳐들던 방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현관문을 여닫지 않는 원룸은, 아무리 보일러를 켜둬도 차갑고 스산한 기운이 떨쳐지지 않았다. 현관 등이 설핏 들어왔을 때, 나는 부엌에서 건조한 먼지 냄새를 맡았고, 빈 컵라면 용기가 얼기설기 쌓인 식탁을 보았다. 그 위로 새카만 점들이 날아다녔다. 식탁 아래에는 다 먹은 고양이 통조림이 쏟아진 채 굴러다녔다. 나는 가죽 터진 소파에 빨간 털실이 함부로 헝클어진 걸 보았고, 또 줄 끝에 잉꼬 깃털을 달아놓은 장난감도 보았고. 또 그 밖에 또,

어둠은 방구석에 웅크린 채 기신거리는 루를 보았다. 루는 입으로 갈색 토사물을 쏟아내며 자꾸만 거꾸러졌다. 현관 등이 꺼졌다. 내가 팔을 휘젓자, 빛이 다시 돌아왔다. 루는 캭, 캭, 코로 재채기를 하면서 몇 차례 더 토를 하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아무렇게나 신발을 내팽개쳐두고 거실 불을 켰다. 오후 내내 어둠에 잠겨있던 방이 화들짝 깨어났다. 거칠게 오르내리던 루의 등허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손으로 꼬리를 잡아당겨도, 잉꼬 깃털로 유인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루를 들어올렸다. 고개가 툭 처져 내렸고, 입에 고였던 토사물이 남김없이 쏟아졌다. 참치로 추정되는 생선비린내와 우유 삭은 내가 섞여든 시큼한 냄새가 방 안 가득 고였다. 목구멍에서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오물에 젖은 루의 털과 입을 닦아냈다. 나는 루의 죽어버린 몸을 화장실 세면대에 눕혀둔 채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에게 어제와 오늘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루가 살아있던 어제와 죽어버린 오늘은 더 이상 같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말벗을 잃은 날, 나는 어떤 형태로든 루를 위로하는 장례식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추위에 떨었으므로, 나는 가을용 스웨터에 인조털 점퍼를 걸쳐야만 했다. 평소에 루가 분신처럼 지니던 담요로 식어버린 루의 몸을 단단히 감쌌다. 간신히 얼굴만 내놓은 루는 강보에 싸인 아기 같았다. 이제는 쓸모없게 되어버린 통조림과, 평소에 루가 가지고 놀던 깃털 장난감, 털실뭉치 모두 점퍼 주머니에 챙겨 넣고 거실 불을 껐다. 환한 불빛 아래서 안절부절 못하던 방은 이제야 안정을 되찾고 느긋하게 되돌아갔다. 창문 너머로, 한강변의 부글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급하게 벗어놓은 운동화 한 켤레가 현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운동화를 구겨 신는 동안, 자동센서가 켜지면서 현관 등에 불이 들어왔다. 전신거울에는 외투 모자를 뒤집어 쓴 한 여자가, 담요로 싼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지금껏 길러온 고양이가 이렇게나 차갑고 무거웠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어둠은 방 귀퉁이에 도사린 채 창백하게 켜진 현관 등을 노려보았다. 마치 빨리 꺼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지막 말벗을 검은 비닐봉지나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지 않았으므로, 정중한 장례에 어울리는 모종삽을 공구함에서 꺼냈다. 루의 육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물처럼 굳어갔다. 하늘은 어둡게 사위어갔고, 바람은 여전히 시렸다. 바람의 끝에서 흙먼지 냄새가 났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1층까지 불 꺼진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루를 묻으러 가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밤길을 산책하고, 기억은 나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간다. 시간을 거슬러, 나는 쓰레기통을 들고 학교 공터로 걸어간다. 공터는 학교 운동장 뒤편에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파란 캔버스 천막 안에 있는데, 천막 바깥에는 언제나 초록빛 페트병이나 담배꽁초가 나뒹군다. 문을 열고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종이를 태운 매캐한 냄새, 조악한 오물내가 뒤섞여 엄습한다. 나는 황급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멈춘다. 급하게 플라스틱 수거함을 연다. 어서 분리수거를 끝내고 악취가 들끓는 이 불결한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수거함 뚜껑을 열자마자 새카만 파리 떼가 솟구친다. 꽉 다물었던 입이 벌어진다. 배가 터져 죽은 고양이가 수거함 통에 버려져 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벌어진 배에서 끈끈하게 피가 흘러나온다. 배 주변은 갈빛으로 말라붙어 있다. 벌어진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온다. 고양이의 배는 아직 미약하게 꿈틀거린다. 어쩌면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맨 손으로 고양이의 꼬리를 조심스레 잡고, 들어올린다. 배 밖으로 비어져 나온 창자가 건들거리며 딸려 올라온다. 숨이 붙었는지 알 수 없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순간, 벌어진 상처 속에서 희묽은 콩알들이 우글거리는 장면을 본다. 고양이의 썩은 살 틈을 헤집고 구더기가 자라고 있다. 흰 것들은 죽어가는 것을 갉아먹고 맹렬하게 살아난다. 온 몸의 땀구멍이 활짝 열린다. 척추가 송곳처럼 일어선다. 뒷목에서 서늘한 손길이 지나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기침이 터져 나온다. 고양이 시체를 팽개치고 미친 사람처럼 공터를 빠져나온다.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본거지, 구더기에 먹혀가는 고양이 시체를 보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정확히, 어린 고양이를 죽여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얼굴 없는 손 (手) 을 보았다. 그 손은 어느 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메마른 운동장과, 갱지를 깨알같이 메운 모의고사 시험지에 지겨움을 느낀다. 심심해서 미칠 것만 같다. 답답해서, 울분이 끓어서,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게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 무료함을 달래줄 오락거리가 어디 없을까. 불현듯 손의 머리에, 교정의 덤불 속에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떠오른다. 손은 덤불 속에서 작고 여린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꼬여낸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자유롭게 축구공을 차던 기억을 되살린다. 발끝에 억눌린 분노를 실어, 있는 힘껏 고양이 배를 후려친다. 고양이의 여린 가죽이 터진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다. 손은 고양이를 쓰레기장에 던져 넣고 교실로 돌아간다. 스트레스도 풀었으니 이제 공부가 잘 되겠지.

사실 이런 상상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나는 얼굴조차 모르는 손이, 정말 그런 의도와 방법으로 고양이를 죽였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건, 배가 터진 고양이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손이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채 이 학교 어딘가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점심시간에 내 앞줄이나 뒷줄에 섰을 수도, 나와 같은 식기와 물 컵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죽어가는 것을 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구더기가 본능적인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처럼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나는 교실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는다. 세면장은 때로 찌들었고, 수돗물에서는 녹물이 섞여 나온다. 비누에는 구정물이 배어있다. 마지막으로 닦아낸 게 언제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거울에서, 귀밑머리가 헝클어진 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자애가 나를 보고 있다. 여자애의 얼굴은 이지러져 있지만, 그것이 거울의 잘못인지 나의 잘못인지 알 수 없다. 그 여자애는 풀린 눈으로 내게 묻는다. 그런데 왜 하필 플라스틱 수거함이지. 폐지함이나 깡통, 비닐 스티로폼 수거함도 있는데. 고양이 시체에서 플라스틱 범주에 들어갈 만 한 어떤 특징이라도 발견한 걸까.

나는 스스로가 미쳐간다고 느낀다. 비척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다가, 황달처럼 얼굴이 노랗게 뜬 동급생들을 만난다. 그네들의 양 볼과 이마는 화농성 여드름으로 뒤덮였다. 되삼키고 되삼키던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계단에 토를 하다가 모로 쓰러진다. 시야가 어둡게 닫히고,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담임이 보여준 CCTV 화면 속에서,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친다. 비디오를 보면서, 나는 ‘쓰러졌다’기보다는 ‘무너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아, 이제야 이해하겠다. 루를 품에 안고 한강변에 나가서, 정처 없이 걷다가, 나는 문득 아아, 이해했어, 중얼거리는 나와 마주쳤다. 몇 년 전 그날, 어째서 얼굴 없는 손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를 플라스틱 수거함이 넣었는지를, 나는 루를 품에 안고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갓 죽은 고양이는 고철처럼 차갑지도, 폐지처럼 바스락거리지도 않는다. 갓 죽은 고양이는 딱 플라스틱만큼 딱딱하고, 플라스틱만큼의 온기를 지닌다. 그러므로 만약 그 손이, 죽은 지 오래 된 고양이를 처리해야 했다면 분명히 그것을 고철 수거함에 던져 넣었을 것이며, 그날 이후로 내가 불시에 발작을 일으키는 병을 얻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쩌면, 혹여나, 그럴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이 모든 가정과 상상, 추측, 확신들은 다 소용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내 가설들과 얼굴 없는 손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벽이 서 있다. 우리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가로막혔다. 그 날 이후로 내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아니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나는 손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춰본 일이 없다. 하지만 손은 내가 왜 하필 플라스틱 수거함이었냐고 끊임없이 묻는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저 손은, 플라스틱 볼펜을 부러뜨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를 해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양이의 목숨을 볼펜 한 자루로 인식했기 때문에 고양이를 플라스틱 수거함에 던져 넣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쩌면, 혹여나,

그럴 확률이.

한강은 밤 아홉시를 따라 검게 흘러갔다. 석유화학공장에서 유출된 타르를 보는 것 같았다. 한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나는 벤치에 앉아 네온사인을 반사하는 강물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붉은 빛을 내는 자전거들이 무리지어 내 앞을 지나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단단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몸보다 먼저 트랙 위를 곧게 나아갔다. 교각에는 검은 물체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낚시꾼인 것 같았다. 교각과 더불어 한강의 풍경으로 녹아든 것을 보니, 오래 앉아 고기를 낚았던 게 분명해 보였다. 내가 낚시꾼에게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을 때, 노란색 아디다스 옷을 꿰입은 말티즈가 방울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뒤로, 말티즈 목에 달린 줄을 잡은 남자가 입으로 쉬, 쉬, 소리를 내며 들뜬 말티즈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남자가 말티즈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말티즈가 남자를 산책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루에게 단 한 벌도 옷을 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외투의 지퍼를 조금 내려, 루의 분홍색 코를 톡톡 건드렸다. 어제 같았으면 두 눈을 초승달처럼 사려 감다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덤벼들었을 텐데, 오늘의 루는 사물처럼 굳은 채 반응이 없었다. 마치 교각에 앉은 낚시꾼 같았다.

자퇴서를 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날, 나는 쓰레기장에서 본 아기고양이보다 몸집만 조금 클 뿐, 생김새는 복제 수준으로 같은 한 고양이를 본다. 흰 몸바탕에 주황빛 줄무늬를 가진 그 짐승은, 교정 벤치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다. 등나무 틈새로 잘게 부서진 볕이, 천천히 오르내리는 고양이의 등허리에 투명하게 내려앉는다. 그 풍경은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나는 어떤 감동에 젖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이 고요가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며 고양이가 웅크린 벤치 끝에 걸터앉는다. 3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텅 빈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 운동장은 차라리 황무지에 가깝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고양이의 꼬리를 만진다. 손끝에서 전기가 일어난다. 고양이는 피하지 않고 다가와 내 손끝을 핥는다. 혀는 축축하고 따뜻하며, 부드럽게 까칠 거린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송곳같이 일어섰던 적의가, 차츰 예리함을 잃고 잦아든다. 고양이의 배에 손을 가져간다. 쓰레기장에서 본 고양이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희미한 심장박동과 체온이, 손바닥을 타고 내게 넘어온다. 나는 그 짐승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콧잔등에 깊이 팬 상처를 가진 그 얼굴은, 지금까지 이 짐승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양이에게도 슬픔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을까. 표정은 감정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들만이 지니는 것인데, 왜 이 고양이가 표정을 가지고 있을까. 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표정이 없고, 무표정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며, 왜 가난한 표정이나마 가졌던 이들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까. 왜 가장 지니기 어려운 것을 버리려고 혈안이 된 걸까. 고양이는 탁한 어항 속 같은 눈으로 나를 본다. 이 고양이의 눈에도 내가 이지러져 보일지를 생각한다. 표정과 감정을 지닌 것을 짐승이라 불러도 좋을까. 아니면, 표정과 감정을 지니지 않은 것을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까. 나는 한참동안 근의 공식이 흘러나오는 교실 창문을 올려다보다가, 고양이와 함께, 아니 루와 함께 교문을 나선다.

한강변에서 부는 밤바람이 갈수록 예리하게 날을 세웠다. 바람의 끝에서 매연과 물비린내가 뒤섞여 실려 왔다. 거친 바람 덕분에 한강은 제법 파도소리를 내며 바다를 흉내 냈다. 남보랏빛 네온사인이 강물 표면에서 일렁였다. 파도가 남보라로 출렁거렸다. 스산한 초겨울 날씨는 계속되었다. 죽어버린 루를 두 번 얼려죽일 셈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울분을 느꼈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깊은 한숨을 내 쉴 때, …… 추운데 애기 데리고 나오면 감기 걸리는데 …… 하고 말끝을 흐리는, 작고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볼품없이 마르고 주름진 여자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누빔 바지에 검은 개털외투를 입은 여자였는데, 그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동시에 60대 노파로 보이기도 했다. 옷깃 사이로 여자의 여윈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여자는 추위로 곱은 손을 맞비비면서 내 눈치를 연신 보았다. 잿빛으로 바란 머리칼이 모자 밖으로 나부꼈다. 여자의 몸은 내 편으로 돌아서 있었는데, 눈은 풀린 채 어디인지 모를 아득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 아기가 잠투정을 하나 …… 여자는 혼잣말을 가장한 말투로 내게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대답을 보류한 채 여자를 관찰하기만 했다. 언뜻 봐서는 알아차릴 수 없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다 풀어지는 눈빛으로 보아 어딘가 온전치 못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 나도 아기가 있었는데, 그 말을 발음하는 순간에, 아득하게 풀어지던 여자의 눈빛이 한 초점으로 모였다. 섬뜩하게 날 선 눈빛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며 내 불룩 튀어나온 점퍼 속으로 팔을 뻗으려 했다. ……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나 ……

얘, 자는 거 아니에요.

왜 내가 안는 거 싫어? …… 미친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 한 번만, 한 번만 …… 우리 애가 생각나서 그래 ……

죽었는데. 그래도 안아보실래요.

그 순간 고속 전철이 난폭한 소음을 일으키며 여자와 나를 지나쳐갔고, 여자는 눈을 홉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게 함부로 손가락질을 하며 무슨 말인가를 지껄였는데 (말하는 것과 지껄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여자의 지껄임은 전철과 철도가 맞부딪치는 금속성의 소음에 파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식식거리다가, 내게서 등을 돌리고 갈대숲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루를 감싼 담요에서 축축한 습기가 배어났다. 내 땀이 아니었다. 루의 몸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추깃물이었다. 나는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 트레이닝복에 검은 패딩을 겹쳐 입은 40대 중반의 남자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빠르게 걸어갔고, 검은 타이즈에 빨간 후드티를 입은 여자가 휴대폰을 만지면서 느린 걸음으로 나를 지나쳤다. 네 명의 싸이클 선수들이 붉은 빛을 내며 재빠르게 자전거를 몰아갔고, 그 뒤를 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장거렸다. 걸어가는 속도와 자세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루가 부패하기 전에 매장을 서둘렀다.

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날, 나는 가장 먼저 목욕물을 받았다. 동물들은 물을 무서워한다고 들었는데, 루는 따뜻한 물과 샤워기를 불편해 할 뿐 도망치지 않았다. 루의 털에 비누거품을 내면서, 나는 그 분홍색 발바닥을 만져보았다. 촉촉한 젤리를 만지는 듯했다. 화장실에 수증기가 가득 차 거울이 흐려지도록, 나는 따뜻한 물속에서 루의 발바닥을 매만지면서 울었다. 그 촉감이 주는 아늑함이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어, 얼결에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목욕물이 차게 식어버린 후였다. 목욕이 끝난 뒤 루는 우유를 마셨고, 나는 건포도 박힌 식빵을 먹었다. 사다둔 지 오래 된 식빵은 점점이 푸른곰팡이가 피어난 채였고, 건포도에서 시큼하게 상한 맛이 났다. 조촐한 식사를 하는 동안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받지 않았다. 루가 전화선을 물어뜯으며 전화기에게 덤벼들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가, 죽은 듯 잠들었던 집안을 뒤흔들며 깨웠다. 가족들이 타인으로 갈라선 뒤로, 몇 년 만에 겪어보는 활기였다. 웃는 법을 오래도록 잊어버렸다가 간신히 생각해낸 사람처럼, 나는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내 웃음소리가 나조차 낯설었다. 내가 웃는 게 아니라, 웃음이 독립된 생물체가 되어 나로부터 튀어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웃음이 깨어나자, 덩달아 잊고 지냈던 식욕도 되살아났다. 냉장고에는 컵라면과 냉동 밥 같은 즉석식품 몇 가지가 전부였다. 루는 배가 고픈 듯이 가늘게 울었다. 조리 기구를 넣어두는 서랍을 열자 큼큼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이제 새 가족이 생겼으니, 장을 보러 가야겠다.

조깅트랙 근처를 단념하고, 나는 강둑으로 내려갔다. 루를 가슴에 품은 채였기 때문에 몸놀림이 자유롭지 못했다. 억새풀과 갈대를 그러쥐고 옆걸음으로 내려가다가, 건조하게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모래판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본능적으로 팔을 가슴으로 올려 루가 뭉개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왼쪽 팔이 바위에 부딪칠 때 안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왼쪽 팔꿈치 아래로 타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왼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옷에 묻은 모래를 털 생각조차 못하고, 오른 팔로 루를 안은 채 망연히 서서 강 건너편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을 바라보았다. 도로마다 붉은 전조등을 켠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현대식 빌딩에서 꽃이 피어났다가 지는 네온아트가 번득거렸고, 나는 어쩌면 이 땅에서 피어날 수 있는 꽃은 저게 마지막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점점 더 발톱을 세운 채 불어 닥쳤다. 산책로에서는 희미하게 풍기던 오염된 물비린내가 왈칵 끼쳐왔다. 한강이 처음부터 이렇게 오염되어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한강도 동해처럼 맑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강둑에 루를 묻기 위해 물기 머금은 흙을 파헤쳤다. 바위처럼 얼어붙은 땅을, 삽은 좀처럼 파고들지 못했다. 한참동안 캄캄한 하늘 아래에서 캄캄한 땅을 파내다보니, 어느새 내가 흙구덩이 속에 들어가고, 내 능력으로는 감지해낼 수 없는 어떤 초월자가 세상 바깥에서 삽을 휘두르는 느낌이 들었다. 살갗이 까져 피가 흘렀다. 흙에서 부패한 생선뼈와 소주병, 고철조각, 정체를 알 수 없는 뭉클거리는 기분 나쁜 것들이 섞여 나왔다. 어린아이를 매장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로 흙구덩이를 파고, 루를 묻었다. 위에 얹을 큼지막한 돌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한 인명구조선이 아까의 전철처럼 난폭한 소음을 내며 나를 지나쳐갔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두는데,
나는 폐쇄된 잠수함처럼 입을 다문다. 가족, 담임, 그 밖의 모든 타인들에게 무슨 질문을 받든 나는 내 안으로 깊이 잠식한다.

누가 때리니, 나는 고개를 젓는다. 몇 번 린치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삶을 비관하거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누군가를 따돌려야만 따돌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연약한 아이들의 객기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살면서 누군가를 밟고, 누군가에게 밟혀야 한다면 나는 나를 짓밟는 사람이 감히 적의조차 품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사람이기를 바랐다. 적어도, 작은 물고기처럼, 무리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안심하는 이런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러면 성적 때문에 힘드니,
친구 사귀는 데 문제가 있니,

대체 뭐가 문제니?

바보 같은 질문들을 질리도록 받으면서,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친구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잃는다. 그리고 전교생이 살아가는 차원에서 내가 살아가는 차원을 격리시킨다. 학교는 사람들이 각자 살아가는 시간의 결이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들은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아침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해가 뜬다. 내가 아침일 때 그들은 언제나 밤이고, 내가 새벽일 때 그들은 저녁을 산다. 세상과 어긋난 채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경은 선인장의 가시처럼 치밀하게 곤두선다. 나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운동장을 혼자 산책하는 버릇을 들인다. 황무지를 걸어 다니던 어느 날, 문득 지금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 학교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치료 불가능한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더 심각한 것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능숙하게 내 얼굴과 나 자신을 지우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렇게 차츰 내 얼굴은 사라지고, 손은 희고 푸르게 질린다. 견딜 수 없는 게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 어디 오락거리가 없을까. 나는 교정의 덤불숲으로 걸어갔던가.

루를 한강변에 묻은 뒤,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루의 깃털 장난감을 쥔 채 묵념을 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자, 지금까지 온도와 냄새로만 존재를 드러내던 바람이 맹렬한 소리로 다가왔다. 한강에서는 부글거리며 무언가가 쉬지 않고 끓어오르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소음이 포화상태가 되면 정적상태와 매우 비슷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 짧은 초겨울, 자정을 넘어선 시간에, 타르 같은 한강변에서 눈을 감고 있자니 우울감이 밀려왔다. 왼 팔은 이미 내 신체 일부가 아닌 것 같았다. 오른손으로 억새와 갈대풀을 잡고 안간힘을 쓰며 산책로로 올라오자, 사람들은 조금 전에 루를 안아보자며 내게 달려들던 미친 여자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였다. 왼 팔을 덜그럭거리면서, 나는 대충 머리와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집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교각에 앉아 있던 낚시꾼이 어느새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그가 낚싯대를 가지고 있긴 했나. 나는 문득 궁금해 하다가, 생각을 거두고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갔다. 처음처럼 현관 등이 창백하게 들어왔고, 어둠은 불쾌하게 웅크렸다. 나는 루의 꽁치통조림 하나를 따서 맛을 보았다. 잊었던 허기가 밀려왔다. 나는 고양이용 참치 사료를 씹으며 침대로 스며들었다. 현관 등이 꺼지고, 방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말벗을 잃은 날 내가 본 모든 것이다.

이제 내 말을 들어줄 벗은 어디에도 없으므로, 나는 그 날 한강변에서 본, 목덜미가 여윈 여자처럼 시선을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보낸 뒤에, 혼잣말을 가장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는다. 기억은 다시 먼 곳을 향해 거슬러 오른다. 

 

* 백현진 〈반성의 시간〉 11번 트랙 ‘어른용 사탕’ 가사 일부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따왔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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