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철(일어일문학과) 교수
[樂]이라는 한자는 [악] [락] [요]라는 세 가지 발음이 있다. 하나의 한자에 왜 세 가지 발음이 존재하는 것일까? 원래 [樂]은 nglak이라는 하나의 발음이었다. 여기에서 l이 탈락한 ngak이 [악]이 된 것이며, ng가 탈락한 lak이 [락]이 된 것이고, ngak에서 k가 모음 u로 변한 ngau에서 [요]가 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발음은 중국의 5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는 시대의 발음이 주층을 이루고 있는데, [樂]의 [악] [락] [요]라는 발음이 그렇다. 그런데 그 이전의 발음은 nglak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5세기 이전의 오래된 한자음을 보면 두 개의 자음이 겹치는 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에도 두 개의 자음이 겹치는 구조가 남아 있지만, 실제로 그 표기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흙] [값]이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흑] [갑]으로 발음한다. 이처럼 두 개의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들이 많지만, 이를 하나의 자음으로밖에 발음할 수 없다. 그러면 어째서 표기에는 두 개의 자음이 포함된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옛날에는 필시 두 개의 자음을 동시에 발음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말뿐만 아니라 어두에서도 가능했다. 지금의 [땅]이라는 말은 천자문에 []로 표기되어 있다. 즉 한국어도 옛날에는 영어처럼 s와 t를 동시에 발음할 수 있는 언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알타이어권의 국가지명인 [우즈베키스탄] [키르키르스탄] [카자흐스탄]과 같은 국명의 stan과 같은 형태로, 이들 국명은 [우즈벡, 키르기르, 카자흐의 땅]이라는 말을 국명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에서 이중자음이 사라지게 된 것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서로 다른 언어가 융합되는 과정 속에서 몇 천년을 거치는 동안 서서히 북방계의 이중자음을 할 수 있는 언어에서 남방계 언어의 영향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구조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옛 우리말의 경우처럼 5세기 이전의 중국 상고음도 이중자음이 가능한 구조였다. 예를 들어 [風]과 [嵐]을 보면 [嵐]에도 [風]자가 들어 있어 두 자가 원래 같은 발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풍]과 [람]은 원래 pl∧m이라는 한 단어였으며, 그것은 한국어의 [바람]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이 pl∧m에서 p∧m과 l∧m로 분리되었으며, p∧m은 p∧ung으로 변하여 [풍]으로, l∧m은 [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영어의 silk는 언뜻 우리말의 [실]과 비슷한데, 실제로 우리말이 건너간 것이다. 알타이어의 silk가 중국어에 전해져 상고음에서 [絲]는 silk였고, 이것이 실크로드를 통해 서구로 전해진 것이다. 이후 중국 중고음에서는 어말자음이 탈락하였으며, 한국어에서는 그것을 []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한 발음이 현재의 [사]인 것이다. 즉 알타이어의 silk에서 k가 탈락되어 현재의 우리말 [실]이 되었고, 그 silk가 그대로 중국어와 영어에도 전해진 것이며, 현재의 한국한자음인 [사]도 여기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말에서는 한자의 어원이 된 말을 흔하게 찾을 수 있으며, 한자의 초기 형성과정에 한국어의 할아버지격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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