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해외 우수대학 취재-스위스 취리히 대학

취리히공대의 대표적인 졸업생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취리히공대의 교육시스템은 수학식전개에도 서툴렀던 아이슈타인을 세계적인 천재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했다. 바로 ‘창의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취리히공대는 시험 성적도 답안의 창의성을 기준으로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여한다. 또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39명에 불과하고, 학생 2명에 1명꼴로 과학담당직원과 TA(Teaching Assistant)가 배정돼있어 학생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한 학년의 50%가 낙제하는 ‘엄격한 학사제도’도 인상적이다.
취리히공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셔온’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 우수 교수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과 세계최고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대학의 자존심과 구성원의 자부심이 세계적인 공학대학을 만들었다.

 

▲유럽식 석조양식으로 건축된 취리히공대 본관
스위스 북부에 위치한 취리히. 취리히는 스위스의 제1도시로, ‘취리히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로마시대에는 세관으로서 상업적ㆍ군사적 거점도시였고, 현재도 교통의 중심지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와 독일시적사실주의 단편문학의 대가 켈러 등 많은 학자와 작가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정부는 공학육성전략을 세우고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을 연합해 ‘ETH Bereich’를 구성한다. 이 ETH Bereich에 교육기관으로는 취리히공대와 로잔공대가 포함되었고, 연구기관으로는 PSI(Paul Scherrer Instituteㆍ파울쉐러연구소), Empa(Swiss Federal Laboratories for Materials Science and Technologyㆍ재료과학기술연구소), EAWAG(Swiss Federal Institute of Aquatic Science and Technologyㆍ수생과학기술연구소), WSL(Swiss Federal Institute for Forest, Snow and Landscape Researchㆍ산림눈자연연구소)가 있다. 그 중 아인슈타인의 학교로 유명한 ETHZ(Eidgeno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urichㆍ이하 취리히공대)가 취리히에 위치해 있다.

취리히 시내에 위치한 취리히공대는 취리히대학(University of Zurich)과 나란히 배치되어 캠퍼스를 공유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석조양식의 대학 건물은 웅장함을 자랑한다.
학생들의 실험 공간 확대를 위해 20분 거리인 취리히시 북서부 횡거베르크(Honggerberg)지역에 36만㎡규모의 제2캠퍼스를 1961년 개교했고, 이곳에 2005년부터 연구, 교육, 여가, 주거시설이 포함된 ‘사이언스시티’도 조성했다. 현재는 반도체, 초고속 마이크로칩, 나노 공학 등 첨단기술분야 학과와 연구소가 사이언스시티에서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뛰어난 교육환경, 아인슈타인 탄생의 비결

▲본관 건물의 정면 모습. 출입문은 자동문이다.
취리히공대의 대표적인 졸업생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독일출신인 그는 취리히공대에 낙방했지만 뛰어난 수학성적을 눈여겨 본 학장의 배려로 이 대학에 입학한다. 아인슈타인은 ‘천재’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게 ‘특수상대론’을 고안하고 발표할 때 까지도, 수학식 전개를 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취리히 공대의 교육시스템은 그런 아이슈타인을 세계적인 천재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했다. 먼저 ‘창의성’을 빼놓고는 취리히공대의 대학교육을 논할 수 없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시험 성적평가방식인데 답안의 창의성을 기준으로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여한다.

이중엽(건축디자인 석사과정) 씨는 “한국의 시험은 배운 것을 완벽하게 알기만 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스위스는 새로운 생각을 요구한다”며 “배운 것을 외우고 완벽히 알면 4점, 평균이다. 지식을 이해하고, 생각과 관점을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창의적 생각을 발전하는 것을 평가한다. 공학이나 건축이론이더라도 이론 습득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39명에 불과하고, 학생 2명에 1명꼴로 과학담당직원과 TA(Teaching Assistant)가 배정돼있어 학생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잠재적 재능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학 특유의 학생중심의 학사제도 운영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과 간 공동연구와 융합연구가 활성화 돼있는 것도 특징이다. 해당 학과의 연구원이나 학생이 아니더라도 다른 학과의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학과간의 벽이 높은 한국의 대학과는 대조적이다.

교육과정 결정에 학생 참여, 의견개진 인상적

▲취리히공대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취리히공대는 1년 대학재정의 75%가량인 14억 달러의 예산을 스위스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 대학 헤그스트롬 국장은 “취리히공대는 ‘세계최고’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최고의 연구 인프라 구축과 인적자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1년에 14억 달러(약 1조 7천3백억 원ㆍ1,451million CHF/2011년)이상의 재정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대학교육이 스위스 국가전체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어느 대학보다도 엄격한 학사제도를 가지고 있다.

과목별로 수강신청을 하는 우리나라 대학과 달리 취리히공대의 경우 학부과정은 연계과목 3~4개 정도가 묶여있는 ‘블록’으로 수강신청이 가능하다. 학년별로 필요한 블록을 수강신청해서 이수하는 식이다. 성적평가도 블록별로 이뤄지는데 3~4개의 과목의 시험을 각각 응시하고 전체과목의 평균점수가 6점 만점에 4점 이상이 돼야 다음 블록으로 진학할 수 있다. 만일 한 블록에서 2회 낙제점을 받은 경우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 해당 학문에 대한 자질이 없는 학생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취리히공대에서 낙제 2회로 퇴학당한 경우 같은 전공으로는 입학이 불가능하다.

▲회의실 내부에 걸려 있는 그림. 공학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교육과정(커리큘럼) 결정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각 전공별로 12명 정도로 교육이사회를 구성하는데 교수, 교직원, 교육전문가뿐 아니라 3~4명의 학부, 대학원생들이 참여한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전공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교육이사회에서 논의된 사항이 전공교육과정에 반영되는 것이다.

세드릭(Cedric kliukestㆍ공학과 학생)군은 “첨단공학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학생들도 첨단공학분야의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수업을 개설해줬다”고 밝혔다. 헤그스트롬(Anders Hagstromㆍ국제교육국) 국장은 “교육 공급자와 교육 수요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교육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원하는 교육을 반영하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 학기 등록금 ‘80만원’… 한국의 반의 반값

▲도서관 열람실의 모습
취리히공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셔온’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
지난해 대학 통계를 기준으로 428명의 교수 중 70%가 외국인이며 17,187명의 학생 중 36%가 외국인학생이다.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 3,685명 중 65%가 외국인학생이다.
과거에는 유럽의 우수한 공학인재들이 이 대학을 선호했지만 점차 아시아와 미국의 우수한 공학인재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잘 갖춰진 연구 인프라와 연구시스템, 아낌없는 연구재정지원에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대학과 비교했을 때 ‘반의 반값도 안 되는’ 저렴한 학비도 큰 매력이다. 스위스 국민뿐 아니라 외국인 학생에게도 한 학기 등록금이 80~90만원 수준이다. 이는 학부생, 석ㆍ박사 과정 학생 모두 동일하다. 물론 스위스 정부의 재정지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편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학생이 많은 까닭에 영어강의 비율도 높다. 학부과정의 경우 독일어로만 진행되지만 석사과정 이상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헤그스트롬 국장은 “우수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수여한 학위가 국제학계에서 원활하게 통용될 수 있도록 학위시스템도 개편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독일식 학위시스템의 학ㆍ석사 통합과정과 같은 마기스터(Magister), 디플롬(Diplom), 박사과정 2단계로 구성되어있었으나 미국식 학위제도에서 착안해 학사과정(Bachelor)을 도입하고, MA(Master of Advanced Studies), Diploma of Advanced Studies, Certificate of Advanced Studies를 추가로 도입한 것이다.

세계최고 연구 지향 … 지원 아끼지 않아

▲캠퍼스 곳곳에 연구중이거나 연구가 끝난 장비를 전시해놓고 있다. 사진은 건물입구에 전시된 엔진
취리히공대는 △건축대학 △에너지과학대학 △자연과학/수학대학 △극동자연과학대학 △경영사회과학대학 등 5개 단과대학에 16개 전공(학과)으로 구성돼 있다. 각 전공에 따라서 세부 전공별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고, 연구소장은 연구원과 연구실에서 필요한 학생을 선발하고, 학교로부터 지원받은 연구소예산을 배분할 권한을 갖는다. 교수에게 연구와 예산에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다.

식물생화학실험실 이상규 박사는 “대학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연구소와 실험실을 구성원과 연구기기를 포함해 통째로 사오기도 한다”며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교수이기 때문에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취리히공대는 세계적인 연구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재정과 인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들도 취리히 공대에 오기를 선호한다”며 국제적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어있는 비결을 설명했다.

한 예로 뇌과학분야를 연구하는 디건연구소(Degen Lab)의 경우 2009년 미국 MIT대학에 설립됐지만 2011년 여름 취리히공대로 옮겨왔다. 취리히공대는 디건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MIT보다 좋은 연구조건 제공을 약속하고, 유치 후 성공적으로 안착하도록 연구원들을 미리 미국으로 파견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세계적인연구소 유치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삼고초려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학 인적 자원 및 인프라 부총장 로만(Roman Boutellier) 교수는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과학분야는 짧은 기간에 좋은 성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질 좋은 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며 “이러한 인프라가 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본관 건물 앞 광장에서는 취리히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은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
이러한 인프라와 혁신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취리히공대는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의 올해 ‘2012세계대학평가’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코넬대(14위), 스탠퍼드대(15위), 존스홉킨스(16위) 등 미국의 유수한 대학이 그 뒤를 잇는다. 특히 취리히공대는 이번 평가에서 영국대학을 제외한 유럽대학 중 최고 순위를 차지했다.

취리히공대가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세운 인프라가 큰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해외 우수 교수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과 세계최고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대학의 자존심과 구성원의 자부심이 세계적인 공학대학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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