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산악부 한라산 등반기

불의의 복병, 눈사태도 만나
못 잊을 백록담의 설경

  여러 가지 기술과 스테미나를 要(요)하는 금번 冬期(동기) 漢拏山(한라산) 등반에 대비하여 우리들은 제1차로 학교에서 10일간 축구 농구 등 구기 종목의 트레이닝으로 신체단련에 주력을 하였다. 그 다음으로 12월26일부터 30일까지 백운대에서 실시한 겨울 高山(고산)에서의 등반장비 사용법 등 다방면의 기초 트레이닝을 끝내고 지난 1월4일 서울을 출발하여 1월5일 19시40분 제주항에 입항하여 대망의 동계 등반은 시작되었다. 특히 이번 등반훈련의 意義(의의)는 본교 산악부에서 국내 최초로 <피켈>, <아이젠>과 <설피> 등을 직접 우리들 손으로 제작하여 山岳人(산악인)들의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그 새로운 장비들의 성능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알피니스트의 꿈이 항상 山(산)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자연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살아온 우리로서 특히 이번 등반을 통하여 눈 덮인 高山(고산), 그곳은 그 어느 다른 자연보다 우리를 조금은 미치게 하였다. 그래서 이번 등반을 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그날 그날의 메모형식으로 적어본다. ‘인간이 자연을 완전 征服(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극복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1월6일>
  제주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곳 산악회에서 특별히 주선해 준 트럭으로 우리부원들은 산천단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산천단에서부터 大地(대지)는 거의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곳에서 관음사까지의 초원지대는 白雪(백설)이 무릎까지 빠지는 황홀한 雪嶺(설령)이었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숲 사이의 러셀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먼저 발을 들여 놓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밤의 등반이 무리이긴 했으나 全(전)부원이 무사히 표고밭 지점에 도착한 것은 19시40분, 이미 지척을 분간 못할 깜깜한 밤이었으며 서울法大(법대) 산악부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그곳 표고밭은 여름에는 표고버섯 재배장으로 겨울에는 비어있기에 등산가들의 숙소로 적합했으며 그곳의 적설량은 1m였고 기온은 영하 4도였다.

  <1월7일>
  밤새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낮에도 계속 내렸다.
  우리들은 표고밭 지점을 베이스로 정하고 AㆍB파트는 계속 등행하고 C파트는 식품 서포트를 했으며 울창한 눈 숲을 계속 통과하여 탐라계곡에 도착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여름엔 그렇게 푸르고 무성했을 나무들은 눈 속에서 그 자태만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계곡을 끼고 행동한 우리들은 바람이 없어 무척 좋은 컨디션으로 등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험하기로 악명 높은 탐라계곡으로 등행하는 도중에 만난 능선과, 능선에서 계곡으로 쓸어내린 듯 쌓여있는 雪景(설경)은 쉽게 알프스나 킬리만자로를 연상시켰다. 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연의 신비에 도전하는 우리 알피니스트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며 보람이었다. 無人(무인)의 설원에 다만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등행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의 귀에 어디선가 겨울 까마귀의 심난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드디어 제1폭에 도착하여 그 아래에 캠프 I를 설치하고 C파트는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예상 외로 일기가 좋아 막영을 설치한 후 지형 정찰과 기상을 조사하다 보니 S대 문리대 산악부원들이 제1폭지점에서 급경사와 너무 많이 쌓인 눈으로 통과를 저지 받고 있었다.

  <1월12일>
  기온은 영하 12도, 밤새 폭설이 계속 쏟아졌으며 짙은 안개로 視界(시계)거리는 불과 20m 이내였다. 세게 불어 닥치는 乾雪風(건설풍)이 얼굴을 때렸다.
  A파트는 장군봉으로 훈련을 계속했고 C파트는 삼각봉 크라패스 도중 눈사태를 만났으나 스노우 스위밍으로 모두 무사했다. 눈사태는 항상 不意(불의)의 伏兵(복병)처럼 나타나서 위협하곤 한다.
  B파트는 윔파텐트를 치고 스노우하우스를 만들었으나 눈이 粉雪(분설)이어서 미완성에 그쳤다. 13일에는 서귀포로 갈 예정으로 밤에는 서울문리大(대) 산악부원들과 환송파티를 열었다.

  <1월13일>
  안개는 여전하였다. 4박5일의 용진각에서의 훈련을 무사히 끝내고 아쉬움을 안은 채 백록담으로 향했다. 우리들 뒤로 거리를 둔 채 약 60명의 적설기 등반대회참가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백록담에 오르니 마침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여 분화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전부원들이 글리세린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분화구 가운데로 빠져들어 갈 때의 통쾌감은 오히려 전율에 가까웠다. 한라산에서 마지막 막영을 설치했다. 밤에는 구름이 걷힌 하늘에 총총한 별무리를 볼 수 있었다.

  <1월14일>
  수림지대를 약 2시간 등행하여 남성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햇볕이 내려 쪼이는 雪山(설산)이 눈에 부시었다.
  계획대로 서귀포에 도착하였을 때 항구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곧 제주시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니 산의 생리와는 전연 다른 우리들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피부로부터 느껴지자 그 동안의 등반여정이 더욱 아쉬웠다.

  <1월15일>
  제주시에서의 하룻밤을 끝으로 오전10시 우리 全(전)부원들은 건강한 얼굴로 귀로에 올랐다. 철선 안성호의 약간씩 심해지는 롤링에 몸을 맡긴 채 항구를 벗어나면서 시야에 점점 멀어지는 흰 눈에 덮인 한라산이 보였다. 12일 동안의 등반훈련이 자꾸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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