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밤새도록 눈시울 붉히던
  당신의 內岸(내안)에서
  이랑 진 꿈을 거느리고
  떠나야겠네. 햇물을 담아
  영양분 많은 손길로
  고단한 몸을 씻어주다
  食卓(식탁) 위에 등불 꺼지듯이
  쓸려간 하늘의 어둠
  살별떼의 높이를 재며
  잠드는 당신의 눈썹에서
  남몰래 입김을 접어두겠네.

  희부연 달빛을 헤치는
  들판의 숲속에다
  우리의 사랑을 감춰두고
  떠나야겠네, 잎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반짝이는
  憐憫(연민)의 목덜미를 비추다가
  살포시 옷깃을 여미는
  풀벌레의 느린 울음 속으로
  구름자락을 잡아넣고
  호젓한 당신의 寢牀(침상)에서
  머리칼 날리며 바라보겠네.
  외투에 스치는 마른 잎
  당신의 뜰 위를 뒹구는
  지나간 우리의 숨소리를
  울타리를 따라가는 수레의
  억새풀 사이로 흔들리는
  우리의 여윈 그림자를
  떠나야겠네, 보금자리를 쫓는
  새끼새들의 나래 속으로
  죽음이 한 눈을 파는 때
  땅을 젖게 하는 바람의
  메마른 살결을 만지며
  맑음을 찾아 떠나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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