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편집장도 지낸 최고령자

  68학년도 졸업생 중 수석을 차지한 高翊晋(고익진)(36ㆍ佛敎科(불교과))군은 最高齡者(최고령자)로도 話題(화제). 전 학과 평균 92.7로 영광을 차지한 그는 “晩學(만학)의 착잡한 심정 때문에” 담담한 기분. 그러나 10여년간 자기를 도와주고 아껴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이상 바랄 것이 없단다.
  光州市(광주시) 무등산 所在(소재) 光勒寺(광륵사) 주지인 金如華(김여화)(62)여사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光州西中(광주서중)과 光州高(광주고)를 거쳐 全南(전남)의대에 진학했으나 身病(신병)(복막염)으로 학업을 중단코 입원, 10여 년간을 휴양으로 보냈다.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도 병원에서 보게 되는 인간의 生老病死(생로병사)문제에 회의를 가지게 된 것으로 비롯되었다는 것. 퇴원 후에 절에서 정양하면서 불교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65년 몸이 완쾌하자 본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英字新聞(영자신문) ‘동국ㆍ포스트’의 초대 편집장을 지낸 그는 ‘포스트’를 본궤도에 끌어올리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고, 그래서 이름보다 ‘高(고)형’으로 널리 알려진 人物(인물)이기도 하다.
  “학문엔 늦고 빠름이 없기 때문에 나이도 학문연구의 장애가 될 수 없다”는 高(고)군은 대학원에 진학, 한국불교를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또한 生活人(생활인)의 불교에서 기반을 닦고 자기의 일생을 불교연구에 바칠 각오도 남다른 것.
  4년간 기숙사 생활에서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의 얻은 것이 많았다면서 일학년 때 나이 어린 상급생에게서 <빳다>도 많이 맞았으나 그들이 자기한테 찾아와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상의도 하는 ‘카운셀러’역할도 해왔다는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아직 미혼인 이유는 “결혼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공부에 정신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성만 나타나 준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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