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시문학 발전에 고무적 ‘시집’발간ㆍ‘시인상’도 추진

  ◇…韓國文壇(한국문단)에서 가장 우람한 山脈(산맥)을 이루고 있는 本校出身(본교출신) 詩人(시인)들의 모임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가 그동안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발족하였다. 이러한 모임의 결성은 東國文學(동국문학)을 위한 自祝(자축)의 뜻도 되겠으며 더 나아가서는 東國詩文學(동국시문학) 成長(성장)의 道程(도정)과 오늘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整理(정리)의 계기가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예술적 창작활동에 있어서 활동과 그 성과를 객관적인 數値(수치)로만 측정할 수만은 없겠으나 詩文學(시문학)에 있어서 유난히 풍성한 개화를 본 東國文學(동국문학)의 발상은 한국의 新文學(신문학)발상과 그 시점을 같이 하여 왔다. 그것은 처음 韓龍雲(한용운)의 출현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은 그 때 신문학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대로 이 땅 초기 문단에 하나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더욱 불교적 휴머니즘을 배경으로 한 東國(동국)의 초기 문학의 사조적인 흐름은 그대로 동국문학의 하나의 전통적 개념으로서 중앙학림, 佛專(불전) 또는 東國大學(동국대학)이라는 하나의 에꼴이 형성되어 온 우발적인 체제라기보다, 그 속에 오래 발효되어 나온 필연적인 윤곽이라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처음 講院(강원)출신 승려 詩人群(시인군)에서부터 胚胎(배태)되어 중앙佛專(불전)의 퇴폐적이요 회의적인 학생詩人群(시인군)에 의하여 일단 그 면모를 정비하고 이어 해방 후의 혼란기에 다시 부닥치게 되었으나 이 무렵 벌써 그 思潮(사조)는 참신한 문학적 스타일을 마스트하였으나 이때부터 종래의 개념詩(시)는 마침내 文學作品(문학작품)으로서의 그 허울을 벗고 나온 것이다.
  이것은 해방 후 東大文學(동대문학)에 와서 얼마간의 亂脈(난맥)을 이룰 수밖에 없었으나 ‘東國學生詩集(동국학생시집)’의 第(제)1集(집)이 異河潤(이하윤) 서문에 鄭雲三(정운삼)편집으로 1949년 5월에 창간되면서 다시 現代文學(현대문학)의 特性(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流波(유파)로서 그 焦點(초점)을 스스로 集約(집약)하는 기운을 보였다.

  그러나 東國詩壇(동국시단)은 6 ․ 25로 일단 空白期(공백기)를 맞았으며 환도 후 53年(년)에 ‘東國詩集(동국시집)’ 제2집을 내면서부터 7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나오다 제8집에서 3년 쉬고 9집이 다시 62年(년)에 나오더니 그 후 자취를 감추었다. ‘東國詩集(동국시집)’은 그동안, 거의 每輯(매집)마다 作品(작품)을 발표한 10여명씩의 同門詩人外(동문시인외)에 廷(정)백81명의 學生詩人(학생시인)이 등장하여 총 422편의 作品(작품)을 싣고 이것을 바탕으로 나온 詩人(시인)이 백6명을 헤아린다.
  詩人(시인)의 量(양)이 반드시 詩(시)의 質(질)에 비례하는바 아니겠으나 東國(동국)의 전통적 요소에서 文學(문학)- 그 중에도 특히 詩文學(시문학)을 빼놓을 수 없고 東國文學(동국문학) 내지 韓國詩(한국시)의 중요한 部面(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상에서 요약해본 東國文學(동국문학) 내지 東國詩(동국시)의 전통을 생각할 때 지난 5월24일 그 發足(발족)을 본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는 文學東國(문학동국)의 입장에서나 韓國文學(한국문학)의 관점에서나 적이 鼓舞的(고무적)이며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 會則(회칙)
  <제1條(조)> 이 會(회)는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라 稱(칭)한다.
  <제2條(조)> 이 會(회)는 서울에 둔다
  <제3條(조)> 東國大學校(동국대학교) 출신 詩人(시인)의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 東國(동국)의 詩文學(시문학)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제4條(조)> 이 會(회)는 ‘제3조’의 目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의 事業(사업)을 추진한다.
  ①會誌(회지) ‘東國詩集(동국시집)’ 발간
  ②‘東國詩人賞(동국시인상)’제정
  ③기타 모교 발전을 위한 행사
  <제5條(조)> 이 會(회)의 회원은 東大出身詩人(동대출신시인)(東大出身(동대출신)과 ‘東國詩集(동국시집)’에 收錄詩人(수록시인))과 東大(동대) 在學生(재학생)으로서 詩壇(시단)에 登壇(등단)한 者(자)로 한다.
  <제6條(조)> 이 會(회)에는 다음과 같은 任員(임원)을 둔다.
  ㉮會長(회장) (1명)
  ㉯副會長(부회장) (2명)
  ㉰總務幹事(총무간사) ․ 涉外幹事(섭외간사)(각 1명)
  ㉱幹事(간사)(약간 명)
  ㉲편집위원(약간 명)
  ㉳監事(감사)(2명)
  <제7條(조)> 이 會(회)에는 명예회원을 둘 수 있다.
  <제8條(조)> 이 會(회)의 회원은 이 會(회)를 代表(대표)한다.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고 회장 有故時(유고시)에는 그 직무를 代行(대행)한다.
  <제9條(조)> 이 會(회)의 정기총회는 매년 5월初(초)에 회원 3分(분)의 1이상의 참석으로 개최하며 회칙개정, 임원개선, 豫算(예산), 決算(결산)의 심의, 사업계획 등을 의결한다. 또 회장은 任員(임원)회의에서 필요하다고 결정할 때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제10條(조)> 임원회의는 會長團(회장단)과 幹事(간사)로 성립된다.
  <제11條(조)> 회장, 부회장 監事(감사)는 총회에서 選出(선출)하고 幹事(간사)는 會長團(회장단)이 이를 선출한다.
  <제12條(조)> 이 會(회)의 경상비는 회비, 찬조금, 사업이익금으로 한다.
  <제13條(조)> 이 會則(회칙)에 明示(명시)되지 않은 것은 通常慣例(통상관례)에 따른다.
  이 會則(회칙)은 1969年(년) 5월26일부터 효력을 갖는다.
  ◇任員名單(임원명단)
  ▲會長(회장)=徐廷柱(서정주)
  ▲副會長(부회장)=章湖(장호)ㆍ黃明(황명)
  ▲編輯委員會(편집위원회) 委員(위원)=徐廷柱(서정주)ㆍ章湖(장호)ㆍ李炯基(이형기)ㆍ黃明(황명)ㆍ李昌大(이창대)ㆍ宋赫(송혁)
  ▲幹事(간사)=宋赫(송혁)(總務幹事(총무간사)), 李東淵(이동연)(涉外幹事(섭외간사)), 高英(고영), 具慶書(구경서), 金思林(김사림), 南九峰(남구봉), 浪承萬(낭승만), 文孝治(문효치), 朴堤千(박제천), 宋(송)석來(래), 申基宣(신기선), 尹明(윤명), 李東柱(이동주), 洪禧杓(홍희표), 黃命(황명)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會員(회원)명단>
  姜敏(강민) 姜信鶴(강신학) 姜泰烈(강태열) 姜薰求(강훈구) 姜熙根(강희근) 高英(고영) 高遠(고원) 具慶書(구경서) 具永範(구영범) 金光煥(김광환) 金光會(김광회) 金圭和(김규화) 金南雄(김남웅) 金達鎭(김달진) 金頓植(김돈식) 金東俊(김동준) 金炳攝(김병섭) 金秉顯(김병현) 金思林(김사림) 金尙憶(김상억) 金先現(김선현) 金時泰(김시태) 金魚水(김어수) 金龍福(김용복) 金容喆(김용철) 金元來(김원래) 金潤(김윤) 金臍顯(김제현) 金義岩(김의암) 金仁圭(김인규) 金仁淑(김인숙) 金載燮(김재섭) 金鍾元(김종원) 金昌壎(김창훈) 金哲(김철) 金初惠(김초혜) 南九峰(남구봉) 南斗植(남두식) 浪承萬(낭승만) 馬鍾河(마종하) 文允鎬(문윤호) 文孝治(문효치) 閔雄植(민웅식) 朴國遠(박국원) 朴烈我(박열아) 朴(박)항植(식) 朴貞姬(박정희) 朴堤千(박제천) 朴辰燮(박진섭) 朴進旲(박진대) 朴鎭煥(박진환) 朴好吉(박호길) 朴孝來(박효래) 史相烈(사상열) 徐龍雲(서용운) 徐升海(서승해) 徐廷柱(서정주) 石東涯(석동애) 石凡鎭(석범진) 宋東均(송동균) 宋油夏(송유하) 宋晳來(송석래) 宋赫(송혁) 申庚林(신경림) 申基宣(신기선) 申癸湜(신계식) 申璸均(신빈균) 辛夕(신석)정 辛良美(신양미) 嚴漢晶(엄한정) 余尙榮(여상영) 吳化龍(오화용) 柳基萬(유기만) 柳承謹(유승근) 劉麟鎬(유린호) 尹明(윤명) 尹錫浩(윤석호) 李圭成(이규성) 李德珍(이덕진) 李東淵(이동연) 李東柱(이동주) 李丙疇(이병주) 李相寶(이상보) 李石(이석) 李世熙(이세희) 李愚碩(이우석) 李祐鍾(이우종) 李禹出(이우출) 李元燮(이원섭) 李林柱(이림주) 李在福(이재복) 李鍾出(이종출) 李昌大(이창대) 李賢雨(이현우) 李炯基(이형기) 李哲範(이철범) 林基源(임기원) 林守鍾(임수종) 林燻(임훈) 張河醒(장하성) 章湖(장호) 全榮弼(전영필) 田鍾順(전종순) 鄭先伊(정선이) 鄭恩培(정은배) 鄭義泓(정의홍) 鄭芝河(정지하) 曺秉武(조병무) 趙商箕(조상기) 趙宗玄(조종현) 曺允鎬(조윤호) 趙漢吉(조한길) 陳仁澤(진인택) 千聖雨(천성우) 崔慶子(최경자) 崔基善(최기선) 崔英植(최영식) 崔元(최원) 崔元植(최원식) 崔載福(최재복) 崔載浩(최재호) 崔(최)휘林(림) 韓何均(한하균) 호영송 洪申善(홍신선) 洪禧杓(홍희표) 黃甲周(황갑주) 黃命(황명) ‘가나다順(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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