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위 호모루덴스, 별이 쏟아진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름다운 가을의 정점, 시월의 마지막 날이면 마음 깊이 들려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시월의 마지막 날이면 번개미팅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니 함께 놀자고. 놀라운 대중문화의 마력이다. 어떤 날 누군가를 만나 같이 놀고픈 욕망. 그건 삶의 본질인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정신이다. 예술 역시 고달픈 삶에 살아갈만한 에너지와 용기를 주는 놀이이다.

이번 시월의 마지막 날 밤,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난다. 앙상한 철탑이 버티고 있는 틈새로 달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별이 보인다. 누군가 철탑 고공에 올라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찍은 절묘한 구도의 이미지다. 학생 친구가 그걸 보여주며 말한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이 분은 호모루덴스예요!” 평소 ‘호모루덴스로 살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다니는 나를 보좌해 주는 윤경의 감탄이다.

영화 속에 나오기에는 고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불가능한 시월 밤의 철탑 이미지는 또 다른 싯구를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을 즐기는 가슴 저려오는 시, 교과서에도 나오는 국민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한 대목.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독립운동을 한 죄로 악명높은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서도 시를 쓴 윤동주는 슬플수록, 괴로울수록 노래하는 호모루덴스로 사는 기술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시월의 마지막 밤, 철탑 속 쏟아지는 별들을 우리에게 보내준 호모루덴스는 최병승이다. 철탑 위 15미터. 그보다 높은 20미터 고공에는 천의봉이 올라가 있다. 한 평도 채 못돼는 널빤지 위, 몸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묶고 법원의 판결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고공농성하는 그는 하늘과 별과 달을 벗삼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삶의 본질인 놀이정신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숨고르며…. 그가 건강하게 잘 있다는 트윗 메시지, 하늘과 땅 사이에 걸려 마치 巫(무)처럼 우리에게 루덴스 이미지를 보내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 외에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일단 이 글을 써 여러분과 나눠본다. 그리고 다시 이미지를 보노라면 무얼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모금도 하는 이화여대 총학생회 소식을 막 전해들었다. 자신의 스펙쌓기에만 몰입하는 대학생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회 환경이 곧 자신의 삶의 조건인 걸 깨닫고 실천하는 대학생이 있으니 아직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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