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노조 교사의 번민과 학생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이젠 싸우겠습니다. 애들이 가르칠 권리를 주는 한…”
진실한 우리―민주적인 교실―정의로운 학교로

  교정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평상시였더라면 1교시 수업을 막 끝낸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밤 동안 잔뜩 웅크렸던 교정을 늘신하게 두들겨 패고 있을 시간이었다. 옹송그리고 걷던 염규홍 선생은 두 손을 파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양쪽 어깻죽지만 뒤로 재꼈다 폈다. 그 바람에 빠져나갈 뻔했던 원고봉투를 추슬러 그는 왼쪽 겨드랑이 깊숙이 꼈다.
  “염선생! 이거 꼭 실어야 겠어요?” 그저께 일학년 학급문집 건 때문에 교장실에 갔을 때 김 교장이 원고뭉치를 염규홍 선생 쪽으로 팽개치며 내뱉은 소리였다.
  “예?”
  집히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뭘 가지고 그러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교장이 내던진 원고뭉치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먼저 <편지모음>이란 항목과 <선생님 재돌이네 집에 경사 났대요>란 제목이 단숨에 읽혔다.
  5반 호진이가 지난 7월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정택규 선생에게 써 보냈던 글이었다. 모 일간지에 실렸을 만큼 ‘잘된’ 글이었다. 교내 동물원의 원숭이 부부인 재돌이네가 새끼 낳은 소식을 적은 글이었으므로 내용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글이 교원노조 분임장인 정택규 선생에게 보냈던 글이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 외의 원고들도 거의 전교조에 관련되어 해직된 교사에 관한 글이었다.
  “이제야 겨우 수습이 됐는가 싶었는데 말이야 응? 이따위 걸 바득바득 책으로 묶어내겠다는 심보는 뭐요? 나부터도 이걸 읽는 순간 마음이 언짢아 지던데 어린애들이야 오죽하겠소. 그렇잖아도 그때 생긴 수업결손 때문에 입시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수선을 내년까지 연장하겠다는 의돈 대체 뭐냔 말이오?”
  널브러진 원고뭉치에서 떨어진 염규홍 선생의 시선이 허둥대는 것을 보며 김교장은 그가 안 돼 보인다는 투로 뒤이어 말했다.
  “읽어서 애들한테 이로운 것들만 골라 실읍시다. 응?”
  김교장이 자신의 <입시와 여린 애들 중심의 교육방침>에 대해 훈시할 때마다 여지없이 찾아드니 곤혹스러움은 여전히 그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교장은 교사에게 ‘명’하여 학생을 교육시킨다는 교육법조문은 그를 ‘권위적’이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권위 그 자체’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염규홍 선생은 단지 성급하고 미숙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는 햇내기처럼 수줍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떡하겠어요… 이거 빼는 겁니까!”
  김교장은 냉담하게 내뱉고 나머지 원고들을 염규홍선생쪽으로 밀어주었다.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모레 다시 오겠습니다”
  “좋도록 해요”
  염규홍 선생은 원고를 주섬주섬 챙기며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작년에 학급급훈 때문에 교장의 지도를 받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염규홍선생은 그의 반 수업 중이었다. 교단에서 책을 읽다 그는 교장이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간혹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교실 순시 중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본 즉시 해당 교사를 불러 수정할 것을 요구하곤 했던 것이다. 교실에서 그가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교장은 대뜸 물었다.
  “저 급훈 염 선생께서 직접 지으신 것인가?”
  그는 창 너머 급훈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창 너머에선 <진실한 우리, 민주적인 교실, 정의로운 학교>라는 급훈이 좁은 액자 안에서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급훈은 아이들의 생각을 아이들이 다듬어 놓은 것이었다. 교장은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렇게 덧붙였다.
  “거 무슨 운동권 구호 같지 않아요?
  또 너무 길어. <정직> 하나면 되지 않겠어요. 학생이 정직하지 않으면, 민주적인 교실도 정의로운 학교도 못되는 거 아니겠어요“
  결국 불손했던 급훈은 <정직>하나로 순화되었었다. 염규홍 선생은 아이들이 써 걸었던 그 급훈을 내리고 교장이 하사한 급훈을 걸었듯이 또 다시 교장이 골라낸 원고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글들을 뺀 채 교장이 골라 준 글로만으로 문집을 엮어 낼 수는 없었다.
  3학년인 듯한 학생들 몇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를 앞질러 갔다. 전기에 자신 없는 학생들은 벌써 후기 대학교 경쟁률이나 합격선을 알아보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는 본관으로 통하는 길을 버리고 문예반이 있는 건물로 통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정택규 선생이 생각 같아선 2학년, 아예 3학년까지 문집을 만들도록 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년, 내후년으로 미루자며 우선 1학년이 문집을 만들 수 있게 함께 애써보자고 했을 때만해도 그는 회의적이었다. 과연 그렇게 될까하는 반문이 목울대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그 반문은 교직이 전문직이냐 아니냐를 시험지위에 끄적여대던 대학시절과 기부금 기탁여부에 의해 채용여부가 결정되곤 하던 기억이 키워온 교사의 자율성이라는 것에 대한 불신감이 중얼거린 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신은 아이들의 급훈을 버리고 교장의 급훈을 내걸면서 주문처럼 터져 나온 굴욕감을 끌어 모아 가슴 한 켠에 급조해두었던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는 정택규 선생과 함께 아이들의 문집을 만들면서 깨달았다.
  언젠가 정택규 선생이 원고지 몇 장을 그에게 내밀며 싱글거렸다.
  “염 선생님,
  작년에 교장선생님이 급훈 지어주신 적 있어요?
  이 녀석 그게 서운했나 봐요”
  작년 그가 담임이었던 반 아이가 쓴 글들이었다.
  ‘………
  선생님은 왜 우리와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만든 급훈을 떼어 내셔야 했을까? 평소에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급훈이었는데 쓰레기장 어디엔가 버려져있을 그 급훈이 가끔 생각난다…’
  ‘……
  때때로 복도 쪽 유리창을 꿰뚫고 들어온 교장ㆍ교감 선생님의 싸늘한 감시의 눈초리와 마주치고 나서 선생님이 소스라치며 고개를 움츠릴 때 마다, 우리들이 만들어 건 급훈이 선생님 손으로 내려지고 교장 선생님이 지어주신 급훈이 교단위에서 으름장을 지를 때마다, 인형극처럼 되풀이 되는 연구 수업이 있는 날이면 우리는 의자에 앉은 인형 같고 선생님은 교단에 선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어른들은 학교를 인형들의 진열장쯤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일까…….’
  그는 그 글들을 다 읽고 씁쓰레하게 웃어보았지만, 왠지 쓴 웃음만으로는 얼버무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한 켠에 견고하게 둥지를 틀고 있는 그 불신이라는 허상을 탈탈 털어 내야한다는 생각이 취기보다 빠르게 그의 머릿속을 점령했을 때는 그날 저녁 정택규 선생이 마련한 술자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염 선생님! 내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해야 겠습니다”
  좀 의기소침해있던 그는 게슴츠레한 눈을 애써 거들떠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예 그렇죠 교장의 명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쳤고 또 그럴 수밖에 없지 않냐고 생각했었습니다.
  염 선생님도 그러지 않었었습니까?”
  정 선생 역시 그가 취한 만큼 취해있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학교를 때려치우려고 했었습니다. 교장의 꼭두각시 노릇이 신물이 났던 거죠. 예 지치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싸우겠습니다. 애들이 저한테 뭔가 배울게 있다고 믿는 한 말입니다. 애들이 저한테 가르칠 권리를 주는 한 말입니다. 애초부터, 우리가 교장의 명령을 받아 가르치지 않았고, 또 그럴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학교가 군대는 아니니까요. 만일 우리가 받들어 모셔 와야 할 그 명령이란 게 있다면, 그게 가르칠 권리이고 의무라면 그건 애들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걔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문예반은 썰렁했다. 아이들이 오려면 아직도 삼십여분이나 더 지나야했다. 이제 그들은 교장이 허가해준 원고들만 문집으로 묶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제 그가 교장의 결정을 그들한테 전했을 때 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말을 듣고 싶었다. 교장이 허가하지 않은 글들은 그들의 글이었고 그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교장의 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듯 했다.
  그는 겨드랑이에 꼈던 원고봉투를 빼내어 책상위에 놓았다. 그는 이제 그들이 포기한 원고를 꾸리며 그를 찍어 누르는 무기력을 향해 이를 악물었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밤새워 꼼꼼히 읽었던 것이다. 그는 최악의 경우엔 교장이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결코 그 원고들을 빼지 않을 것임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바로 뒤따르는 의문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문집발간이 아니지 않는가? 그는 그 의문은 일단 유보하기로 하고 교장실에 가기 위해 막 일어섰을 때 누군가 문을 열었다. 호진이었다.
  “응 빨리 나왔구나”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말해봐 뭔데”
  “어제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 다시 결정한 건데요. 우리들이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시면… 그 원고만 따로 만들기로 했구요.”
  “그래? 그럼 선생님도 그냥 물러서면 안 되겠구나. 자 이리 와서 이 원고들을 본래 제자리에 끼워 넣자”
  그는 굳이 교장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교장과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은 글을 쓸 것이며 그것을 문집으로 묶어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는 대로 교장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생각과 몸짓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부추겨주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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