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자주의 올바른 평가와 진군을 위하여

학생회체계 이완현상이 대중적 결합 실패 요인
투쟁성격규정 미흡으로 무원칙한 학자투 전개
현 정권의 학원침탈 제대로 분쇄하지 못해

  1. 글을 시작하며
  동악의 학원자주화 투쟁(이하 학자투)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적 총장선출이라는 학우들의 커다란 관심과는 일견 모순되게도 전개된 동악의 학자투는 지난 10일 교수총회의 무산으로 인한 총장 선출의 연기와 방학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금도 이사장실에서의 농성이 전개되고 있지만 대중적 전개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지금의 무기력감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동악의 현실을 외면한다면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은 독재정권과 부정ㆍ부패세력의 횡포에 난자질당한 우리의 학원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교착상태에 빠진 총장선출에 대해 부정ㆍ부패세력의 움직임도 중요하며 이지관 후보의 사퇴 후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시기 우리에게 더욱 더 중요한 임무는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동악의 학자투를 명확히 평가, 반성함으로서 학자투 몰락을 읊조리는 상태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학우들의 패배감을 투쟁의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망으로 불식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학자투의 평가와 전망을 고민함에 있어 견지해야 할 원칙적인 관점을 제기함으로써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를 몰라 하는 동악의 학우들과 함께 평가와 전망과 투쟁을 고민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여기의 89년 학자투 평가는 현재 진행되는 투쟁의 한계와 위치를 분명히 진단하고 학자투 전개의 최소한의 기본적 관점을 잡아내기 위함이며, 보다 풍부한 총체적 평가는 이후 학생회 활동의 전면적인 평가 속에서 가능함을 미리 밝혀둔다.

 
  2.학자투 평가의 총체성 획득을 위한 기본적 관점
  (1)학자투의 의의
  학원의 제반모순은 신식민지 파쇼체제의 본질적 모순이 학원에 관철되면서 나타난다. 따라서 학자투는 학원에 관철되는 지배계급의 파쇼지배질서를 끊어냄으로서 전체변혁운동에 복무하는데 본질적 의의가 있으며, 향후 대중 스스로가 투쟁의 과정에서 사회 본질적 모순에 대한 자각과 변혁운동에의 주체로 참여하는데 있다.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학을 지배이데올로기 확대재생산의 기지로 만들기 위한 지배계급의 음모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으며 그 결과 각종 교육악법과 반민주적 교육내용, 학교 행정체계 및 학칙의 비민주성, 어용교수의 양산 등의 조건에서 학원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은 지속적인 고통과 소외를 당해왔다. 이러한 학원의 억압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청년학도들의 학원민주화의 노력이 현재와 같이 정치투쟁의 헌신적 수행과 함께 학생회 활동의 양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학자투의 성격
  여기서 학자투의 성격을 명확히 하려함은 도식적으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류하면서 정치투쟁=중요함, 경제투쟁=덜 중요함을 말하려 함이 아니라, 기존 동악의 학자투가 그 투쟁의 성격을 애매하게 규정함으로서 야기되는 투쟁의 무원칙한 전개를 바로 잡으려 함이다. 일반적으로 투쟁의 성격은 그 투쟁이 파괴하는 계급적 성격과 범위, 그리고 새로이 ‘건설’되는 것의 계급적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학자투의 성격은 학자투가 파괴하는 범위수준과 새로이 ‘건설’된 학원이 갖는(‘소위’자주화된 학원이 갖는)계급적 성격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
  즉 학자투의 제반 과제인 8개항 쟁취와 민주총장추대, 재단혁신 등(소위 인적, 물적, 사상적 구조의 혁신)은 결코 남한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해결하는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본질적 모순의 결과로서 나타나는(자본가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정부의 교육투자 외면 등) 문제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경제투쟁이다.
  이러한 학자투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우리의 올바른 투쟁의 출발점이다. 첫째로, 학자투의 정치적 한계성을 명확히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학생회 간부들의 목적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둘째로, 일반적으로 경제투쟁이 목적하는 학우들의 단결, 투쟁, 승리를 위해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3)동악의 학자투 전개 속에서 제기되는 관점
  총장 선거의 과제를 요구받았던 89년 동악의 학자투는 8개항으로 대변되며 학자투의 지향점의 토대를 제도적으로 제기함으로서 남한 사회 대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었던 작년 투쟁의 긍정성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투쟁에 있어 학우들과의 내용적 결합력 미비와 무원칙한 대중 투쟁의 전개라는 작년 투쟁의 부정성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객관적 임무를 요구받았다.
  즉 89년 동악의 학자투가 ‘교과과정 위원회’를 중심으로 3자연석회의, 학칙개정 소위원회를 실제적으로 강화, 학우들과 내용적으로 결합하고 이 과정에서 성장하는 학우들의 자주적인 진출을 민주총장추대투쟁으로 결집시켜 내었어야 한다는 89년 학자투의 과제를 명확히 하여야 했다.


  3.89년 학자투 평가(Ⅰ)
  앞서 언급한 학자투 평가와 전망에 있어 견지해야 할 기본적 관점은 89년 학자투 평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1)학자투의 의의 속에서 제기되는 과제
  학자투는 전체 변혁운동의 수행에 복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학생회 간부들은 학자투의 전개과정에서 학우들에게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의식적 활동을 전개함으로서 지배이데올로기 확대재생산이라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분쇄, 전체 변혁운동 진출에 기여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동악의 학자투는 끊임없이 그 내용성이 축소되어 왔으며, 일상적이고 생생한, 내용적으로는 학우 대중들과의 결합에 실패함으로 대중적 투쟁의 원동력을 스스로 갉아 먹고 말았다.

  (2)학자투의 성격 속에서 제기되는 과제
  단결ㆍ투쟁ㆍ승리라는 경제투쟁의 목적성에 비추어 볼 때 89년 동악의 학자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즉 학자투는 구체적인 쟁취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대중적 투쟁으로 쟁취를 실현할 때 학자투의 발전적 전망을 실현할 수 있다. 즉 경제투쟁에 있어 핵심적 문제는 투쟁의 구체성이다. 그러나 89년 1학기 재단투쟁, 2학기의 민주총장 추대투쟁을 전개함에 있어 학생회의 최고 간부들, 기층 간부들조차 투쟁의 구체적 목표와 의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추상적 목표만을 제기하였으니, 투쟁의 계획성은 불가능하였다. 또한 학자투가 대중투쟁이라는데 있어 학자투의 올바른 지도 내용 마련은 학우들과의 민주적인 의사교류 속에서 학우들의 요구가 결집되었어야 했는데 89년 학자투의 전개 속에서 학우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당위적인 내용조차 공개되지 못함으로 인해 대중적 진출을 불가능하게 했던 점 역시 명확한 평가 속에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3)동대 학자투의 역사성에서 제기되는 과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교과과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학우대중들과의 내용적 결합력 강화와 이러한 대중적 결합력이 민주총장 선거로 결집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과제의 총체적 인식의 부재는 여러 투쟁이 상호 단절적이고 고립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총장선거 투쟁에의 과도한 집중과 총장선거 투쟁에 여타 투쟁이 종속됨으로서(소위 일괄타결)총장선거만 잘되면 모든 학자투의 과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모험주의적인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4.89년 학자투 평가(Ⅱ) 
  학생회를 민주적으로 개조하려는 많은 노력들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들 속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정착하였다. 학생자치조직인 학생회를 강화하는데 있어 중심은 학우들의 민주적 의사 수렴과정(이를 가능케 할 민주적 제도)과 이를 통한 학생자치권력으로서 학생회의 자리매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자투에 대한 평가와 방향설정도 이러한 학생회 운영의 일반적 원리 속에서 모색되어질 때 더욱 더 올바른 모색이 될 것이다.

  총학생회와 학자투위원회
  88년 학자투 과정에서 학자투의 안정적 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학자투의 정책과 준비, 집행에 이르기까지 상대적 전문성을 담보할 학자투 조직의 건설과 총학생회, 과ㆍ단대학생회와의 밀접한 결합력 강화는 대중적으로 요구 받게 되었으며 이에 동악의 학자투 위원회가 힘차게 건설되었다.
  이렇게 건설된 학자투위원회가 제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우들의 풍부한 이해와 요구를 결집시켜 내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할 전제조건은 첫째, 과차원까지의 학자투위원회의 대중적 골간체계의 완비와 둘째, 학자투위원회와 학생회와의 유기적 결합이다. 그러나 올해 학자투 전개 과정에서 학자투 골간체계의 하층으로부터 상층으로의 건설은 구체적 실현방도 마련계획의 미비와 학생회 간부들의 배려 부족 속에서 이루어 지지 못하였다. 이와 함께 더욱 중요하게는 연초부터 자행된 노태우 정권의 민중운동 진영에 대한 전면적 탄압과 학원침탈에 투쟁으로 대응, 분쇄하지 못함으로 비롯된 학생운동 진영의 급속한 침체는 동악의 학생회 체계의 심각한 이완을(학생회 활동의 두 축인 정치투쟁 체계와 학자투위원회의 확고한 조직적 구축 및 구체화의 부재는 이러한 학생회 체계의 이완을 장기화 시키고 있다) 가져왔으며 결과적으로 총학생회와 학자투 위원회의 유기적 결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학자투의 대중적 결합ㆍ실패의 요인이 되었다.
 
  교수ㆍ학생의 굳건한 연대
  학자투의 지향은 교수와 학생이 학원의 주체로 우뚝 섬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말로써가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의 마련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학자투 수행과정에서 교수님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견지되어야 할 원칙이다.
  이점을 분명히 하고 올해 학자투의 전개 속에서 제기된 문제를 살펴보자.
  89년 학자투 과정에서 교수님들과의 연대의 측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첫째, 작년 학자투 과정에서 총장의 날인까지 받아냈던 ‘교과과정 위원회’의 보장이 위로는 총장에서 아래로는 과(科)의 교수님에 이르기까지 부정당하였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2학기 총장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던 의견대립을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진군을 위해서는 단순히 “아! 우리가 왜 교수들과의 연대를 확보하지 못하였지?”하는 한탄도, “과에서부터 교수님들과 만나서 우리의 의사를 정확히 알려드리자!”라는 무원칙한 결합으로도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우리가 교수님들과의 연대를 확고히 하기위해 견지해야할 관점은 첫째, 교수와 학생간의 굳건한 연대는 “사상적 동질성”에 기초할 때만이 가능하며, 올바르다는 점이다. 흔히들 학자투의 지향점을 진보적인 국가에서의 “교수ㆍ학생평의회”에서 모범적 예를 찾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 국가에서의 ‘교ㆍ학 평의회’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사상적 동질성”에 기초하고 있다라는 점은 간과한 채 그 형식적 틀만을 중시하는 경향은 안정적인 교수ㆍ학생간의 연대를 결코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바로 몇 년까지도, 아니 지금도 대학의 교수들이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교과과정 위원회’의(아직은 한계가 많지만) 의미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둘째, 교수들과의 연대는 학생들의 일치단결된 대오를 형성할 때에만 가능하다. 교수들과의 협상(?)도 대화도 우리의 힘이 없이는 환상이었음을 짧은 동악의 학자투 과정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89년 학자투에서 실패했던 교수와의 연대도, 위의 두 가지 관점으로부터 힘차게 출발하여야 한다.
  한 손엔 사상적 진보성을!
  또 한 손엔 1만동악인의 단결된 힘을!
  우리는 이상의 검토 속에서 총학생회의 학자투에 있어 지도력의 한계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그 윤곽이나마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투쟁의 관점과 원칙을 확고히 하지 못함으로 인해, 학생회 골간을 이용 대중투쟁적(민주적)관점을 확고히 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학우대중들과 공유되지 못한, 공개되지 못한 채 학자투를 진행하려는 음모적 작풍은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독재권력은 보수야당과의 기만적 야합으로 80년대의 고통을 잊으라고 한다.
  민중운동진영에 대한 대탄압을 선포한 채 희망찬 90년대를 논하고 있다.
  동악의 열혈청년학도여!
  해방된 학원의 건설은 해방된 사회의 건설 속에서만 가능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하자.
  한손엔 동악일만학우의 염원을 모아 학자투의 진군을!
  또 한손엔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기층 민중과의 더욱 더 굳건한 연대 투쟁으로…,
  90년대엔 잃어버린 학생운동의 歷史的(역사적)지위를 다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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