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현실 담담히 그려내

  80년대에 들어 만화는 만화전문지의 등장, 서점판매용 단행본의 출간 등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만화에 대한 호응은 대단한 것이어서 남녀노소 없이 만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대중적 기반의 확보를 위해 사용되는 미끼는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섹스, 폭력 등 흥미위주로 일관된 통속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목적이 많은 양을 팔아내는 것에 있는 까닭으로 대다수 만화가들이 상업적인 저급함을 면치 못하는 것에 대해 만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하며 더구나 진실 되지 않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또 왜곡된 사회구조의 시각들이 독자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현 단계의 만화계에 새로운 정비가 요청되어진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만화의 올바른 방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손들과 관심어린 눈들은 우리 만화계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의 작가 중에 특히 눈을 끄는 작가가 있다. 중견 작가인 이희재로 우선 서구적인 외모 투성이 만화 중에서 그의 만화속의 인물들은 대단히 한국적이다. 더군다나 자로 그은 선은 보이지 않아 보기에도 편하고 어딘지 시골 냄새가 섞여있는 듯도 하다. 그는 참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로 우리 만화계의 처지와 만화 작품의 전체 경향을 포함해 그 수준이 그야말로 오락물 일변도라는 저급한 대중문화인데다가 그런 처지를 자족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화에서 이희재의 탁월성은 더욱 돋보인다. 이희재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별다른 형식적 꾸밈이나 극적인 갈등의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야말로 담담히 이야기해냄으로써 매우 실제적이고도 건강한 감동을 유발시킨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의 작품의 단순 평범한 일상생활에의 묘사로만 국한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상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평범함이 그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까닭은 그 평범함의 집약성에 있을 것이다. 즉, 평범한 인물들의 공통된 성격과 행동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전형적인 인물이 그의 일상적 보편적 생활 태도를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전형적인 사건을 겪는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으며 단순한 평범성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약시킨 ‘전형’을 대함으로써 그 전형과 우리의 삶을 일치시켜 공감하고 감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건강한 시각과 태도ㆍ견실한 사실묘사의 적실성 등은 1986년의 ‘간판스타’에 와서 절정에 이른다. 우리 만화의 수준을 단번에, 현재로서는 최고로 끌어올린 이희재의 ‘간판스타’는 절름발이식의 자본주의적 성장으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서울로 간 농촌 처녀의 일시 귀향을 소재로 해서 잘 드러내고 있으며 리얼리즘 만화로서 최초의 가장 커다란 성과라 하겠다. 그의 단편들은 대부분 삶의 현실 한복판에 자리하는 사회적 인간의 전형들을 성공적으로 형상화시킨 성공작들로 이러한 이희재의 80년대의 성취는 경이로운 것이 돼 그것이 하나로 머물지 않을 때 그리고 그 리얼리즘의 풍부한 세계가 광범위하게 확장될 때 만화사의 진정한 리얼리즘의 승리는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간판스타’ ‘운수 좋은날’ ‘성질 수난’, ‘꾼’ ‘현상금을 쫓는 사나이’ ‘승부’ ‘한잔하실까요?’ ‘홈런 아웃’ ‘프리 패스 멘’ ‘민들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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