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평화공존론의 쟁점과 논리

평화공존론, 전인류적 가치우선에 기반해
UN동시가입 등 분단고착화의 방관은 안 될 말

Ⅰ.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
1. 현대 자본주의에서 과학기술혁명의 효과
  새로운 사고는 변혁이론의 토대분석이라 할 수 있는 세계자본주의론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현대자본주의경제 연구의 출발점으로 무엇보다 우선 과학기술혁명의 새로운 단계가 가져온 세계생산력의 질적 변혁을 제기하면서 이를 매개로 자본주의 경제의 새로운 구조적 변동과 이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특징들을 제기할 수 있다. 과학기술혁명이 가져온 사회경제적ㆍ정치적 구조 변동효과에 대한 현실주의적 평가는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그간의 관념을 크게 정정하도록 요구한다. 우선 독점자본주의 인식의 기초개념이었던 ‘전반적 위기’를 새롭게 해석할 것이 강력히 주장되고 있다.
  따라서 전반적 위기에 대한 이론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한계를 관념적으로 미리 설정하는 이론(단계별로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에 접근하여 혁명적 정세론으로 귀결되는)으로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 체제의 생산력 발전의 우월성을 선험적으로 강변하는 이론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을 창출할 경우 유지될 수 있으며, 과학기술혁명의 조건하에서 현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장기적 발전의 과정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의 필연성으로 이끌었던 제국주의간 모순도 사회주의체제에의 공동대응의 필요성과 생산의 국제화 및 경제통합의 강화로(자본주의내의 상호의존성의 심화) 파국의 위험성이 줄어들고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상호의존성과 통일성이 강조되어야 할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2. 현대세계의 상호의존성과 통일성
  프리마코프는 현대세계의 양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호관계에 대한 기존시각이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이라는 법칙에서 투쟁의 배경이 되고 있는 통일성의 불충분한 주의로 귀결되는 방법론적 결합을 갖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①경제적 측면(전세계경제로)
  ‘전세계경제론’으로 이름 붙여진 새로운 국제 경제론은 양대 체제의 대립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주요한 측면을 상호의존성에서 찾고 있다. 과학기술혁명 하에서 국가 간의 경제관계는 과거의 어느 시기에서보다 급속히 발전하고 국제 분업이 분화되고 경제생활의 국제화가 새로운 형태들에 의해 풍부해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적인 경제적 결합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무역ㆍ신용ㆍ금융 및 생산ㆍ협업관계와 상호의존이라는 복잡한 그물에 깊게 편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통일성을 규정하는 법칙을 발견해야만 하는데 시시코프는 이를 △생산의 국제적 사회화 수준이 높아가는 법칙(세계경제 내부의 상호연관성이 증대) △국민경제의 세계경제의 흡입경향 △세계경제 결합의 계획적 발전의 객관적 필요가 높아지는 법칙 등을 잠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세계경제론이 이론적으로 옳으냐의 문제는 심오한 이론과 현실 세계경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필요하다.
  박형준의 문제의식을 소개하면 첫째, 과학기술혁명을 현대사회발전의 주요한 동인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가져온 생활일반에서의 효과를 명확히 한 것은 정당하다. 실제로 과학기술혁명을 현대 생산의 성격과 계급구조, 나아가 국제경제관계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의 분석들에 의해 제국주의 진영론과 모순론 및 이행들을 전개하는 것은 도그마티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오늘의 과학기술혁명과 생산의 국제화라는 조건에서 양대 경제체제의 상호작용을 각각의 생산의 독자성 위에서 전개하는 상공시장 관계로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작용의 성격과 발전경향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적대적인 생산관계의 상호침투가 가져온 경제적ㆍ정치적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경제법칙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실용주의적 해석의 가능성이다. 최근 사회주의의 급속한 경제개혁의 필요로 인해 서구자본주의 또는 일부 신흥공업국과의 협력 등 경제협력의 일방적 강조와 접근은 전세계경제 내의 모순의 발전에 대한 인식과 결합되지 못할 때 실용주의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②새로운 사고와 평화공존
  전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과 통일성은 현대세계의 정치군사적 상호의존성을 필연화한다. 양체제간의 적대적 대립(그 주요한 원인은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이다)의 결과로 나타난 인류생존의 문제는 정치군사적 측면의 상호의존성을 강화한다. 즉 인류문명전체의 위기를(핵, 환경문제, 제3세계의 빈곤) 해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회발전의 이익이며,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이익도 사회발전의 이익실현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는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을 강조함으로써 가치관을 노동자계급이해에 대치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전인류적이고 전지구적인 문제에 대한 첨예한 이해, 혁명적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국가의 대부분 주민을 반독점투쟁에 끌어들이는 시기까지 이 문제의 해결을 미룰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새로운 사고’의 평화공존론과 기존의 평화공존론의 기본적 차이는 무엇보다 스탈린시대의 평화공존론이 제국주의간 전쟁불가피론에 입각한 사회주의 건설과 이행의 일시적 조건 확보라는데 두어졌고, 흐루시초프 이후의 평화공존론이 사회주의 발전의 우위성에 기초한 체제압력수단으로서 계급투쟁의 일형태로 평화공존이 위치 지워 있다면, 새로운 사고에 의한 평화공존론을 양대체제의 장기적 공존의 현실성과 인류전체의 생존위기의 고양이라는 동시적 조건하에서 체제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이데올로기 계급투쟁의 성격을 제거하고 인류 및 각 민족계급집단의 공통의 이해(전인류적 가치)에 기초해 평화적 상호안전보장과 발전적 협력을 도모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의 침략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주요한 방법으로 보는 점 등이다.


  Ⅱ. 새로운 사고와 제3세계
  새로운 사고의 발전도상국에 대한 관점은 매우 큰 논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현대의 제국주의를 20C초중반의 제국주의와 다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의 쟁점(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오늘의 자본주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물론 자본주의 지향의 발전도상국들에게 혁명과정의 발전이 과연 지체되고 장기화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와 관련되는 쟁점, 발전도상국에서도 평화적 이행이 주요한 이행형태인가 하는 쟁점, 종속자본주의에서의 종속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쟁점이 포함한다.
  새로운 사고의 제3세계 정책은 세계질서의 다극화 경향 속에서 소련의 역할을 평화공존의 세계질서창출에 한정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발전도상국의 민족적 이익이 보장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창출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신국제질서나 안보체제 등). 소련의 제3세계 정책은 발전도상국 일반에게는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 과도한 사회경제체제의 군사화 방지, 외채와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유리한 국제조건조성 외적대립 요소의 약화에 따른 내부 민주화 문제의 전면화, 맹목적 반소, 반공이데올로기의 약화 등 긍정적 효과를 갖지만 급진적 사회혁명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세력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소련의 제3세계 정책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즉자적으로 혁명세력에게는 그 이전의 정책이 옳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현재 친소혁명정권이나 친소공산주의 세력이 처해있는 현실의 위기는 그 이전의 노선이 수행된다 하더라도 결코 밝은 전망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 노선의 고수, 회기는 단기적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소련을 비롯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급속한 퇴락 속에서 더 큰 위기를 배태한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일 것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새로운 사고의 제3세계 정책이 89년 이전보다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중요한 요인은 세력 간의 힘의 균형(상대의 이익에 대한 인정)이 예상이상으로 빨리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힘의 균형이 유지될 때 발전도상국에 대한 개입을 서로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인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급격한 변혁에 휘말린 동구권 사태다. 소련내부의 위기는 이러한 균형을 훼손시켜 미국의 개입주의에 대한 소련의 통제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86년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에서는 분쟁이 해소되는 등 평화정책의 성과를 거두지만 이에 대응하는 만큼 지역분쟁에서 미국이 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89년 동구격변이후 미국은 중미에 대한 개입주의 강화와 사회주의권의 자본주의로의 흡수, 통합을 노리고 있다. 이렇게 양대 강국의 힘의 쇠퇴는 현재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다.


  Ⅲ. 아시아 태평양정책과 한반도 정책
  소련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과 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아ㆍ태지역도 유럽과 같이 긴장완화와 상호의존의 메커니즘이 확실히 가능케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이익의 최적균형을 찾아 그것을 전인류적 이익과 합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은 유럽과 달리 이러한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데에는 이 지역 각국의 역사ㆍ사회적 이질성, 중소 문제, 한반도 문제, 캄보디아 문제 등 지역분쟁의 미해결, 미국의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의 압도적 우위, 소원한 일소관계 등 곤란한 점이 많이 존재한다. 한반도문제의 접근방식에서 소련은 ‘이익의 균형’이라는 원칙을 적용하고자 한다. 이때 인식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한반도 남쪽에 ‘급속히 발전하는 경제적 유기체’가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한반도 문제가 군사전략적 인식이었다면 현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통한 관련 당사국들의 상호이익을 도모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한반도의 극도의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고 주어진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하고 민주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련은 공동의 이익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는 국제적 메커니즘 창출방안을 갖는다. 물론 남-북간의 직접대화가 병행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련, 미국, 일본, 중국과 남북한이 한반도에 관련되어 있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정하면서 실질적인 한반도에서 평화정착과 통일을 가능케 할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소중관계, 소일관계의 발전수준에 의해 큰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다. 또한 소련의 가장 가까운 동맹세력인 북한은 3자회담을 요구하는 실정이고, 다국간 협의가 자칫하면 한반도에서 두 개의 국가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소련은 남북과의 경제협력(중위수준의 기술과 우수한 노동력을 갖는 남한) 등 관계개선에 우선 주력했는데 이는 소련의 경제개혁에도 유리할 뿐 아니라 일본과의 경제협력(소련은 일본이 미국의 단순한 하위 동맹자가 아닌 서독 같은 강대국으로 바라보고 이 부분이 아시아의 나토화를 막고 소련의 경제개혁에 유리한 협력사를 얻는 것으로 파악한다)을 확대하고 동아시아 경제구조에 소련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적극성을 띠고 있다.
  소련은 현재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안정화와 평화정책에 기여한다면 교차승인을 수용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 교차승인에 대해 북한이 아직 반대하고 있고 미국이 북한에 대해 고양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미국은 소련의 아ㆍ태지역 집단안보체제 구상을 거부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해 주한미군의 부분적  철수를 명분으로 북한에 대해 일방적 신뢰양성 조치 및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소-남한과의 관계개선과 미-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연동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중단기 목표는 남한의 단독 유엔가입실천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서의 미-남한의 주도권 장악이 목표이다) 자칫 잘못하면 교차승인이 아닌 한-소간의 수교, 남한의 단독유엔가입으로 귀착될 가능성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한반도 정책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이것이 실질적 평화정책은 지지부진한 채로 미국과 남한정권의 주도권 강화와 분단현실의 고착화로 귀결될 것인지 실질적인 평화정착 및 남북한의 민주화와 통일에 기여하게 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결정적 변수는 남한에서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범민주세력이 얼마나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와 북한의 변화 수준과 속도 및 방식에 달려있다.


  <용어해설>
  전인류적 가치
  인류가 자멸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위협의 발생, 환경문제와 기타 전지구적인 문제의 극단적 첨예화는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을 긴급한 과제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실제 정치에서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이라는 명제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은 노동자계급과 모든 민족해방투쟁의 이론과 실천에서의 일대전환으로 현대 제국주의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쟁점의 하나로 부상했다.

  새로운 정치적 사고
  일반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사고란 국제문제에 대한 하나의 접근방식의 표현이다. 이 접근방법에서는 협소하게 이해된 계급적, 국가적 이익의 보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계급적 모순이나 기타 모순으로 분열되어 있는 인류가 공동의 운명에 의해 결합되며 하나의 문명틀 내에 하나의 혹성위에 살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