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혹과 허망함

‘위험한 관계’가 가을 바람을 타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1930년대 상하이가 배경이다. 여자 마음을 훔치는 고수 셰이판(장동건), 애정거래를 하는 사교의 여왕 모지웨이 (장백지), 둘 사이에서 거래되는 정숙녀 뚜펀위(장쯔이)가 삼각 구도를 이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명대사를 날렸던 감성멜로 전공 허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변화무쌍 관능멜로를 내걸고 사랑게임을 펼쳐낸다.

원작인 ‘위험한 관계’는 동서양을 오가며 수차례 리메이크되는 매력적인 서간체 소설이다. 동명의 제목 외에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스캔들 : 조선 남녀상열지사’등이 모두 그렇다. 1789년 프랑스혁명 7년 전 발간된 이 소설은 프랑스 귀족사회의 성적 욕망과 허영심이 난무하는 사랑게임을 여러 사람이 주고 받는 175통의 편지로 전해 준다. 단조롭고 지겨운 군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라클로는 연애 심리탐구에 나선 결과, 2백년 후에도 지속적으로 리메이크될 명작을 써낸 셈이다.

이 소설은 발간 당시 적나라한 연애심리 묘사와 사교행각 폭로로 스캔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초판 2천부가 사흘만에 번개처럼 다 팔렸다고 한다. 그 힘은 2백년이 지난 지금도 남녀상열지사 탐사 교본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랑이란 것, 애정문제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암중모색 꼬인 인간관계로 분석과 탐구가 필요하기에 그럴 것이다.

라클로는 이 소설을 쓴 후, 곧 이어 ‘여성의 교육에 대하여 De l'education des femmes’란 논문을 써낸다. 라클로는 혁명에 치달을 정도로 타락한 상류사회에서 노예같은 여성의 삶을 해방시키고픈 의도를 가진 시대를 앞서 가는 뛰어난 남자였다. 그런 문맥에서 카사노바 남자를 조정하는 강력한 여성 메르테유 후작부인 캐릭터, 그리고 사랑 판타지에 젖은 귀족의 딸 세실과 정숙녀 이데올로기에 젖은 법원장 부인 투르벨 캐릭터를 만들어낸 의도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은 바람둥이 남녀의 관능적이고 허망한 게임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볼모잡힌 여성 해방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그보다는 모든 여자를 홀리는 최고의 플레이보이와 거기 대응하다 몰락하는 강력한 여성과 유약한 여성.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랑을 내건 인간관계의 유혹과 허망함에 서성이다 만다.

팁 : 굳이 애정문제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항목이 인간관계라는데, 한때 같이 했던 이들이 배신감과 분노로 아파하는 드라마는 소설과 영화의 소재만은 아니다. 대선 초읽기에 들어간 시기, 말춤 추는 싸이 월드스타의 탄생, 그 뒤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아픔은 내밀한 관계의 위험성과 마음 비우기 훈련의 필요성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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