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기부양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

경기침체에 대한 진단과 처방 ‘따로 놀아’
예속구조가 낳은 위기 노동자에 책임전가

  지난 14일 정부는 ‘경제사회 안정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당면정책’이란 이름하에 몇 가지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그 주요 내용은 수출금리의 1% 인하, 1조원에 이르는 특별설비자금의 장기ㆍ저리융자, 환율의 절하유도, 특별외화대출의 확대이다. 한편, 경기침체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자기 몫 찾기’에 있다고 전제한 뒤, 공권력의 조기 발동 등 노동대책도 마련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경기침체의 원인과 처방이 뒤바뀌었다는 인식하에 한국경제의 현황을 역사적ㆍ비판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Ⅰ. 위기의 두 측면
  ‘탄력이 붙었다’던 한국경제는 이제는 ‘발병이 난’ 한국경제가 되어 버렸다고 아우성이다. 세계경제의 호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비약적인 생산의 확대와 국제수지흑자를 누려왔던 한국경제는 내외적인 자본축적조건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새로운 국면이라는 것은 지난 86~88년의 경제상황과 비교해 볼 때 현저한 차이가 나는데서 누구나 동의할 터이지만, 이러한 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상당한 혼란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변화의 현상적 징후들은 생산의 수축과 무역수지의 악화, 신용구조의 불안, 물가의 앙등과 각종 비생산적 영역의 확대와 투기의 성행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적 징표들은 결국 첫째는 높은 대외의존과 수출위주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자본주의의 자본축적, 재상산구조의 위기로 표현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대중의 경제생활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위기적 측면에 관해서는 정부와 자본측 내부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둘러싸고 이견이 대립해왔지만, 이제는 ‘위기’라고 합의한 듯 ‘정부와 자본가다운’대응을 연거푸 발표하고 나섰다. 지난 11월14일의 4부장관 합동기자회견과 ‘경기종합대책’의 발표, 그리고 같은 날의 강영훈 국무총리 주체로 열린 치안장관회의, 또 16일의 경제6단체(한국경영자 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은행연합회)의 공동기자회견과 전국경제단체협의회(전경협)의 결성발표 등 일련의 일정은 그 진의와 전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응의 본질은 요약컨대 현재의 한국경제의 위기의 원인을 철저하게 임금인상투쟁과 민족민주운동에 전가하고, 이 원인을 ‘적절하게’ 진압만하면 또다시 탄탄대로의 자본축적의 궤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후자 즉 대중의 경제생활의 압박측면은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순환국면과 함께 진행되는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진행, 실업의 확대에 따른 생활의 압박을 지적할 수 있을 터인데 그것들은 그간의 임금인상의 효과를 집어삼켜 버림에 따라 실질임금의 감소로 나타나게 되고, 부동산 투기, 전세금과 임대료의 상승, 생필품가격의 인상 등에 의해서 그 정도는 증폭되어 나가고 있다.

  Ⅱ. 정부와 자본의 대응
  이러한 과정은 무엇보다도 민족민주세력의 비약적 성장ㆍ진출과 함께하고 있는데, 지난 14일부터 16일 사이에 진행된 정부와 자본의 일련의 짜여진 일정은 기본적으로 민족민주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공동보조와 강경대응, 나아가 탄압의 전열정비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19일 현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대국민호소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오늘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종합대책은 후자의 길(국민의 자기 몫 실현율을 한 자리 숫자로 자제, 안정 기초를 확보하는 길[인용자])을 통해 우리경제를 희생시키자는 것이다. 금번 종합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고임금, 고물가, 저성장의 고리를 단절한다는 것이다”라고.
  그는 당시의 한국경제를 ‘조정국면’이라고 평가하고 위기상황으로 보는 데에 대하여 반대했기 때문에 ‘자기 몫 찾기’는 물가상승과 안정에 대한 저해요인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일으켰는데 소위 ‘자기 몫 찾기’는 저성장의 고리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요지경’속에 빠뜨린 위기의 주범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그의 현실인식의 전환은 크게 자본측의 집요하고 끈질긴 ‘설득’으로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여하튼 정부와 재계는 총력을 동원하여 임금인상과 노동대중의 진출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의하였다.
  이에 대해서 임금인상과 노동투쟁이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 즉 그것은 거꾸로 자본축적의 진전과 이에 수반한 제현상의 결과라는 것은 과거의 경향에 대한 분석에 의해서도 입증되는 바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과 선전은 다른 곳에 향해 있다. 즉 그것은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제민주적 권리의 쟁취를 위한 투쟁을 억제하여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려는 목적과 사회의 제계층을 반민주진영으로 묶어세워 민족민주세력을 분리해냄으로써 반노동자전선을 형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감춰져있다. 그것은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법칙과 경기순환, 그리고 임금의 상화관계를 ‘거꾸로’설명함으로써 그 진정한 원인을 은폐하고 그 책임을 근거 없이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감춰져있다. 특히 지난 16일의 한국경총(韓國經總)을 중심으로 한 경제 6단체가 ‘전경협’을 결성하여 민주세력에 공동 대응키로 한 것은 이러한 본질의 극명한 모습의 하나이다. 이날 회견에서 부각되었던 것은 내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전노협(全勞協)의 결성과 민족민주운동의 확대강화에 대한 대응이다. 공동대응의 차원은 단지 말로서만이 아닌 ‘혼자서만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기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족민주운동에 대해서, 정부와 자본의 총력전적 선전포고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Ⅲ. 뒤바뀐 원인, 전도된 결과
  현재의 한국경제의 위기가 정부와 자본 그리고 관련 이데올로기들이 주장하듯이 민족민주세력의 투쟁에 의해서 오게 된 것이 아니라면 이를 전면적으로 탄압한다고 해서 호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한국경제의 위기는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성격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최근의 한국경제의 축적의 과정을 개략적으로 더듬어보자.
  가장 가까운 경기후퇴의 경험으로서 79, 80년의 공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재생산은 불가피하게 생산의 확대와 수축이라는 순환을 반복해 왔는데 79, 80년의 공황은 74, 75년의 공황에서 갓 벗어난 세계경제가 다시 회복해나감에 따라 한국경제도 호전되어가는 직후 다시 엄습하였다. 당시의 정부와 자본 그리고 언론매체들은 한 결 같이 위기라고 외쳤었다. 당시 신동아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덕우 부총리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신현확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지난 4월 경제안정과 종합시책을 높이 치켜들었다. …인플레를 진정시키고 경제의 안정 기조를 회복하는 길은 없는가”(신동아, 1979, 7) 이 와중에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몰락하게 되고, 그 틈새에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정권탈취에 성공한 전두환 정권은 이후 지독한 노동통제와 농산물가격통제, 독점자본을 위한 금융ㆍ세제의 특혜지원 등에 의하여 축적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80년대 중반경부터 세계경제는 서서히 호황으로 진입하였으며 그것은 소위 3저라는 조건으로 촉진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경제는 주로 국제통화체제, 무역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발생한 조건 중에서 가장 크게는 달러에 대한 상대적 저평가에 힘입으면서 급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나 원화의 상대적 저평가는 87년말 이후 급격히 반전되면서 상황이 변화되어왔고 덧붙여 다방면에 걸친 무역압력이 가해오면서 자본축적의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어왔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는 이윽고 89년에 들어서자 축적의 위기로 현상하게 되었고 그러한 징후는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갖는 종속성, 그리고 외적 규정력에 강고하게 얽매어 있다라는 사실에서 환율과 시장개방 그리고, 가격조건의 변화는 한국경제를 위기의 국면으로 내몰기에 부족하지 않았지만 결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원화의 절상으로부터 한국경제가 가격경쟁력을 위협받게 되었고 생산의 축소가 시작되는 계기인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최근의 위기의 진전은 그러한 조건에 촉발되면서 국내 재생산 구조자체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87~88년은 한국경제 역시 생산의 비약적인 확대와 고양기에 속해있었지만 최근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외적요인들의 압박이 진행되는 과정에 내적 축적메커니즘이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몇 가지 지적하자면 그것은 첫째,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확대국면에서 수출국면으로의 이행과정은 자본의 이윤율감소와 함께 투기부문과 비생산적 부문으로의 자본이전을 촉진하면서 경제현상을 왜곡시켜나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자본에게 축적의 곤란을 가중시키고 있고, 그것은 또 여러 경로를 통해서 대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총괄적인 위기는 그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국가독점적 경제정책에 의해서 더욱 격화되고 있다. 국가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본질적으로 독점자본을 위한 정책에 서있기 때문에 그것은 중소ㆍ영세기업의 퇴락과 교체를 수반하고 광범한 대중에게로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과정이다. 특히 위기시에 펼쳐지는 정부의 재정신용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경기부양책’은 경제를 독점적으로 재편성하고 경제의 자기조정과정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경제의 침체상태를 장기화시키게 된다. 이른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현대자본주의의 고질적 불치병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지난 11월14일 발표된 경제종합대책에서 제시된 금리, 환율, 통화, 금융세제 정책 등에서 나타난 바대로 그 밑바탕은 독점재벌의 자금 부담을 덜어 ‘성장엔진을 재가동시키겠다는 것이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단체는 이에 대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미흡한 조치라면서 거듭 원화의 재평가와 금리의 추가인하들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적인 조건들은 더욱이 드센 미국의 통상무역압력과 세계경제 여건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결부되어 지난 한국경제의 고성장을 목소리 높여 선전하던 것으로부터 그들 스스로 ‘위기’라고 진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위기는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의 쟁취를 위한 투쟁의 확산과 임금인상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심지어 ‘산업평화만 정착된다면 금리인하 등과 같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없어도 기업의 자생력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산업평화는 결코 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의해서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평화는 노동자에 의한 민주노조의 탄탄한 건설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는 것이며 무조건 상태가 야기하는 굴종과 자본주의적 임금노예로부터는 자본가적 횡포와 독재의 독버섯이 자라날 뿐이다. 더구나 산업평화는 누구에 의해서 난도질당하고 있는가.
  이러한 그들의 뒤바뀐 원인, 거꾸로 선 진단은 대중의 희생위에 선 독점자본중심의 이익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플레 및 물가등귀, 투기 등의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순환과 끊일 수 없는 관련을 지닌 임금인상투쟁은 그러한 경제적 제조건의 악화에 따라 근로대중의 생활압박으로부터 연유된다. 다시 말해서 임금인상은 현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고 이 결과를 원인으로서 전도시키는 그 본질은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탄압에 향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전개되는 자본축적의 진행과 산업구조의 재조정과정은 불가피하게 노동통제의 강화와 독점대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한 재정ㆍ신용정책, 금융세제지원을 강화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동시에 이 과정은 실업과 인플레를 유발하고 재생산구조를 독점적으로 재편성하면서 중소ㆍ영세기업과 대중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는 과정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한편 사회적 긴장과 대립을 한층 격화시켜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註(주)
  1)미국의 경제학자 T.AINS는 과거의 경향의 분석에 입각하여 임금인상이 심각한 물가등귀의 시작이 아니며 또한 금후로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썼다.
  2)민족민주운동연구소편, ‘전환기에선 한국경제’참조, “민족민주운동”창간호, 아침, 89.4(이글은 89년 3월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 후의 변화과정은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한국경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아직도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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